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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서 선진국으로, 그리고 새로운 100년을 향한 도전
조병구 전 글로벌지식협력단지 단장, 한반도경제협력원 이사장 2025년 07월호
2025년, 대한민국은 광복 80주년이라는 역사적 이정표 위에 섰다. 지난 80년간 한국이 보여준 경이로운 압축성장의 첫 페이지는 1948년 사유재산권 보호를 명시한 「제헌헌법」 공포로 시작됐고 곧이어 농지개혁이 단행되며 발전의 양대 축을 세웠다. 

봉건적 잔재인 지주-소작인 관계를 청산하고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으로 다수의 자영농을 탄생시킨 농지개혁은 공동체의 안정을 도모하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동시에 모든 국민이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체득하게 한 실질적인 출발점이었다. 전후 아시아에서 토지개혁에 성공한 한국과 대만, 일본만이 산업화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농지개혁이 국가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잘 보여준다.

전후 복구에 힘쓰며 교육 인프라 확충해 인적자본 기반 마련···
내수에서 수출로, 경공업에서 중화학 공업 그리고 첨단산업으로


이처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기틀을 동시에 잡고 재건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다지며 시작한 대한민국은 곧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시련을 겪게 된다. 전쟁이 휩쓸고 간 1950년대의 절대 과제는 생존이었다. 파괴된 산업 기반 속에서 한국경제는 미국의 경제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밀가루, 설탕, 면화를 가공하는 ‘삼백(三白) 산업’이 당시 산업의 전부라 할 만큼 자립경제의 길은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전후 복구의 와중에도 교육 인프라 확충에 집중함으로써 훗날 경제개발에 필요한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역사적인 방향 전환을 감행한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경제성장에 집중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초반에는 다른 개도국과 마찬가지로 수입을 줄이고 국내 생산을 촉진하는 ‘수입대체산업 전략’을 추진했으나, 초기 2년간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도모한 것이다. 발전 전략을 전면 수정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정책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어서 현상 유지를 원하는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없던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수출’이었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 아래 정부 주도의 수출주도공업화 정책이 본격화됐다. 

우선 정부는 성장률 목표를 7.1%에서 5%로 현실에 맞게 하향 조정하고 제철소 및 종합기계제작소 건설 계획 등 비현실적 계획들을 모두 철회했다. 그리고 원조경제체제에 맞춰져 있던 환율 및 관련 제도들을 전면 수정했다. 수출을 위한 원자재 수입을 자유화하고 모든 면에서 수출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중요한 점은 정부 주도로 산업육성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실제 산업화를 담당할 주체는 민간기업으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 산업화를 추진하려던 개도국 대부분이 민간기업보다는 공기업에 의존하려다 실패했다.

또 하나 특이한 정책은 ‘수출진흥확대회의’와 ‘경제동향회의’ 등 회의체를 설치해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강화하고 수출 확대를 위해 정책을 적극 조율했다는 점이다. 1965년 처음 설치된 이후 대통령이 매달 직접 회의를 주관하며 실질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후일 한국의 발전 경험을 배운 많은 나라가 이와 같은 회의체들을 설치·운영했지만 제한적 활용에 그치다 유명무실해진 경우가 많았다.

초기에는 가발, 합판, 신발, 섬유 등 경공업 제품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서울 구로공단과 마산 수출자유지역에서 밤낮 없이 돌아가던 미싱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우리 모두의 희망이었다. 1960년대 후반 한국의 수출 전략이 적중해 상당한 성과를 이뤘으나 다른 개도국들이 경쟁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경공업 제품은 점차 경쟁력을 잃게 됐다.

