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3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AI 행동계획(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하면서 미국이 AI 혁신을 주도할 것이며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절대로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전주인 7월 15일 ‘제1회 펜실베이니아 에너지·혁신 서밋’에 참석해 20여 개 기술·에너지 기업들이 펜실베이니아에 920억 달러 규모의 AI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고, 이 중 560억 달러는 AI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신규 에너지 인프라 투자임을 천명했다. GPU 확보 등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나 무엇보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AI 성공에 필수 조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엔 AI 인프라 갖추고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국운이 갈릴 것
이제 세계는 에너지·자원 안보와 AI 주도권을 둘러싸고 전례 없는 경쟁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AI 기술이 에너지 집약적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가운데 주요국은 에너지 확보를 경제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자원 무기화,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은 에너지 전환의 외생 변수로 작용하며 한국과 같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구조적 도전을 예고한다.
이와 동시에 국내에서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저하와 국가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는 전력 수요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편 에너지 소비 효율화와 전력 시스템 혁신을 시급히 요구하고 있다. 즉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명제 속에서 한국은 ‘고비용·저효율’ 에너지 체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경제성장을 위한 AI 데이터센터를 확보하고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모두 달성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한 것이다. 미래에는 AI 인프라를 갖출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그리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AI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나눠져 국운이 결정될 것이다.
AI는 그 자체로 새로운 전력 소비 주체다. 텍스트 한 줄로 영상, 음악, 프로그램을 생성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그 이면에는 막대한 전력 소모가 뒤따른다. 구글 검색 한 번에 평균 0.3Wh의 전력이 들고 챗GPT는 그 10배 가까운 2.9Wh를 소비한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60%는 미국에 있는데 2030년까지 미국 데이터센터들이 사용할 전기량은 500TWh로 우리나라가 1년간 사용하는 양인 약 560TWh에 육박한다. 전기 사용이 데이터센터의 핵심이며 그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의 xAI가 공개한 AI 챗봇 ‘그록 4’는 엔비디아의 GPU 20만 개로 구성된 데이터센터에 의해 가동된다. 이때 다양한 배터리 패키지인 파워팩을 활용해 전력부하 변동을 제어하고 수요·공급을 실시간으로 맞추고 있다. AI에 전기가 24시간 365일 강건하게 공급돼야 수급을 실시간으로 맞출 수 있고 나아가 적정 주파수(60Hz)와 전압(220V)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AI가 탈 없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2042년까지 562조 원이 투입될 계획인데, 이 단지 운영에만 10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 전압과 주파수의 미세한 변동에도 수율이 급감하는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양’만이 아니라 ‘품질’ 높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그러나 수도권과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처와 발전 자원이 위치한 동해안·서해안 지역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정부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술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총 12조 원 이상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송전망 건설에는 지역 주민 반발과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중대한 장벽이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규모를 121.9GW까지 늘리고, 원자력은 신규 3기를 추가해 전체 발전량의 35.2%를 담당하게 할 계획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간헐성과 변동성 때문에 제어가 어렵고, 원자력은 전력 계통의 부하 변동에 대응해 발전기의 출력량을 조정하는 부하추종을 할 수 없다.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송배전 인프라 확충이 병행되지 않으면 정부의 목표는 실행되기 어렵다.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원전의 경직성을 해결하려면 유연성 자원인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이 필수다. 하지만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LNG 발전을 2023년 43.2GW에서 2038년 69.2GW로 설비 용량은 1.5배 늘리면서도 발전 비중은 26.8%에서 10.6%로 줄여 가동률은 낮춰야 하는 이중 과제가 부여된 상황이다. 이런 수익 구조에서는 그 누구도 LNG 발전소에 투자하기 어렵다. 요금 제도, 수익 보장, 시스템 설계 전반이 재정립돼야 가능한 과제다.
더불어 한국전력과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무구조도 심각하다. 2022년 한국전력은 32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전기요금의 원료비 연동제가 무력화되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했던 막대한 공기업 채권이 민간 자본시장까지 압박하고 있다. 이는 전력망 투자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에너지 인프라 재편 여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전기 가격 수요·공급으로 결정, 수도권 인접지에 ESS 우선 배치
등 에너지 사용 효율화하고 접근성·품질 높일 방안 마련해야
AI와 탄소중립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대에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탄소중립이라는 이상과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현실 사이의 균형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우선, 전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임을 인식해야 한다. 전기를 제조업에 투입하는 인풋 정도로만 여기던 과거의 인식에 머문다면 첨단산업화하지 못하고, 청정한 전기를 공급할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국가경쟁력은 쇠퇴할 것이다. 전력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전기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고 전기 사용을 효율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로, 전력망 시설의 현실적 입지와 지역 수용성을 고려한 다층적 전략이 요구된다. 전원 믹스와 입지 계획을 산업 전략과 연계해 설계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같은 전력집약 산업은 전력 품질과 접근성이 핵심이므로 유관 기업이 몰린 수도권 인접지에 고효율 천연가스 발전소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우선 배치해야 하고, 원전·재생에너지 간의 기능적 분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통해 지자체·주민과의 협의 절차를 제도화하고 보상 체계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술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 기반시설로서의 전력망’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지원할 재정·행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전력수급계획을 세우는 계획적 전력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제는 다양한 시나리오 기반의 전망(outlook)을 담아 대응하는 유연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요·공급의 불확실성과 기후 리스크, 기술변화 속도를 반영한 시나리오 기반 전력 계획이 필요하다. 다양한 조건에서 회복력을 갖춘 전력 시스템을 설계하고,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 기술 및 분산형 전원의 통합 운영 기술을 조기에 확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