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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유익하지는 않더라도 유해하지 않은 소비를 찾아서
신정아 『나라경제』 기자 2022년 10월호
 

올 초 비거니즘(veganism; 동물권·환경·건강 등의 이유로 동물성 제품 소비·섭취·사용을 지양하는 행동) 기획 때부터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 기존에 쓰던 논비건 제품을 다 쓰는 대로 비건 제품으로 바꾸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쓰레기가 생기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분리배출이라도 똑바로 하자는 마음으로 제품 뒷면을 살펴봤다. 내 눈에는 뚜껑이나 펌프나 본체나 다 똑같은 플라스틱 같은데 여러 물질이 혼합돼 플라스틱으로 배출해선 안 되는 것도 있고 용기 재활용 등급 자체가 ‘재활용 어려움’인 것도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열심히 분리배출한 플라스틱이 얼마나 재활용돼 다른 물건으로 내 손에 놓이게 될까?

기존 용기에 원하는 제품을 리필할 수 있다면 버려지는 플라스틱도 줄이고 참 좋으련만. 잠깐, 제로웨이스트숍에 리필서비스가 있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비건 브랜드도 분명 협업하고 있을 텐데. 웬걸, 어떤 브랜드는 아예 전용 리필스테이션을 차렸다! 게다가 재사용과 재활용에 대한 교육도 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가 발견한 브랜드는 바로 친환경·비건 뷰티 브랜드 ‘아로마티카’. 거기서 운영하는 ‘아로마티카 제로스테이션’을 찾아갔다.

서울 강남 가로수길에 위치한 이곳 입구에는 ‘잔재 쓰레기 제로를 꿈꾸는 기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학생과 일반 소비자, 제품을 시향 또는 리필하러 오는 고객, 재활용 수거함에 제품 공병이나 투명 페트병, 유리 등을 분리배출하러 오는 사람까지 다양한 방문객이 여러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다.

 

기존 재활용 선별시스템의 한계 목격하고
폐자원 수거·재활용에 직접 나선 회사


아로마티카의 현재 목표는 국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투명 PCR(Post Consumer Recycled; 소비자 사용 후 재활용 가능한 소재) 용기를 만드는 것. 100% 재활용된 PCR 용기를 사용함으로써 자원순환 시스템을 만들고, 리필스테이션 활용과 리필팩 판매 등으로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최소화해 궁극적으로는 플라스틱 신규 생산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어쩌다 화장품 회사가 쓰레기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아로마티카는 재활용 선별장을 직접 찾아가 가정에서 종류별·소재별로 분리배출한 폐자원들이 분리수거 과정에서 대부분 혼합돼 뒤섞이고 오염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빠른 시간 내 많은 양의 쓰레기 속에서 선별 작업을 해야 하다 보니 소재 확인이 어렵고, 화장품 용기 중에는 재활용 가능한 투명 용기들이 있음에도 대부분 잔재 쓰레기로 분류돼 태워졌다. 어떤 용기들은 투명한데도 페트와 PP 등 여러 소재가 섞였거나 발수 코팅 등 다른 공정이 더해져 고품질로 재활용되기 어려웠다.

폐기물이 선별·수거되는 과정에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기존 시스템에서는 같은 소재끼리 회수하는 게 어렵다는 점도 재활용률을 낮추는 원인이었다. 그래서 아로마티카는 재활용 원료로 가치가 높은 단일소재인 투명 페트병을 직접 수거해, 선별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다음 공정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만들게 됐다.

소비재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업이니 자원 재활용에 관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 같기도 했다. 게다가 분리수거 시스템의 현실과 한계를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무관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아로마티카의 히스토리를 들으며 플라스틱 무한순환 사이클 계획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과정을 보면 먼저, 투명 페트병을 수거한다. 그다음, 수거한 페트병을 플레이크(flake) 공장에 보내 세척·분쇄한다. 조각나 ‘플레이크 형태’가 된 플라스틱을 펠릿(pellet) 공장으로 보내서 녹여 아주 작은 콩 모양(이 과정을 설명한 교육 담당자는 비비탄에 비유했다) ‘펠릿’으로 다시 굳힌다. 마지막으로, 이 펠릿이 PCR 용기나 굿즈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며, 이 사이클을 반복한다.

