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캘거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아서 프랭크는 자신의 저서 『아픈 몸을 살다』에서 돌봄을 “아픈 사람의 고유함을 아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질병과 노화가 우리에게서 ‘나다움’을 빼앗아 늙고 병든 육신으로만 남게 할 때, 그럴 때조차 나를 알아봐 줄 것만 같은 사람이 있다. 40대 후반 늦은 나이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원, 데이케어센터를 거쳐 재가방문서비스를 하고 있는 이은주 요양보호사는 자신이 돌보는 어르신을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뮤즈’와 ‘제우스’라 부른다. “아픈 몸으로 살 때 구차하고 누추한 감정이 아니라, 좀 더 아름다운 세계에 살고 있으면 좋겠고, 그곳에서 일하는 나 또한 그런 신화적인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돌보고 있다는 자각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성경책을 소리 내 읽고 뜨개질을 좋아하는 뮤즈, 땅콩 캐러멜을 좋아하는 제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치매노인 또는 요양원 어르신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한 분 한 분 살아 있는 그들이 느껴진다.
이 보호사는 현재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그 전에는 아픈 남동생을 대신해 조카들을 돌봤고, 조카손주도 키웠다. 이처럼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또 가족을 돌보면서 겪고 느낀 것들을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돌봄의 온도』 등 책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이 지면이 요양보호사의 처우와 현실을 드러내고 정책 개선 방향을 제안하는 격렬한 보고서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돌봄이 얼마나 ‘사람’이 하는 일인지를, 시스템이 어쩌지 못하는 그늘 속에서도 한 줌 빛을 포기하지 못하는 돌보는 자의 숭고함이 무엇인지를, 인터뷰를 마치고 열렬히 깨닫게 되었다.
번역가로 활동하다 꽤 늦은 나이에 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씨앗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일본대 예술학부에서 유학했을 때 아르바이트를 엄청 했어요. 호기심이 많아 여러 경험을 해보고 싶었지요. 한국에 와서도 면세점·출판사 직원, 번역가 등 다양하게 일했어요. 무엇보다 살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해야 했어요. 또 나를 키워주셨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리워 비슷한 분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고, 우리 엄마가 돌봄 받게 될 요양원이라는 곳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어떤 요양보호 일을 하고 계신가요.
요양보호서비스가 필요한 가정에 직접 방문하는 재가방문을 하고 있어요. 지금 돌보는 뮤즈를 만난 지 7년이 돼갑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닮았어요. 그것도 복인데 오늘은 인터뷰하라고 30분이나 일찍 끝내줬어요(웃음). 그런 배려와 사랑을 받고, 매일 성장한다는 느낌이 이 일엔 있어요.
재가방문에서는 어떤 돌봄을 하나요.
매일 3시간 주 3회 방문하는데요, 조리, 청소, 배설, 청결 등을 지원하죠. 저흰 만나면 계획부터 세워요. 어르신이 좋아하고 필요한 것부터 요청하세요. “오늘은 산책한 다음 목욕하고 안약을 넣어줘. 걸레질하고 세탁기 빨래도 널어줘.” 하고요. 병원에도 모시고 가고, 설 명절이 가까워지면 미용실도 가요. 계획세우기가 참 좋은 게 그분들이 원하는 돌봄을 해드려야 하거든요. 그걸 파악하기 좋아요.
요양원을 그만두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요양원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1등급 또는 2등급의 시설급여 판정을 받은 분들이 오세요.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분이 많고요. 이분들을 돌보며 ‘아무리 열심히 돌봐도 돌아가시는구나’ 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스틸 라이프>라는 영화를 봤어요. 무연고자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공무원이 주인공이에요. ‘내가 하는 일이 이거다. 보이지 않아도, 죽어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지.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죽기까지 어떤 돌봄을 받았는지가 중요해.’ 하고 깨달았어요. 사실 요양원에서는 구조적 모순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기저귀를 그런 식으로 갈고, 남한테 일을 미루고 그러나요. 어르신들이 추워 보여서 무릎담요를 덮어드리면 자꾸 빨래 만들지 말라는 타박을 들어요. 다 일로만 보이는 거죠. 노동 현실이 힘드니 그런 입장도 이해가 되고…. 그래서 그만두고 데이케어센터에서 봉사를 했는데 거긴 자리가 잘 안 나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큰 조카가 아이를 낳았어요. 그 아이를 돌보면서 하루에 몇 시간 일할 수 있는 재가방문을 하게 된 거죠.
