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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계기로 훨씬 튼튼해진 금융시장, 양적·질적 개선 위에 IT 기술력 접목이 중요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년 08월호
우리나라는 매달 환율 목표 수준을 한국은행과 정부가 함께 설정해서 운용했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금리와 환율 등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금융시장 규모와 함께 외환 거래량이 급증하고 금융상품이 다양화 되면서 더 이상 정부가 환율이나 금리 수준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던 만큼 금융 자유화는 필연적 수순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 국난’으로 불리는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와 사회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채가 1천억 달러가 넘는데 외환보유액은 4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나라 곳간이 비자 IMF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금융 구조조정과 시장개방,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담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경제주권을 상실했다. 그 결과 수많은 기업과 금융회사가 사라졌다. 금융권에서만 9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지점 폐쇄와 정리해고를 앞둔 한 시중은행 직원들의 하루를 그린 다큐멘터리가 온 국민을 울리며 ‘눈물의 비디오’라 불렸을 정도다.

IMF의 혹독한 구조개혁과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이 우리 경제구조를 바꾸면서 비정규직 양산, 양극화 확대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기업과 금융회사는 훨씬 튼튼해졌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밑바탕이 됐다. 우리 금융시장도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일관된 금융시스템 강화, 금융 자유화 노력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어왔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체계 개편해 금융 안정 도모하고
글로벌 추세에 맞는 금융소비자 보호제도 확립


금융시스템 강화는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던진 숙제였다.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 5개의 시중은행을 포함해 수십 개의 상호신용금고와 종합금융회사의 문을 닫고 100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 구조조정을 진행했는데, 이는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은행의 경우 점차 소수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증권업과 보험업을 아우르는 금융지주회사나 금융그룹이 형성되면서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로 불리던 5대 시중은행이 사라지고 현재의 4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로 재편됐다. 비은행 금융회사도 대형사를 중심으로 종합금융그룹화가 진행됨으로써 개별 금융회사의 체력이 강화됐다. 

금융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감독체계도 개편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1999년, 기존에 분산돼 있던 은행과 비은행, 증권, 보험 감독권을 통합한 금융감독원과 함께 정부 조직인 금융감독위원회가 설립됐고 예금보험공사의 역할이 확대됐다. 금융 안정의 근간인 물가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은 은행감독권을 넘기는 대신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부여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재정경제부로부터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 업무 등을 넘겨받아 금융위원회로 확대 개편됐고, 자기자본비율 규제 등에 대한 감독 및 건전성 규제가 강화됐다. 이후 은행권 스트레스 테스트(자본 건전성 평가), 위기대응 시나리오 등이 정례화됐으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주택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등 가계부채 관리정책이 도입됐다. 외화유동성 관리를 비롯한 외환 건전성 정책이 시행되면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크게 향상됐다. 또한 증권·자산운용·신탁 등 자본시장 전반을 통합해 규율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명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됐다. 더불어 투자자와 소비자의 권익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금융상품의 필수사항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판매하는 ‘불완전판매’를 금지하는 등 금융소비자 보호제도가 글로벌 추세에 맞게 확립됐다. 
 

금융 자유화로 산업 내 경쟁 촉진하고 경영 효율성 증진···
이제는 MSCI 지수 편입 등 선진금융시장으로 도약할 때


금융 자유화 및 글로벌화도 빠르게 진전됐다. 금융시장 개방으로 확대된 외국계 금융회사의 자유로운 진입은 금융산업 내 경쟁을 촉진해 국내 금융회사의 경영 효율성을 증진하고 금융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향상했으며 금융감독기법의 선진화 및 각종 금융 관련 제도나 인프라 등의 개선에 기여했다. 

또한 금리와 환율 등 금융시장 가격이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 시장에 의해 결정되도록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해당 제도로 이행하기 전에는 매달 환율 목표 수준을 한국은행과 정부가 함께 설정해서 운용했다. 예를 들면 필자는 한국은행에서 환율을 담당했는데 월말이면 한국은행 총재가 결재한 다음 달 목표환율 문서를 가지고 정부과천청사로 갔다. 환율 담당 부서에 전해준 뒤 재무부 장관의 합의 서명을 받아 다시 이를 품에 소중히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금융시장 규모와 함께 외환 거래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금융상품이 다양화되면서 더 이상 정부가 환율이나 금리 수준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즉 금융 자유화는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2000년대 들어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방카슈랑스 도입, 자산유동화증권 및 파생상품 등 신상품 활성화, 국채 전문 딜러제 도입, 국채 장기물 발행 확대 등 금융상품이 더욱 다양해지고 금융회사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특히 금융의 디지털화 진전으로 2017년에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하고 모바일뱅킹과 간편결제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오면서 최근에는 전체 금융거래의 80% 이상이 비대면·모바일 채널로 이뤄지고 있다. 핀테크와 빅테크의 금융시장 진출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거대 IT 기업이 금융업으로 진출했으며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등 금융혁신도 확산하고 있다. 

금융시장 선진화와 함께 주식, 채권 등의 증권이 자금 조달 및 운용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기업들은 자본시장 발달, 신금융기법 개발 등에 힘입어 직접금융 조달 비중을 확대하는 등 탈중개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녹색금융과 포용금융 등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금융시장은 비약적인 성장과 함께 대내외 충격에 대한 회복력과 위기 대응력을 크게 향상시키며 글로벌화됐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6% 이상으로 높아지고 부실채권비율은 0.5% 수준으로 낮아지는 등 자본 적정성, 유동성과 같은 주요 지표가 현저히 개선됐으며, 외환위기 당시 39억 달러로까지 떨어졌던 외환보유액은 4천억 달러에 달해 금융시장 안정성이 크게 강화됐다. 또한 채권시장 규모는 1998년 400조 원에서 2,600조 원 수준으로,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조 원에서 2,800조 원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10% 미만에서 30%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제는 우리 금융시장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도전해 명실상부한 선진 금융시장으로 도약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외환거래 시스템 구축, 금융 지배구조의 자율성·책임성 강화, 금융회사 경영의 독립성, 금융시장의 공정성 확보 등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 가상자산시장 확대, 스테이블코인의 등장 등 기존의 금융시스템이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양적 성장과 질적 개선의 토대 위에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IT 기술력을 접목한다면 디지털 금융 시대 글로벌 금융 선도 국가로서의 밝은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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