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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달러화, 기축통화 넘어 제왕(king)통화 가능할까?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2022년 11월호


1990년대 후반 이후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를 바탕으로 20년 이상 지속돼 왔던 저금리 시대가 종료되고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3월 미국 연준(Fed)이 인플레이션 안정을 위해 첫 금리인상 조치를 단행한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들이닥친 고금리 시대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1990년대 중반보다 더 심한 대발산(great divergence)이 발생함에 따라 달러 강세가 재현되고 있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이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해 5월 이후 달러화지수는 20% 이상 급등했다. 유로화 가치는 20년 만에 유로화·달러화 등가(1달러=1유로) 수준이 붕괴됐고 엔달러 환율도 30년 만에 최고수준인 150엔을 돌파했다. 달러화의 위상이 기축통화를 넘어 제왕(king)통화가 될 것이라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

10년 이상 지속된 강한 달러 시대
2008~2009년 금융위기로 흔들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2009년 리먼 사태, 2011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등을 계기로 달러화 가치가 흔들리면서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에 묵시적으로 유지돼 온 ‘제2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브레튼우즈체제란 1944년 브레튼우즈협정에서 규정한,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제2 브레튼우즈체제란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 이후 유지돼 온 환율제도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를 골간으로 한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묵시적인 합의에 따른 것이다. 미국이 이 체제를 유지해 온 데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공산주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자 했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다. 기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제2 브레튼우즈체제는 이런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제2 브레튼우즈체제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다. 일본, 한국 등 아시아 통화에 대한 의도적인 달러화 강세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더는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여러 방안을 동원했으나 결국은 달러화 약세를 유도한다는 내용의 선진국 간 합의인 ‘플라자 합의’로 적자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제2 브레튼우즈체제에 또 한 차례 균열이 보이게 된 계기는 1995년 4월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와 아시아 외환위기다. 역플라자 합의에 따라 미 달러화 가치가 부양되는 과정에서 아시아외환위기가 발생해 아시아 통화가치가 환투기에 의해 폭락하면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 구도가 재현됐다. 역플라자 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은 79엔에서 148엔이 될 정도로 강한 달러 시대가 전개됐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이탈에 시달렸고, 미국도 슈퍼 달러의 부작용으로 경상수지 적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됐다. 쌍둥이 적자 이론에 따라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면 재정수지 적자도 확대된다.

강한 달러 시대가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자국 통화의 약세라는 반사적인 이익을 누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무역수지 흑자가 대폭 확대됐다. 아시아 국가의 과잉 저축분은 미국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 갔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이 자산 거품을 해소하기 위해 2004년부터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중국의 국채 매입으로 시장금리가 더 떨어져 자산 거품이 심해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거품 붕괴 모형에 따르면 자산 거품을 떠받치는 돈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으면 거품은 터진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실체다.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바탕으로 레버리지 투자가 활성화돼 있는 미국에서 자산 거품이 터지면 자국의 금융사에는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입 요구)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면서 2009년 리먼 사태와 같은 대형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연준은 전시에나 사용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동원했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의장은 한꺼번에 두 단계 이상 내리는 빅스텝 방식으로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렸다. 유동성 공급도 무제한 국채를 사주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헬리콥터가 물을 뿌리듯이 돈을 풀었다. 브라운 방식으로도 알려진 연준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달러화 가치와 위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미국이 달러화 강세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관건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우즈체제가 흔들리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누적된 재정수지 적자와 국가채무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금융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 효과’라 볼 수 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브레튼우즈체제가 재차 강화될 경우 이는 제3기에 해당한다. 외형상 여건은 형성돼 있다. 유럽, 일본, 중국 등 미국 이외의 국가는 연준의 금리인상에 뒤따라가거나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는 떨어지고 달러화 가치는 강세가 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달러화 강세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경제는 완전치 못하다. 달러화 강세에 따른 경기 부담은 의외로 크다. 미국 연준의 계량 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화 가치가 10% 상승하면 2년 후 미국경제 성장률은 무려 0.75%p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준의장이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가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달러화 강세가 재현된다면 미국경제가 언제든 침체국면으로 떨어질 위험이 높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재무장관이 잊을 만하면 대미 흑자국을 대상으로 환율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달러 환율 문제도 이런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아시아 통화위기, 리먼 사태 등과 같은 대형위기가 발생할 때만 나타났던 1,400원 선 붕괴가 일어남에 따라 제2 외환위기, 미증유 퍼펙트 스톰 등 각종 위기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정책당국에서도 외환시장 안정을 찾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1,400원 이상의 원달러 환율 수준’을 예상하지 못했느냐 하는 점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원달러 환율은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2020년 3월 1,285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이 1,082원으로 급락했던 지난해 초까지다. 자본의 이동이 순탄치 않았던 이 시기에 달러화가 가장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는 백신 보급으로 코로나19가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시기다. 충분히 예상됐던 원달러 환율 수준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면 영국 경제학자 리처드 데이비스가 주장한 ‘극한 경제’에 몰릴 수 있다. 마치 무슨 일이 난 것처럼 정책당국이 요란하게 대응하면 오히려 달러 수요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환율정책이 원화 약세를 통한 ‘수출증대’보다 원화 강세 유도를 통한 ‘수입물가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상시적인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 자체적으로 비상시 기업이 보유한 외화와 연대하는 ‘프로보노 퍼블릭코’ 스와프 협정도 검토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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