몸도 마음도 고충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은 근골격계 질환이 많아요. 기저귀 케어든 욕창 드레싱이든 허리를 구부리고, 힘을 많이 쓰니까요. 지금 시스템에서는 좋은 돌봄이 되기 어려워요. 요양보호사 1명당 2.3명의 어르신을 돌본다고 돼 있지만 3교대 근무를 하니 한 사람이 돌보는 수가 많아질 수밖에요. 쉬는 시간? 어떻게 갖나요. 어르신이 침대에서 떨어지려 하는데 변을 보셨는데, 쉬는 시간 끝나고 돌볼게요 나중에 기저귀 갈아줄게요 이럴 순 없잖아요. 그래서 분리된 요양보호사 휴게실이 갖춰져야 해요. 또 샤워도 할 수 있게 하고요. 그게 인권 아닐까요. 옷을 갈아입어도 냄새가 나거든요. 똥오줌 냄새 풍기면서 아침에 퇴근할 때 출근하는 사람들과 지하철을 같이 타면 정말 슬플 때가 있어요. 할 사람은 하고 말 사람은 말더라도 기본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구조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돌봄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요.
눈곱 닦기! 사람이 기본적인 관리는 해야 하니까요. 입술 트면 아파 보이니까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담당하는 9명 모두에게 립밤을 발라드리곤 했어요. 또 종일 누워 있으면 피부가 눌려서 근육까지 다 아프거든요. 일으켜서 등부터 긁어드리고, 혈액 순환이 되게 하죠. 욕창 안 걸리도록요. 혈액 순환이 안 돼서 시퍼런 발도 주물러드리고요. 멘소래담 발라 마사지해 드리면 시원하고 좋다고 하세요. 그러면서 온몸에 상처난 데 없나 살펴요. 사실 케어란 게 전체적인 걸 봐야 하는 거죠.
돌보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 수학만 가르칠 게 아니라 남을 돌보는 마음을 가르치면 좋겠어요. 요양원에서 보니 자식이 부모 만나러 와서도 금방 가요. 어르신들은 피부마저 그립다고 제가 그래요. 쓰다듬고 안아드리고 등도 긁어주고요. 손발톱 깎아 드리면서 대화 나누고, 뭐 드시고 싶은지도 여쭙고 다음에 올 때 챙겨 오고요. 어른들은 먹는 게 큰 기쁨이에요. “다 먹어버렸어. 아껴 먹을걸.” 하고 울기도 해요. 그렇게 교육받고 상상력도 확장된다면 돌봄의 질이 좋아질 것 같아요. 요양보호사한테만 잘하라고 하지 말고 여러분도 잘해야죠(웃음).
이것만큼은 바뀌면 좋겠다 싶은 정책이 있을까요.
장기근속장려금의 경우 요양보호사가 소속돼 있는 장기요양기관을 바꾸면 그 수당을 안 줍니다. 소속 기관과 상관없이 일한 햇수에 맞게 줘야 해요. 또 최소 주당 25시간은 일할 수 있게 보장해 주고요. 하루 3시간만 일해서는 먹고살 수 없으니까요. 돈 때문에 하루 3시간씩 3건의 일을 몰아서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면 돌봄의 질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죠. 저도 그렇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부모돌봄을 하기도 하거든요. 이런 경우 보통 하루 1시간만 요양급여로 인정해 주고 있어요. 이런 것도 현실화돼야죠.
저처럼 부모돌봄을 앞두고 있는 세대에게 해줄 말씀이 있다면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돌보는 사람과 돌봄받는 사람 사이에 많은 마찰이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데 돌볼 사람들이 두려워만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돌봄은 하기 전엔 두렵고 피하고 싶은데,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신비한 세상이 펼쳐져요. 아기가 황금 똥만 눠도 “잘했네” 하잖아요. 우리 엄마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얼마나 감사한데요. 또 다 누워만 계시나? 걸어 다니면서 노화하거든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요양보호사를 보낸다던가 CCTV를 설치하고 밀키트를 보내드려도 되고요. 그러니 너무 쫄지 않아도 돼요.
돌봄을 ‘받는’ 상상을 해보신 적 있나요.
이 일을 하면서 담대함이 생겼어요. 내가 열심히 돌보니까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웃음). 누군가 나 같은 사람이 있겠지, 난 자식도 없는데 불쌍하게 여겨주겠지 싶어요. 그럼 기꺼이 그 동정심을 받아들여야지 생각해요. 그건 내가 동정심이 아닌 인간으로서 아픈 마음을 갖고 돌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내가 누워 있을 때도 나를 그렇게 여겼으면 좋겠어요. 그게 시스템적으로 되길 바라기에 지금 제가 목소리를 높이는 거고요. 진심이 우러나오는 질 높은 서비스를 하려면 역시 시스템, 표준화된 돌봄이 돼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