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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이룬 한국경제 80년… 경제성장과 후생의 균형 달성해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교수 2025년 07월호
오늘날 한국경제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80년 전인 1945년 광복 당시 한국경제가 어땠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37년 중일전쟁, 1945년까지 계속된 2차 세계대전까지 장기간 전쟁을 치르며 일본은 한국을 전초기지 삼아 강력한 전시경제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된 1940년 이후에는 미곡을 철저하게 통제했고 철사나 철판 등 모든 철제품 판매를 금지했으며 가정집에 있는 놋그릇과 수저, 젓가락까지 수거하는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현대그룹 창업자 고(故) 정주영 회장이 쌀가게인 ‘경일상회’를 차려 안정적 생활을 하다가 당시의 미곡통제령 때문에 사업을 접고 중고자동차 수리업에 뛰어들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현대차 창업으로 이어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7차에 걸쳐 실행···
WTO·OECD 가입 등 자발적인 대외개방으로 고속성장


2차 세계대전 종전에 따른 해방의 기쁨도 잠시였다. 남북 분단의 비극 속에서 북한이 남한 단독 선거에 불만을 품고 전력 공급을 중단해 남한 전체가 캄캄한 밤을 보냈던 혼돈의 시기를 거쳐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다. 그야말로 전화(戰火)의 잿더미에 뒤덮이게 된 것이다. 

어둡기만 했던 해방 시기로부터 80년이 지났다. 2025년 한국경제의 위상은 그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세계 10대 무역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1인당 GDP는 2023년 말 기준 3만5,569.9달러로 환율 상황에 따라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일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 

성장 측면에서 한국은 7차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꾸준히 수립하고 실행했으며, 과감한 수출주도 정책과 자발적인 대외개방 정책으로 고속성장을 이뤄냈다. 1970년대에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경험했고 1973년 이후 중화학 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과정에서 재정과 통화가 팽창해 1980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0%가 넘는 살인적인 고물가의 후유증을 겪었다. 1980년대 초반 안정화와 자율화라는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담대한 전환으로 고물가를 극복했으며 1980년대 중반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환율·금리·물가’의 3저 호황을 기반으로 사상 처음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1995년에는 적극적으로 WTO에 가입해 국제무역 ‘룰 세팅(rule setting)’에 참여하게 됐으며 1996년 OECD 가입으로 각종 제도 선진화의 본격적 계기를 맞게 된다. 이 무렵 ‘기업지배구조(기업 자원의 조달과 운용 및 배당 등에 대한 의사결정체제, 위험관리체제, 이해관계자를 대리한 감시체제를 구축해 주주·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제도)’라는 용어가 정책보고서에 처음 등장하자 “정부가 모든 기업을 지배하려고 한다. 좌파 정부 아니냐?”라는 의혹의 눈총이 쏟아졌던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이루게 된다. 환율제도가 고정환율제에서 시장변동환율제로 바뀌고 자본시장이 전면 자유화된 결과 금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율화되는 등 이 시점에 금융시장 고도화가 이뤄졌다. 

한편 산업구조와 기술발전 측면에서는 1960년대 경공업에서 1970년대 이후 중화학 공업으로 산업구조가 크게 변화했고, 1994년 이후부터는 정보화 기술혁명이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퀀텀 점프가 이뤄졌다. ‘산업화 시대에는 우리가 일본에 뒤져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지만 정보화에서는 반드시 일본을 추월한다’는 의지로 정보통신과 반도체 등 IT산업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 현재 한국은 정보화 시대 선도국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1960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보다 가난했던 한국경제가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외형적 고속성장에 더해 분배 측면의 경제민주화가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성장과 분배는 경제를 이끄는 쌍끌이 축이며 어느 일방의 주도만으로는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분배라는 경제민주화 측면에서 보면, 이미 1970년대에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등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오랜 논란 끝에 1986년 「국민연금법」이 제정됐고 1988년부터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이 시행돼 현재는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또한 의료보험과 고용보험, 산업재해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은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 경제발전과 함께 점진적으로 제도적 정착을 이뤄냈다. 



1970~1980년대 4대 보험 및 최저임금제 도입·확대,
기초생활비 지급 등 분배 측면의 경제민주화 달성


우선 의료보험은 1977년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도입된 이후 지역별, 직능별, 사업장별로 점차 대상 범위가 확대됐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는 한국 국민의 의료 접근성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는 사실이 증명되기도 했다. 고용보험의 경우 1995년 7월 3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작해 1998년 전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1963년 제정돼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만 적용되다 1965년 2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2000년에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4대 사회보장제도가 전 사업장으로 확대·심화 실시되는 한편, 2000년 10월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든 먹고 자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으며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해 준다’는 것을 법으로 공식 선언한 것이었다. IMF 구제금융 시절 극도로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도 정부는 3조 원을 투입해 저소득층 150만 명에 기초생활비를 지급했고 이후 지급 대상과 금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최저임금제 도입 논의가 시작돼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기업과 노동자 간 일부 논란 속에도 최저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25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0원으로 1만 원을 넘어섰다.

성장과 분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영원히 논란이 지속될 이슈다. 사회안전망이 강화될수록 재정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기업의 노동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기술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언제든 성장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의 한국경제는 양적 성장과 더불어 경제민주화라는 질적 후생의 균형을 비교적 잘 유지해 오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선진국의 도움을 받은 수많은 수원국 가운데 원조 공여국으로 올라선 유일한 국가다. 당시 국제원조기구들이 차관을 제공하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그 많은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퇴직한 FBI 직원들까지 고용해 추적해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도로와 철도, 항만 등 인프라 건설에 착실하게 투입됐고 기간 내 모든 차관을 상환해 국제기구의 한국 담당 ‘코리아 데스크’들이 예외 없이 고속승진을 했다는 사실은 개도국을 지원하는 국제기구에서 유명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광복 후 지난 80년, 오늘날의 한국경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 온 그 치열함과 근면성이 창의적 상상력과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효율성으로 심화돼 향후 80년의 한국경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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