나는 지금 현재를 희생하며 미래를 위해 살고 있나? 미래보다는 현재를 위해 살고 있나? 현재도 미래도 포기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나?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좋을 행동을 하며 살고 있나?
이들은 탈 벤샤하르의 『해피어(Happier)』라는 책에서 각각 성취주의, 쾌락주의, 허무주의, 행복에 해당하는 태도다. 그는 현재와 미래의 손익을 두 축으로 네 개의 사분면을 구분하고 각 태도를 맛없는 야채 햄버거, 정크푸드, 쓰레기 햄버거, 이상적인 햄버거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균형 잡힌 행복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햄버거를 왜 먹지 못하고 있을까?
성취주의는 미덕일 수도 있지만 습관이 되면 현재 행복한 시간은 결국 오지 않거나 너무 빨리 지나간다. 미래의 그 시간도 결국 현재가 되고, 현재는 늘 할 일과 경쟁상대가 널려 있다. 쾌락주의는 미래에 대한 무지나 무시 속에 당장의 즐거움을 쫓아 현재 행복감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계산서는 곧 돌아온다. 허무주의는 미래의 목표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거나 쫓다가 지친 경우에 찾아오기 쉽다. 미래의 손실이 의미 없게 느껴지면서도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는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도 즐겁지 않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자신이 성취주의 영역에 있다면, 지금 너무 피폐해져 있지 않은지, 몸의 아우성을 정신이 묵살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자신을 흡족하게 해주는 작은 호사를 찾아내 스스로에게 선물하며 사는 것도 좋다. MZ세대는 ‘소확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와 정보력을 가진 신인류라고 하지 않는가.
쾌락주의 영역에 있다면, 현재 손쉬운 쾌락만 탐닉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그런 쾌락은 적응과 중독에 의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오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원천은 쉽게 도달하는 쾌락보다는 노력이 수반되지만 뿌듯한 만족감이 있는 활동이다. 또한 ‘나 그때 뭐했지’하고 후회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허무주의 영역에 있다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목표는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함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의지도 결합해 스스로 세운 것이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몰려가니까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뛰어들면 또다시 진로 방황과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
경제성장 둔화, 기후위기, 팬데믹, 디지털 전환, 인구구조 급변 등이 진행되고 있는 시대전환기다. 지금 청년들은 자기 미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경험이 참고가 되기 힘든 새로운 사회경제적 환경에 직면했다. 지금과 다른 미래는 언제쯤 올까? 내게도 잘 살 기회가 생길까?
인구구조만 보면 청년 취업난은 2030년 이후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폭등한 집값도 소수의 신고가 거래로 부풀려졌을 뿐 조정될 때가 올 것이다. 디지털 역량, 감성과 아이디어를 갖춘 젊은 인력의 몸값은 높아지고, 건강한 몸만 유지해도 돌봄인력에 대한 높은 사회적 수요로 먹고살 걱정은 없을 것이다.
나는 청년들이 합리적 낙관주의를 견지하길 바란다. 스톡데일 역설에서처럼 포로수용소에서 비관주의자가 제일 먼저 죽었고, 비현실적 낙관주의자가 그다음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이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되 현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합리적 낙관주의자였다.
지금 자신이 현재와 미래 간에 균형 잡힌 행복으로 일상의 초점을 재조준할 여지는 없는지 성찰해 보자. 그리고 합리적 낙관주의자로 살면서 전환기의 위기 속에 찾아올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 역량을 키우기로 마음먹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