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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녀교육에서 돌봄노동의 여성 편중 심해… 돌봄이라는 연대로 발전과 진보 꾀할 수 있어”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 2025년 01월호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돌봄받았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얼굴이 크게 떠오를 것이다. 통계조사 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돌봄은 대체로 여성에 의해 지탱된다. 사랑과 의무를 기반으로 한 이 돌봄노동은 경제적 대가도 없다. 오늘날의 국가는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슴’, 즉 돌봄에 의해서도 작동한다고 강조한 낸시 폴브레는 최초로 돌봄노동을 개념화하며 ‘경제적인 것’의 의미를 확대해 온 경제학자다. 낸시 폴브레의 제자이자 그의 저작들을 번역한 윤자영 교수에게 돌봄노동과 돌봄경제에 대해 들어봤다.

돌봄노동은 무엇을 말하나? 가사노동과는 어떻게 다른가.
돌봄노동(care work)은 무급도 있고 유급도 있지만 보통 가정 내의 돌봄노동이라 하면 가사노동(house work, domestic work)과 마찬가지로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무급으로 행해지는 것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돌봄노동이 학문의 영역에서 개념화되면서 보수의 제공 여부가 아니라 그 결과물이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라는 데 방점이 찍혔다. 낸시 폴브레가 처음으로 돌봄노동을 이론화했을 때는 단순히 집에서 행해지는 무급노동, 즉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밥을 하고 다음 날 일하러 나갈 수 있도록 일상생활을 유지하게 해주는 가사노동뿐 아니라 다음 세대, 즉 미래 노동력을 생산하고 유지하며, 인간의 역량(capabilities)을 키우는 활동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래서 돌봄노동의 ‘공공재’적인 성격이 강조되는 것 같다.
전통사회에서는 자식이 나중에 나를 부양해 줄 것이라는 암묵적인 호혜가 작동했다. 이때는 여성도 부분적으로 보상을 받았다. 설사 무급이라고 해도 이 아이를 키우면 나를 봉양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화됐으니까. 하지만 산업화와 임금노동 기회가 확산하면서 그런 연결고리가 붕괴됐다. 돌봄노동의 혜택이 부모에게 온전히 귀속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됐다. 그걸 낸시 폴브레는 ‘편익의 사회화’라고 말한다. 자녀뿐 아니라 제3자를 위해 돌봄노동을 했다고 해도 그 보상이 온전하게 나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오히려 불이익이 생기는 상황이 된 거다. 

불이익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지? 
현대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의 선의에 기댈 뿐 법적으로 편익을 가져갈 장치가 없다. 오히려 자녀를 낳지 않은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일에 올인해 정년 때쯤 소득이 최고치가 되고 연금소득액도 많을 것이다. 낸시 폴브레는 이런 구조 때문에 자녀 양육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연금제도에서 득을 보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도 마찬가지다. 피부양자들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주로 보험료를 부담한다. 자녀를 낳고 돌보지 않아도 제도 자체에 의해 누군가의 부담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돌봄 무임승차가 일어나는 것이다.

돌봄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그것을 측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돌봄노동은 정확하게 무엇을 얼마나 했다고 정량화하기가 쉽지 않다. 직접적인 행위 말고도 이를테면 아이와 직접 시간을 보내지 않는 순간에도,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 ‘아이가 학교에서 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것도 돌봄노동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한계가 있음에도 돌봄노동을 측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설사 과소 추정된다고 하더라도 GDP뿐만 아니라 측정되지 않는 돌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가시화해야 온전한 복지(welfare)의 지표가 된다는 차원에서다. 또 GDP를 가지고 많은 경제정책을 세우고 예측하듯이 기초 통계가 있어야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할 수 있고 정의롭게 재분배하는 데도 기초가 된다. 

