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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으로 일어선 한국경제
강경종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년 07월호
정부는 숙련 노동자에서 고급 과학기술인에 이르기까지 체계적 양성 기반을 마련해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 제조업 성장기에 충분한 숙련 인력을 확보했고 1980~1990년대에는 지식기반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적자원 투자는 한국이 초기 고속성장기를 넘어 1990년대 이후 정보 통신,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해방 이후 한국은 미군정하에서의 정부 수립, 전후 복구 및 원조경제를 통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으며 인적자원, 특히 숙련된 기술 인력의 양성을 중점 과제로 설정했다. 당시 한국경제는 전후 복구와 농업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서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 필수 과제로 부상했다. 

1950년대부터 정부는 풍부한 노동 가능 인구와 국민의 높은 교육열을 활용해 ‘교육을 통해 국가를 세운다’는 교육입국 정책을 추진했다. 유엔 한국재건단의 지원을 받아 공업고등학교, 수산고등학교 등 실업계 고등학교 시설을 복구하고 ‘1인(人) 1기(技) 교육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실업교육을 국가 재건의 기반으로 삼았다. 1957년에는 농업·공업·상업 과정을 동시에 운영하는 종합고등학교 제도를 도입해 고등교육의 다양성을 높였으며, 같은 해 시행된 ‘실업기술교육 5개년 계획’을 통해 직업기술교육의 기반을 마련했다.

5년제 실업고등전문학교 설립해 산업 인력 수요 충족하고,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맞춰 현장실습 중심으로 학제 개편


196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정부는 직업교육과 과학·기술 교육을 제도적으로 강화했다. 1963년 제정된 「산업교육진흥법」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어 1964년 과학·기술교육 진흥 정책과 1965년 국가경제성장 기여 교육 방안을 발표하며 실업·산업 교육 지원이 추진됐다. 

이 시기에 고등직업교육기관의 전환점을 이룬 사례로 1964년 설립된 5년제 실업고등전문학교를 들 수 있다. 이들 기관은 중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산업기술을 교육해 중견 기술인으로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970년에 2~3년제 전문학교로 개편되면서 1969년 23개교였던 전문학교의 수는 1975년 87개교, 1978년 112개교로 늘었다. 이는 산업 현장의 인력 수요가 교육체계 확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발맞춰 공업고등학교 교육과정도 특화됐다. 1974년부터 실습 중심 교육을 강화하는 공업고등학교 특성화 사업이 추진됐고, 같은 해 제정된 「국가기술자격법」은 실업계 학생들의 기술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 그러나 전문학교의 양적 성장에 비해 교육의 질적 수준은 뒤처져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79년에는 단기대학과 전문학교를 통합해 2~3년제 전문대학으로 일원화하는 교육체제 개편이 이뤄졌다. 

전문대학은 입학자격 강화, 교육과정 전문화, 실습시설 확충 등을 통해 산업 수요에 맞는 직업인을 양성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처럼 확충된 직업교육 인프라는 수출공장 및 중공업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기술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산업 고도화가 진행되고 세계화가 가속하면서 과학기술교육도 한 단계 발전했다. 1986년 정부는 과학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과학기술교육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했고, 1990년대에는 진로·직업 교육을 체계적으로 개편해 실효성을 높였다. 1991년 대통령 교육정책자문회의는 중등 진로·직업 교육체제 구축 방안을 제시했고, 1993년 발표된 ‘신경제 5개년 계획’에 따라 공업고등학교 교육과정은 현장실습 중심의 ‘2+1 학제’로 재편돼 학생들이 졸업 전에 산업체에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설립을 통해 본격화됐다. 1971년 국내 최초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원인 한국과학원(KAIS)이 출범했다. 정부는 KAIS 설립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고 미국 차관을 활용해 최신 장비와 우수 교수진을 확보했으며,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과 병역특례 등 혜택을 제공했다. KAIS는 해외 유학에 의존하던 고급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국내에서 수행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는 한국의 고도성장을 기술 측면에서 뒷받침하는 기반이 됐다. 1981년에는 KAIS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통합돼 KAIST로 확대 출범했고 이후 KAIST는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핵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KAIST 출신 과학기술자들이 활약하며 국가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KIST 등 미국 차관으로 설립된 정부출연연,
대학·기업이 하기 어려운 과제 수행하며 국가 R&D 역량 강화


정부출연연구기관도 경제발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1966년 정부는 최초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KIST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 KIST는 미국의 차관으로 규모를 확장하고 기계, 재료, 전자, 화학, 식품공학 등의 분야에서 산업발전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수행했다. 

1975년까지 KIST는 300여 건의 연구과제와 280여 편의 논문 발표, 80여 건의 특허 출원 등 단기간에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거뒀다. 이는 산업계의 기술 문제 해결과 신기술 개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며 국가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했다. 1989년 KIST는 KAIST에서 분리된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으로 재설립됐다.

1973년 「특정연구기관 육성법」 제정 이후 정부는 분야별 전문연구소를 연이어 설립했다. 1973년에는 선박연구소와 해양개발연구소가 KIST 부설로 설치됐으며 1975년에는 한국표준연구소가 신설됐다. 1976년에는 자원개발연구소, 한국화학연구소,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등이 개편 또는 신설돼 중화학 공업 등 주요 산업 분야의 연구 수요에 대응했다.

이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대학과 민간기업이 수행하기 어려운 과제를 맡아 R&D를 수행하며 국가 R&D 역량을 강화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특히 KIST는 1970~19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기관으로 성장했으며, 여기서 배출된 연구자들은 다양한 출연연구기관 설립에 참여해 국내 과학기술 연구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기관들은 산업 현장과 긴밀히 연계해 연구를 추진하고 기술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국가의 경제발전 전략을 뒷받침했다.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97년까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인적자원 개발은 핵심적인 요소였다. 정부는 초등교육 의무화, 직업·기술 교육 강화, KAIST 등 연구중심대학 설립, 정부출연연구기관 확충 등 일관된 정책으로 숙련 노동자에서 고급 과학기술인에 이르기까지 체계적 인력 양성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 제조업 성장기에 숙련 인력을 충분히 확보했고 1980~1990년대에는 지식기반산업으로의 전환이 가능했다. 이러한 인적자원 투자는 한국이 초기 고속성장기를 넘어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경제 성장에 기여한 중요한 요인은 풍부한 인적자원이었으며, 숙련 노동력과 고급 인재 양성은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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