이 무한순환 사이클을 달성하기 위해 아로마티카는 투명 페트 ‘10톤’을 모아야 한다. 이는 플레이크 공정 가동에 필요한 최소 수량인데, 현재 6.1톤 정도 모았다고. 투명 페트 수거를 시작한 지 딱 1년이 됐는데, 전문 수거업체가 아닌 이상 한 화장품회사가 투명 페트만으로 6톤 규모의 폐자원을 모으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아로마티카는 자사의 제로스테이션 말고도 20여 곳의 제로웨이스트숍과 연대해 수거 거점을 만들어 투명 페트병과 공병을 모으고, 강남구청과 협약해 23개의 주민센터에서도 수거하고 있다고 한다. 시민과 협업기관의 동참, 기업의 실천이 이뤄낸 결과다. 투명 페트에 해당되지 않는 여러 플라스틱 샘플들을 둘러보는 도중, 때마침 아침에 떠났던 수거 전용 전기트럭이 제로스테이션에 막 도착했다. 이 전기트럭은 주 3회 수도권 거점을 돌며 투명 페트와 공병을 수거한다.

소재 리뉴얼과 분리배출법 상세 표기,
재사용 위한 리필팩 등 자원순환에 앞장서


화장품은 용기 내구성, 디자인 등 심미적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플라스틱 소재를 섞거나 눈에 띄는 색을 입히고, 본체에 제품 정보를 각인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로마티카는 자원순환을 위해 이를 과감히 포기하고 제품 용기를 리뉴얼했다. 단일소재로 만들어진 투명한 재활용 100% 페트병 또는 재활용 90% 유리병에, 분리 불가능한 여러 소재가 들어간 펌프 대신 PP로 소재를 단일화한 원터치 캡을 쓰고, 쉽게 뗄 수 있는 수분리 라벨(물에서 분리되는 라벨)을 본체에 부착했다. 이 라벨에는 용기의 소재와 소재별 분리배출법이 제품 도면과 함께 기재돼 있는데[예를 들면 제품 도면에 번호를 매겨 ①캡(PP) 플라스틱 배출 ②라벨(PP) 비닐 배출 ③용기(PET) 투명 페트 배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유용하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폐플라스틱과 폐유리 재활용 용기에 담은 제품을 280만여 개 판매했는데, 이는 탄소배출량을 약 137.9톤 줄인 것과 같은 효과라고 한다. 용기 재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판매하고 있는 리필팩도 PE 단일소재로 만들어져 재활용에 용이하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기 위해 리필팩을 쓰는 게 어쩌면 무용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같은 용량의 플라스틱 용기를 쓰는 것보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최대 71% 줄일 수 있다고. 

리필팩 사용마저 주저하는 사람을 위해 제로스테이션에서는 내용물 리필 판매를 한다. 깨끗하게 소독한 용기를 개인이 가져가면 거기에 담아준다. 자원순환 교육의 마지막 코스인 리필 체험에서 기자는 로즈메리와 시더우드가 들어간 바디케어 제품을 택했다. 리필받은 용기에는 소분한 날짜와 사용기한, 제품 정보 등이 기입된 라벨을 붙여 준다.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살기는 어렵다. 덜 쓰는 게 가장 좋지만 구매하더라도 재활용이 가능한 걸로 고르고 그걸 재사용하는 생활을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아로마티카는 환경에 유익하지는 않더라도 유해하지 않은 소비를 실천하면 기업도 같은 방향으로 바뀌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말로 환경보호에 ‘찐 광기’를 보여주는,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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