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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성 강화하는 수학교육과 연구지원 필요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 2022년 09월호


지난 7월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우리 교육시스템의 문제와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학문적 성과에 대한 평가를 질적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각 분야에서 출간된 논문의 개수를 세고, 평가에서 유리한 SCI 등재 저널 리스트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환경에서, 당장의 채용과 승진 그리고 연구비 수주에 매달린 과학자들은 올해 몇 개의 논문을 써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결과를 낼 수 있을 만한 쉬운 연구주제를 고르게 되고, 성과는 여러 개의 논문으로 쪼개는 게 현명한 처세다. 

이제는 젊은 연구자가 글로벌 학계의 주요 연구주제에 뛰어들도록 지원해야 한다. 물론 위험은 크다. 세계 주요 연구그룹과 경쟁해야 하고, 남이 먼저 풀면 허망해지니까.

허준이 교수는 연구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미국 클레이재단의 펠로우십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5년의 지원 기간에 성과 제출 의무 없이 세계 어떤 연구소나 대학을 방문해도 현지에서의 거주비 일체를 지원했다. 당장 내년에 우리 가족이 어디 있을지를 걱정하지 않고 지난해에 논문 몇 개를 썼는지를 세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에 매달리며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도덕적 해이가 걱정된다고? 짧은 역사의 클레이 펠로우십은 이미 3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정도의 투자 대비 성과를 거둔 연구 지원제도가 있었던가. 

둘째, 연결의 소양을 장려하는 교육제도와 지원제도가 필요하다. 한 분야만 파서 전문가가 돼야 한다던 예전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랜 난제에는 그 분야의 기존 사고로는 풀리지 않는 얽힌 매듭이 있기 마련이다. 허 교수는 조합론의 매듭을 풀기 위해 전혀 다른 분야인 대수기하에서 흡사한 구조를 간파하고 도입했다. 난제 몇 개를 푼 것을 넘어서, 조합론을 다루는 새로운 생각의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 2006년 테렌스 타오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해석학으로 정수론의 난제를 해결해서 필즈상을 받은 것처럼, 한 분야의 난제를 상이한 분야의 전문성으로 해결하는 것은 이제 대세가 됐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대학원 박사 자격시험에서 공통과목을 줄이는 학교가 늘고 있는 게 대표적인 ‘거꾸로’ 사례다. 응용수학 대학원생이 억지로 공부해야 했던 위상수학의 어떤 결과가 그의 미래 연구에서 돌파구가 돼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당장 힘들어도 연결성을 약화하지 말고 강화해야 한다. 연구지원 정책도 마찬가지다.

셋째, 학문적인 그리고 정서적인 멘토링이 필요하다. 필즈 메달에는 “자기를 극복하고 세상을 움켜쥐라”는 라틴어 글귀가 적혀 있는데, ‘자기를 극복’하는 건 참 어렵다. 2014년 서울에서 필즈상을 받은 마리암 미르자카니 교수는 역사상 첫 여성 수상자다. 그는 “어렸을 때는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싫어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었는데, 재능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허준이 교수는 고등학생일 때 시간이 충분하면 어려운 문제를 잘 풀었는데, 50분에 20문제를 풀어야 하면서 자신이 수학적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는 전공에 적응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성적으로 방황했지만, 4학년 때 만난 김영훈 교수가 그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멘토가 돼줬다. 졸업을 앞두고 서울대 석학 초빙 프로그램으로 방문한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와의 인연도 특별하다. 허 교수는 석사 논문을 지도한 김 교수와 히로나카 교수를 통해서 대수기하학적인 사고를 배웠고, 이는 이후에 조합론 분야에서 그만의 비장의 무기가 됐다. 어쩌면 석학 초빙 프로그램의 가장 큰 성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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