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건강을 위해 샐러드 구매를 늘렸다고 답한 비율이 21.3%라고 한다. 이처럼 육류 위주 식단에서 벗어난 균형 잡힌 건강한 식단을 위해 선택적으로 채식을 하기도 하지만, 기후위기와 동물 학대 등 사회적·윤리적 이유로 고기, 생선, 유제품 등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식생활을 넘어 동물성 의류나 동물 실험을 한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으로 영역을 확장해 생활 전반의 ‘비건화’를 실천한다.
지난 연말에 한 비건 식당을 찾아가 오렌지 ‘치킨’ 라이스를 먹은 적이 있다. 비건 식당에서 치킨이 웬 말인가 했는데, 먹어 보니 두부튀김에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요리였다. 두부를 요리해 치킨의 식감을 구현해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치킨너깃보다 훨씬 맛있어서 더 놀랐다. 이처럼 고기를 식물성 재료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환경과 동물을 위하고 내 건강을 ‘비교적’ 덜 해친다면, 꽤 괜찮은 거 아닌가? 나도 한번 채식주의를 실천해 볼까, 싶었다.
양념 맛으로 고기를 먹었다
때마침 그 어떤 야심찬 계획을 세워도 성취 의욕이 100% 샘솟는 새해이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Veganuary’(Vegan과 January의 합성어)라고 새해 1월 한 달간 비건을 실천해 보는 캠페인이 있다. 이 캠페인에 참여 신청을 하면 매일 비건 레시피와 비건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준다. 지난해만 해도 전 세계 58만여 명이 참여했으며, 그중 4분의 1은 캠페인이 끝난 후에도 채식주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국내에도 채식·환경 운동단체인 ‘한국고기없는월요일’이 주관하는 ‘Vegan Reset’ 캠페인이 있다. 참여자가 각자의 채식단계에 맞게 요리한 음식을 SNS에 인증하면 심사를 통해 비건 제품을 보내주기도 한다(기자의 인증 사진도 선정됐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자유로운 잡식 생활을 돌연 멈추고 엄격한 채식을 시도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은 낮은 단계의 채식,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출발해 보기로 했다.
한 달 비건 체험의 총평은 ‘나의 세계가 좀 더 확장됐다’는 것이다. 일단 맛의 세계가 확장됐다. 두유나 캐슈너트로 고소한 맛과 크리미한 질감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바질페스토를 만들 때 두부와 참깨를 넣으면 훨씬 담백한 맛을 낸다는 것을 알았다. 닭고기 대신에 가지와 파프리카를 넣어 깐풍가지(저세상 맛이었다)를 해 먹었던 날, 이때까지 고기 맛이 아니라 양념 맛으로 고기를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밀키트의 양념재료나 과자, 화장품 등 일상에서 쓰고 사용하는 것들에 동물성 재료가 꽤 많이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는 마라샹궈를 해보려고 소스를 검색했는데, 원료를 살펴보니 그중 하나가 동물에서 추출한 조미료였다. 이처럼 내가 사려는 소비재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갔는지를 먼저 확인하게 되니 과거보다는 충동구매를 하지 않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은 몸의 변화다. 고기를 먹지 않은 이후로 소화불량과 두통을 느끼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피부가 좋아진 건 덤이다. 평소보다 가뿐함을 느낄 수 있었다(물론 배는 자주 고팠다). 문득 요가 선생님이 “내가 먹는 음식과 몸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고기를 먹은 날엔 움직임이 더디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게 생각났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비건 제품은 논비건 제품보다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다. 기자가 방문했던 한 비건 카페도 전반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었다. 이는 친환경 유기농 재료를 쓰는 경우가 많아 재룟값이 비싸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논비건 재료의 경우 분뇨·폐수 처리 등의 명목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는 데다 대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비건 재료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라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비건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커지면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두 번째로는 ‘생각보다’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많지만, 채식이 메뉴의 일부로 포함된 식당은 ‘생각보다’ 없다는 점이다. 기자가 유럽에서 생활했을 때 학생식당에는 비건 코너가 늘 있었으며, 일반 식당에도 비건 메뉴가 있고 마트에서도 비건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곳의 비건 문화는 선택적(optional)이 아니라 일반적(general)이라 굳이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나 매장을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됐었다. 그렇게 자리 잡기까지 많은 시간과 사회적 동의, 제도적인 시도가 필요했을 테지만, 이번에 비건을 도전해 보니 새삼 부러워졌다.
마지막으로는 정크(junk)비건의 늪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높은 가격이나 좁은 선택지에 치여 의욕이 반쯤 꺾일 때면 채식라면, 냉동 비건식품 등 간편식에 손이 가게 됐다. 채식을 하더라도 무조건 ‘풀때기’만 먹는 게 아니라 단백질, 탄수화물, 비타민 등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식단으로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연식물식을 권유하는 ‘채식의사’ 이의철은 비건 콩가스나 만두, 베이커리 등도 가공품이라 설탕과 기름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건을 시도할 때는 ‘건강한’ 탈육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건 접할 채널 다양해져···지역별 비건지도 제작도 활발
저탄소 시대, 동물 보호, 건강 증진 등의 이유로 채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며 모바일 앱 ‘채식한끼’ 등 비건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다. 기자의 경우 요리 아이디어가 떨어지거나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면 SNS에 ‘나의비거니즘일기’를 검색했다. 서로 비건 레시피와 일상을 공유하고, 비건숍이나 제품을 추천해 주거나 관련 세미나 등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서울시는 자치구별 채식 음식점 현황과 메뉴 등의 정보를 취합해 시민들에게 온·오프라인으로 제공하기도 하며, 개인이 자발적으로 ‘○○시 비건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한다.
2월에는 채식 박람회 ‘비건페스타’에 가볼까 한다. 각종 세미나나 쿠킹쇼·패션뷰티쇼, 비건 브랜드 제품 전시 등이 열린다고. 이번 달에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언젠가는 오보, 락토, 결국에는 비건까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혹시 중도하차하게 되더라도 고기와 동물성 제품을 거의 매일 소비하던 때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맛과 건강이 보장되고, 환경과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세상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 명이 일주일간 채식하는 것과 일곱 명이 일주일에 하루씩 채식을 했을 때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효과는 같다. 매일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면 날을 정해 조금씩 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러분도 각자의 세계를 조금 더 확장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