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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쉽게’ 사고 버려지는 옷
신하나 낫아워스 공동대표, 『지구를 살리는 옷장』 공동저자 2022년 10월호


우리는 자기 전에 모바일로 주문한 옷을 다음날 입고 외출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옷장을 열면 대체 뭘 입고 다녔나 싶을 정도로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유행이 지났거나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망가진 옷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패스트패션은 패션산업의 패러다임은 물론 인류의 소비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놨다.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서 ‘대량’으로 제작해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하는 시스템으로 ‘쉽게’ 옷을 사고 ‘빠르게’ 버리는 문화를 확산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은 연평균 800억 벌 정도의 옷을 산다. 패스트패션이 흥한 이후 세계 의류생산량은 2000년 500억 벌에서 2014년 1천억 벌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고, 2014년 의류구매량 역시 2000년에 비해 평균 60% 높아졌다.

하지만 가계지출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도리어 감소했다. 임금과 물가는 계속 오르는 반면, 패션 아이템 가격은 오히려 낮아졌기 때문이다. 너무 싼 물건의 가격 안에는 정당한 노동 대가나 환경복구를 위한 외부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의류생산자로서 옷을 만드는 과정에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드는 것을 알기에, 한 벌에 1만 원밖에 하지 않는 티셔츠 가격에 의아할 때가 많다.

패션산업의 규모가 커진 만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또한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연간 탄소배출량의 10%를 패션산업이 차지한다. 이는 모든 국제 항공과 해상 운송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준이다. 또한 저렴한 옷의 주요 소재인 아크릴, 나일론,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 합성섬유는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킨다. 식물성 소재인 면 역시 환경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목화로 만든 면은 탄소배출량은 적지만 물 소비와 수질오염 문제를 안고 있다. 면 티셔츠 한 장 만드는 데에는 한 사람이 3년 6개월 동안 마실 물이, 청바지 한 벌에는 10년 동안 마실 물이 사용된다.

그러나 패션산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의류쓰레기 문제다. 구입해서 몇 번 입지 않았거나 판매조차 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양의 의류는 환경규제가 느슨하고 쓰레기를 처리할 시설과 비용이 없는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로 보내진다. 선진국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저렴한 옷들이 쓰레기가 되면 저개발 국가가 떠안게 되는 구조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 역시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은 전 세계 중고의류 수출국 5위이며 2018년 기준 매일 67톤의 폐섬유가 소각되지만, 환경유해성에 대한 별다른 기준이 없어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는 지구를 빠르게 망가뜨리고 심각한 기후위기를 불러왔다.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요즘 패션계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공감하고 있어, 이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준이나 환경을 위한 움직임이 없는 브랜드들이 오히려 ‘패셔너블하지 못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그저 유행이나 보여주기 식의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는 곳도 많아져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 모든 문제는 ‘너무’ 많이 만드는 것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더라도 제품을 새로 사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옷과 신발을 최대한 오래 사용하고, 소비가 필요할 때는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의 품질 좋은 제품, 상대적으로 탄소발자국이 적은 국산·중고 제품, 혹은 비동물성 소재로 만든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환경을 위한 더 나은 선택이다.

더욱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는 의류소각을 금지하거나 과잉생산에 환경부담금을 과금하는 등 정부의 규제만큼 빠르고 강력한 것도 없을 것이다. 개인의 실천은 작든 크든 가치 있는 것이지만 지금의 지구를 생각하면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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