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에 대한 선구적 담론을 남긴 이는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공론장을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영역으로 정의한다. 이 공론장의 대표 격이 신문과 방송으로 이뤄진 언론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서구 근대 민주주의는 공론장에서 진행되는 사회갈등에 관한 토론과 이 토론에 기반한 합의를 통해 해결되는 정치체제다. 공론장은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두 힘인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을 민주주의의 핵심 거점이자 보루로 파악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셜미디어와 탈진실
21세기 들어 이 공론장이 새롭게 주목받아 왔다. 소셜미디어가 기성 공론장에 맞서는 새로운 공론장의 등장을 알렸고, 여론과 정치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개방·참여·공유를 내건 웹 2.0 시대의 소셜 네트워크 기반 위에 구축된 온라인 플랫폼이 소셜미디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이 소셜미디어를 대표한다.
통계 플랫폼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5년 2월까지 가장 많은 월간 활성 사용자(MAU; Monthly Active Users)를 보유한 소셜미디어는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약 30억7천만 명의 MAU를 확보하고 있고, 이어 유튜브 25억3천만 명, 인스타그램 20억 명, 왓츠앱 20억 명, 틱톡 15억9천만 명, 위챗 13억8천만 명이 뒤를 잇고 있다. 페이스북은 2004년에, 유튜브는 2005년에 등장했다. 주목할 것은 최근 들어 유튜브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화돼 온 반면 페이스북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돼 왔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있다. 뉴스 생산, 마케팅과 광고 그리고 정치 캠페인과 홍보에서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포스트트루스』에서 소셜미디어가 새로운 뉴스 매체로 떠오르며 ‘탈진실(post-truth)’ 경향이 두드러져 왔다고 분석한다.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함의한다.
매킨타이어는 이 탈진실이 등장한 배경으로 다섯 가지를 꼽는다. 사회심리학적 인지편향, 전통 미디어의 쇠퇴, 소셜미디어의 출현, 과학부인주의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이 확증편향 등의 인지편향과 페이스북·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가 갖는 힘이다. 확증편향이란 새로운 사실을 접했을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원래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뜻한다. 또 소셜미디어는 주로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뉴스만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정보의 편식이란 문제를 낳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20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 인기를 누리게 된 가장 중요한 까닭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충족해 준다는 데 있다. 인정 및 소통 욕구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통찰했듯 “인간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경우에 유의미성을 경험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에게 말을 걸어 존재를 증명하려는 인정 및 소통 욕구가 존재하는 한, 소셜미디어 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소셜미디어가 주조하는 공론장의 명암이다. 하버마스는 “인터넷이 원심력을 만들어낸다”라는 말을 통해 21세기 공론장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공론장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진리의 단수성보다는 복수성이, 규범의 질서보다는 무질서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에 인류는 이미 진입해 있다. 이러한 원심력과 복수성과 무질서의 시대에 소셜미디어 공론장은 빛과 그늘을 선명히 보여준다.
한편에서 소셜미디어 공론장은 시간과 공간의 구속을 벗어난 ‘유비쿼터스 공론장’이다.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실재의 장소에서 벗어나 가상의 공간에 자유롭게 접속함으로써 새로운 소통을 활성화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또 소셜미디어 공론장은 심미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개인의 정체성, 내러티브, 유희, 감수성, 이미지가 중시되고 사적인 이야기가 강화된다. 이러한 소셜미디어 공론장의 특징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갈수록 더 오래 잡아둔다.
다른 한편에서 소셜미디어 공론장은 정보의 양극화와 가짜뉴스의 범람 그리고 그 결과로써 탈진실 경향을 낳고 있다. 이러한 탈진실 경향은 오늘날 민주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힘은 서로 다른 생각을 수용하는 다원주의와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들의 합의를 추구하는 공론장에 있다. 그런데 오늘날 탈진실 현상에 담겨 있는, 자신들만이 옳다는 반다원주의 경향은 이 다원주의와 공론장을 위협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소셜미디어 공론장 확산···자기 계몽, 가짜뉴스
제도적 제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필요
소셜미디어 공론장의 명암은 우리 사회에서도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 사회 소셜미디어 공론장은 기성 공론장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해 온 아래로부터의 공론장이다. 거기에 심미적 공론장의 특성을 부가함으로써 작지 않은 흥미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사회 소셜미디어 공론장은 특히 정치적 이슈에 대해 보수 대 진보의 대립으로 견고하게 양극화돼 있다. 적지 않은 경우 상대방을 혐오하고 부정하고 악마화함으로써 배타적 진영 논리를 재생산하는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아래로부터의 공론장인 소셜미디어 공론장이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다원주의적 공론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사회가 만개하는 오늘날 분명한 경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보사회의 진전을 거역할 수 없듯 소셜미디어 공론장의 확산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소셜미디어 공론장이 민주주의 공론장을 위협하는 것을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는 점이다.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소셜미디어 공론장의 자기 계몽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중장기적 과제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제도적 제재가 요구된다. 소셜미디어 공론장에 대한 제재는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충분한 사회적 숙의와 민주적·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공론장 없이 건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소망스러운 소셜미디어 공론장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