이러한 돌봄노동을 아우르는 돌봄경제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인데.
돌봄노동은 개인이 행사하는 행위라는 식의 협소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노동뿐만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의 역량을 생산·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모든 자원, 시간 자원뿐 아니라 금전 자원이 작동하는 영역까지 포괄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쓰기 시작했다. 돌봄경제는 돌봄을 중심으로 화폐경제뿐 아니라 무급업의 영역, 비시장 영역에서 이뤄지는 돌봄 행위까지 포괄하는 아주 넓은 개념이다. 유급-무급 노동을 넘어, 가정과 시장뿐 아니라 모든 지역사회나 공동체 단위, 국가까지도 돌봄경제의 부분이 된다.

돌봄노동-시장노동이라는 이중 노동의 부담을 남녀가 공평하게 분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도, 규범, 실천 차원의 문제들이 있다. 부족하긴 하지만 정부가 제도를 마련해 나가고 있는데 실천과 규범이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규범적인 차원에서 가장 뒤처진 곳이 교육 부문인 것 같다. 자녀의 교육, 학업성취 등과 관련해서는 특히나 엄마가 주 책임자다.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은 많이 언급돼 잘 알고 있지만 그 이후의 단계인 학습과 교육 면에서도 여성에 부담이 집중되는 관행을 깨나가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돌봄이 평생 지속된다는 측면에서 절대적인 돌봄시간 확보도 중요해 보인다.
물론이다. 풀타임에 언제 초과근무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돌봄노동을 위한 시간 확보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이 떠맡게 된다. 교착상태에서 작동하는 건 이데올로기(성역할)이기 때문이다. 또 가족돌봄휴가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기도 한다. 그러니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을 비롯해 타인을 돌볼 수 있도록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해법이다. 문제는 기업이다. 자본은 양보하지 않는다.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을 번역하면서 가장 공감 가는 대목은 무엇이었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우울하고 비관적인 학문이라고 하지만 낸시 폴브레는 경제학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늘 말한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 갔던 부분도 어떤 희망에 대한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것이 여러 경제체제를 거치면서 때로는 강해지고 때로는 약해지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종, 민족, 젠더 등 다른 정체성 집단들과 벌어지는 역학(dynamics)이 있다. 때로는 젠더와 계급이 연대하고 때로는 젠더와 세대가 연대하기도 한다.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가부장제 상황에서도 여러 정체성들이 대립하거나 분열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연결고리, 이를테면 돌봄을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다. 돌봄이라는 것이 결국 여성뿐 아니라 취약한 계층이 떠맡게 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돌봄을 중심으로 여러 집단들이 연대할 수 있고, 그 연대를 통해 새로운 발전과 진보를 꾀할 수 있다고 낸시 폴브레는 말한다. 



교수님도 돌봄노동을 해오셨을 텐데 어땠나.
아이가 어릴 때엔 야근할 수 있는 것도 부럽다고 생각했다(웃음). 몇 시간만 주어지면 다 끝낼 수 있는 일인데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니까. 그야말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남편이 많은 부분 자기 몫을 해줬지만 교육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동원돼야 했다. 초등학교에 돌봄교실이 처음 도입됐을 때 우리 아이가 1학년이었다. 담임교사와 면담을 했는데 아이가 불쌍하다고, 왜 일찍 데려가지 않냐고 하더라. 그 교사의 말이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일주일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내가 정말 잘못하고 있는 건가’ 자책하게 되더라. 많은 여성들이 시가나 남편, 주변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쉽게 죄책감을 갖겠구나 싶었다.

지난 6월 국제노동기구(ILO)는 「양질의 일자리와 돌봄경제」라는 보고서를 의결한 바 있다. 정부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연구개발도 단기적인 수익을 바라보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건 투자라고 생각하고 집행하면서 사람에 대한 투자는 시혜성 복지라는 이유로 소비성 지출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식을 바꿔야 한다. 돌봄경제 역시 그 투자수익이 단기적으로 거둬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양은주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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