경공업 중심의 성장에 한계를 느낀 정부는 1970년대 부가가치가 높은 중화학 공업 육성으로 국가 전략을 전환한다. 당시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주한미군 철수 방침이 정해지면서 국방산업 육성이 시급한 과제가 된 것도 전략 전환의 요인이었다. 자본도 기술도 없는 상황에 군수산업을 육성하면서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한다는 것은 국가의 명운을 건 도박과도 같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한 포항종합제철 건설, 세계를 제패한 조선업의 기틀을 닦은 현대조선소 설립, 그리고 자동차와 석유화학, 전자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이어졌다. 이 시기 수출 품목은 선박, 철강, 전자제품 등으로 점차 고도화됐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 위기 속에서도 중동 건설 붐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2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글로벌 수요가 위축되며 한국의 공장 가동률이 30% 이하로 떨어지고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져 한국경제는 다시 한번 획기적인 체질 개선의 고통을 감내하게 된다.

경제 안정화와 자율화를 기치로 내건 정부는 뼈를 깎는 긴축정책으로 연 30%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을 3년 만에 3%로 떨어뜨리고 정부 재정 건전화를 달성한다. 이러한 성과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건전 재정을 유지하는 기반을 제공했다. 뒤따른 기업 통폐합, 생산설비 조정 등 산업합리화 조치는 한국경제에 숨통을 열어준 플라자 합의와 저유가·저금리·저달러라는 ‘3저 호황’의 기회를 적극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됐다.

1980년대에 들어 한국경제는 3저 호황의 순풍을 맞아 중화학 공업 투자의 결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컬러TV, VCR 등이 새로운 주력 수출 상품으로 부상했다. 특히 반도체산업에 대한 선구적인 투자는 훗날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이 됐다. 처음 삼성전자가 반도체에 투자를 시작한 1983년 무렵은 일본이 전 세계 반도체의 80%를 생산하던 시절이라 무모한 투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정부와 협력해 반도체 기술개발을 추진했고,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의 영향으로 일본 반도체산업이 휘청거리는 틈을 타 반도체산업의 선두 주자로 나설 수 있었다. 한편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는 개도국의 굴레를 벗고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자신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고도성장의 영광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었다. 정경유착과 부실기업, 금융기관의 동반 부실은 결국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난을 초래했다. 국민들은 IMF의 혹독한 구조조정 칼날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위기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장롱 속 금을 꺼내 나라 빚을 갚는 데 힘을 보탠 ‘금 모으기 운동’은 국민적 저력의 발현이었다. 이 위기를 계기로 한국경제는 과거의 관치금융과 재벌 중심의 폐쇄적 구조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개방된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체질 개선을 이뤘다. 

IMF 외환위기 졸업 이후 대한민국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IT산업에서 찾았다. 정부의 과감한 초고속 인터넷망 투자와 국민적 관심에 힘입어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구축했고, 이는 수많은 벤처기업의 탄생과 IT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이후 변화한 수출산업 품목의 중심에는 단연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가 자리 잡았다. 과거의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첨단산업으로 완벽하게 전환한 것이다. 더 나아가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한미 FTA, 한·EU FTA 등 거대 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며 글로벌 경제 영토를 넓혔고, K팝과 영화 등 K컬처는 문화적 영향력을 넘어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부상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빛나는 80년, 그리고 양극화와 저출생 극복 등 산적한 도전과제

대한민국은 식민지배의 잿더미 위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변모하며 빛나는 80년을 이뤘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면모도 있다. 성장의 과실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하면서 심화된 양극화 문제는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위협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산가와 무산자의 격차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를 감소시켜 잠재성장률 약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반도체 등 소수 주력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미중 기술 패권경쟁 심화 같은 대외 불확실성 또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협한다.

광복 100년을 향한 새로운 출발선에서 우리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만 머무를 수 없다. AI, 바이오,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해 성장의 온기가 사회 전체에 퍼지는 ‘포용적 성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지난 80년의 성취를 발판 삼아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 성숙하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때다.

지난 80년 한국 발전의 역사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강력한 추진력으로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낸 위대한 서사였다. 한 외국 경제학자의 말처럼 “한국의 경제발전은 기적의 산물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합심해서 이뤄낸 노력과 헌신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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