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자 21세기의 1분기를 지나는 지금, 전 세계가 직면한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기후위기와 인구위기이며 한국은 그 중심에 서 있다. 두 위기의 공통점은 극적인 반전 없이 계속될 경우 인류 멸종으로 수렴하는 사회적 ‘집단 자살’ 행태라는 점과 진행 추세를 돌이키기가 매우 어려워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기 완화(mitigation)’ 대책과 더불어 ‘위기 적응(adaptation)’ 대책을 같이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기후위기는 자연과 인간 간의 균형 회복이 도전 과제이지만, 인구위기는 사람과 사람 간, 특히 세대 간 혹은 지역 간 균형 회복이 도전 과제라는 것이다. 또한 기후위기는 자연 반응의 불확실성이 커 대응이 어렵지만, 인구위기는 개인의 결혼, 출산, 이주라는 합리적 선택에 기인해 변화가 어렵고 한번 내린 결정의 영향이 최소 30년(한 세대)은 지속되는 강한 지속성 때문에 대응이 어려워, 대응 양상이 달라야 한다.
나아가 기후위기는 폭염, 해수면 상승, 자연재해 빈도 증가와 같은 기후변화로 현세대가 일상에서 위기를 체감하는 것과는 달리, 인구위기는 인구 소멸이라는 결말이 예정돼 있음에도 당장 체감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먼 미래의 일이요 당장은 내 일이 아니라는 피상적 인식이 만연하다. 이 글에서는 인구위기가 내포한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직시하고 그 결과가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며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대응해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구위기로 기존 사회·경제 제도 붕괴하며 전방위 충격 발생···
현 출산율 계속되면 2085년엔 대한민국은 도시국가 될 것
이미 2021년에 전 세계 국가의 50.4%가 합계출산율이 대체출산율(인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출산율)보다 낮은 ‘저출산 사회’로 분류됐다. 즉, 절대 다수의 나라에서 인구 수준이 이미 감소하고 있거나 곧 감소 추세에 진입할 것이고, 그 감소 추세는 최소 100년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이러한 장기적인 인구 감소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산업혁명 이후 설계된 많은 사회·경제 제도와 정책은 인구 성장과 세대 간 인구 균형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인구위기의 충격은 몇백 년 후에 현실화할 수도 있는 인류 소멸 문제도 있지만, 당장 인구구조에 대한 전제가 깨짐으로 인해 기존 사회·경제 제도와 정책이 붕괴되면서 나타날 문제도 있다. 가장 단적인 사례가 세대 간 인구 불균형으로 도래할 연금제도의 붕괴다. 이 외에도 노동시장 불균형, 교육 체계 붕괴, 혁신 동력 상실, 분배 악화, 지방소멸로 인한 국내 산업공급망 붕괴, 식량과 의료서비스 같은 기초 소비재의 수요·공급 미스매치 등 전방위적인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모두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0.7대인 대한민국은 인구위기의 첨단에 서 있으며, 이미 2020년 이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기준 장래 인구 추계 결과 2072년 출산율은 1.0 수준이며 유엔의 「세계인구전망 보고서」는 한국의 출산율이 2100년까지 반등할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하지만, 그 출산율 역시 1.4로 대체출산율인 2.1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러한 추세가 오백 년 계속될 경우 대한민국 인구가 0으로 수렴하는 극단적인 상상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향후 75년 동안은 대한민국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미래는 정해진 것이다.
좀 더 실감할 수 있게 산술적인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합계출산율 0.7이라는 것은 기대수명, 남녀 성비, 첫 출산 평균 연령 등이 유지될 경우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기존 인구가 3분의 1 수준까지 감소한다는 의미다. 2024년 5,175만 명인 한국 인구가 30년 후에는 1,725만 명, 두 세대가 지난 60년 후에는 575만 명, 세 번째 세대가 지나면 192만 명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2085년, 즉 생전에 관찰할 수 있는 손주 세대에는 대한민국이 현재 싱가포르(2024년 604만 명)보다 작은 도시국가가 된다는 의미이고, 모든 한국인이 대한민국 영토의 99.4%를 비워둔 채로 모두 서울(2024년 929만 명)에 모여 넉넉한 공간에서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30년이 더 지나면 모든 사람이 강남 3구에 살게 될 수도 있다. “Dreams come true!”인가? 192만 명이 강남 3구에 모여 사는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상상이 실현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가능성이 3세대 만에 극적으로 출산율이 세 배가 뛰어 대체출산율을 회복할 가능성보다는 커 보인다.
저출산·고령화 강화 추세로 인한 세대 간 인구 불균형 심화는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부양해야 하는 노인인구(65세 이상)의 비율인 노인부양비가 연금제도가 설계된 1988년에는 4.6이었으나, 2024년에는 17이고, 2054년 추정치는 약 60이다. 경제활동참가율이 약 60%임을 감안하면 30년 후 경제활동 인구 1명이 본인 외 노인 1명의 생계를 감당할 만큼 1인당 생산력이 높은 세상이 돼야 한다. 동시에 연금 구조개혁이 없다면 세대 간 재분배를 위해 미래 경제활동인구가 지불해야 할 소득세와 연금 등 4대 보험료를 포함한 실제 세율은 50%를 훨씬 넘을 수도 있다. 이러한 연금 및 사회보험 부담으로 인한 세대 간 갈등은 불가피하며, 상당수 청년의 해외이주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저출산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것 역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AI의 기술 진보 넘어서는 근본적인 관점의 혁신으로 연금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사회경제 ‘연결’ 시스템 재설계할 필요
인구위기의 무서운 점은 개인의 합리적 선택으로 나타난 현상의 결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화의 악순환의 힘은 매우 세며 사회에 내재화된다. 따라서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혁신 없이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마치 군주제를 뒤엎고 민주주의를 채택한다거나, 중앙계획경제를 뒤엎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 같은 수준의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인구위기 대응이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제도적 패러다임 전환과정에서 출산율 제고와 같은 ‘위기 완화’ 대응도 해야 하지만, 임박한 사회경제적 충격에 대비하는 ‘위기 적응’ 대응이 시급하다.
우선, 무엇보다 시급해 보이는 것은 연금제도 개혁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연금제도의 모수개혁만으론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그 구조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미래의 인적자본 형성과 교육이 이뤄지는 플랫폼이 현재와 같은 ‘학교’일 수 없음을 인식하고 교육 시스템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방 소멸은 단순히 지방경제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순차적 인구 소멸’이므로 수도권 집중이라는 관점보다는 궁극적으로 수도권 소멸과 우리 산업 생태계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
요즘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AI와 같은 기술진보만으로는 인구위기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는다. AI 기술진보를 통해 노동력 감소와 성장의 결손이 메워지는 효과는 있겠지만, 인구감소에 따른 혁신 아이디어 풀의 축소로 인한 혁신 성장 감소 효과와 AI 접근성의 불평등이 가져올 사회 전체의 불평등 확대는 AI 발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AI의 학습 기반은 사람의 활동과 상상으로 생성된 데이터이고, 그 아이디어와 데이터의 풀이 축소되면 AI의 학습 기반 역시 제한된다. AI가 사람처럼 자의식을 갖는 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제약도 극복될 수 있으나, 그 AI는 사람의 수단이 아니라 새로 탄생한 종이 되며, 이 신종 존재는 인류 생존의 또 다른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기후위기와 더불어 인구위기 시대인 지금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기술진보에만 명운을 걸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한국과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연결’할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상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