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사회는 초저출생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제 저출생 문제는 단순히 인구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의 구조적 배제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 돌봄이 가정과 여성의 역할로 한정된 오늘날의 사회적 관념은 지속 가능한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돌봄을 사회적 권리로 전환하고, 모든 아동이 보편적으로 양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덴마크의 사례는 보편적 돌봄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한 실천적 모델을 제시한다. 덴마크는 아동돌봄을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공공의 책임으로 규정하며, 보육서비스와 유아교육을 통합 운영한다. 이는 부모의 경제활동 참여를 보장하고 아동의 발달을 지원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돌봄시스템을 통해 돌봄의 책임을 공적으로 분산하며,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양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부모의 양육 부담을 경감하고, 아이들이 건강한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돕는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전환을 위해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해 현재 4차 기본계획이 운영되고 있다. 주요 방향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돌봄 모델과 공공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교육과 돌봄이 정책적으로 연계돼 통합효과를 내도록 하며, 사회정책 전반에 걸쳐 돌봄을 주요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돌봄에 대한 행정적 책임을 분담하는 차원을 넘어 돌봄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지역 내 상호 의존적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함께 돌봄의 질적 향상을 위해 돌봄 종사자들의 전문성 강화와 안정적인 근로환경 조성도 필수다.
돌봄과 교육 운영의 철학적 기반 제공하는
덴마크의 소셜 페다고지
한국은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제도적으로 분리 운영되고 있어 돌봄과 교육을 각각 다른 영역으로 다루는 구조를 형성해 왔다. 일반자치는 지역 주민의 복지와 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교육자치는 학교 교육과 학사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두 영역 간의 협력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특히 돌봄은 복지와 관련된 사안으로 지자체가 주로 관여하는 반면, 교육은 학생의 학업 성취와 관련된 문제로 교육청이 관장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이같이 이원화된 구조는 돌봄과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다. 또한 돌봄과 교육 모두의 본래 목적이 약화됐고 결과적으로 아동과 가족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해 왔다. 여기에 더해 한국사회에서 돌봄은 생산성과 연관되지 않아 여성의 그림자 노동으로 여겨져 왔고, 돌봄에서 분리된 교육은 오로지 학습만을 추구하는 활동이 돼 경쟁과 성취 중심으로 왜곡됐다. 이러한 분리는 돌봄과 배움 모두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돌봄과 배움의 단절은 인간성을 약화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하며, 개인과 사회의 균형을 깨뜨리는 원인이 됐다.
그러나 돌봄과 배움은 인간의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본질적 요소다. 따라서 많은 돌봄 선진국처럼 돌봄과 배움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삶에 통합된 배움과 돌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시스템과 돌봄체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는 학교가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과 관계 형성을 위한 장으로 재구성돼야 함을 의미한다. 여러 나라 중에서 덴마크의 소셜 페다고지(social pedagogy)적 접근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접근법은 아동을 독립적 주체로 인정하며, 교육과 돌봄을 통합해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소셜 페다고지는 단순히 정책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과 관계를 재정의하는, 돌봄과 교육 운영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한국에서도 교육은 학교와 교육청이, 돌봄은 지자체가 해야 한다는 기관 중심의 경계를 허물고 아동의 전인적 발달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교가 학습 중심의 공간을 넘어 균형 있는 성장과 발달을 돕는 돌봄과 상호작용의 장으로 전환돼야 한다. 학교 내에서 돌봄과 배움이 통합적으로 이뤄질 때 아동은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교사와 학생,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새로운 교육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필수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돌봄노동이다. 돌봄노동은 본질적으로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지만, 그 가치가 저평가되고 여성에게 편중돼 왔다. 한국의 돌봄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환경 속에서 일해왔으며 이는 돌봄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러 돌봄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돌봄노동은 단순히 물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이 아니라 인간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전문적인 직업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돌봄과 배움을 두 기둥으로 해 학생이 균형 있는 성장을 할 수 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교육과 돌봄정책에서의 과제를 정리해 본다.
돌봄노동자 전문성 높이고 돌봄과 교육의 연계 강화해야
첫째, 돌봄의 공공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아동돌봄서비스를 공공재로 전환하고 지방정부가 보육과 돌봄의 주요 책임을 지도록 체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 이로 인해 아동이 동등한 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으며 부모의 양육 부담도 크게 경감돼 왔다. 향후 정부는 국가와 지자체가 돌봄의 책임을 공동이행하는 체계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돌봄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줄이고 모든 가정이 차별 없이 돌봄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돌봄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돌봄노동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해 왔지만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부분에서는 미흡했다. 돌봄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해 돌봄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더 나은 돌봄환경을 조성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돌봄과 교육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분리 운영은 아동의 전인적 발달 지원과 지역사회의 협력 강화를 어렵게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간 협력을 통해 돌봄과 교육을 통합한 제도적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아동이 안전한 환경에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다.
저출생, 돌봄 위기, 배움의 소외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된 사회적 과제다. 그래서 범정부적 협력과 통합적 정책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돌봄과 배움이 통합된 사회를 구현하려면 돌봄을 공공재로 전환하고, 교육을 관계와 공동체 회복의 장으로 변화시키며, 돌봄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 또한 교육자치와 일반자치를 통합하는 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한국사회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보편적 돌봄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돌봄사회의 구현은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적 목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실천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