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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프리미엄 달고 날아오른 K컬처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5년 10월호
미국과 유럽은 과거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공격적인 식민정책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문화가 쉽게 퍼져나갔다. 제국주의적 침략의 역사 없이 온전히 문화 자체의 힘으로 전 세계로 뻗어간 경우는 한국을 제외하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랜 시간 한반도에서만, 한국인에 의해서만 활용되고 가꾸어졌던 품질보증서 K. 하지만 이젠 글로벌 전역에 걸쳐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K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류’의 시초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국영방송국 CCTV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얻자 중국 언론이 이를 ‘한류’라 칭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류는 아시아부터 시작해 미국, 유럽 등으로 뻗어갔다. 

하지만 한류의 확산에도 한국문화가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의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은 뛰어난 품질로 글로벌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었지만, 유독 한국문화에 대해서 만큼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두드러졌다. 오랫동안 서구를 지배해 온 오리엔탈리즘적 시선 탓이었다. 다른 지역과 인종에 대한 과장되고 왜곡된 시선은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 심지어 한국문화는 같은 아시아 국가에 해당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에 비해서도 낮게 평가받았다. 

그런데 이젠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오히려 한국문화를 더욱 반기고 높게 평가하는 ‘K프리미엄’이 생겼다. 그 프리미엄은 광범위하고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선 K팝, 드라마, 영화로부터 시작된 관심이 뮤지컬, 소설 등 다른 장르로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국 연극·뮤지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토니상에서 6관왕을 휩쓸었고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해외에선 한국의 전통문화, 음식, 뷰티, 패션, 라이프 스타일까지 K컬처를 통째로 알고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바야흐로 ‘K컬처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왜곡되고 중·일보다 저평가되던 한국문화,
문화 자체의 힘으로 ‘쿨하고 힙한’ 것이 되기까지


그 위력은 최근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도 잘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애니메이션이지만 K팝과 한국문화를 소재로 삼고 있다. 처음엔 주목도가 낮았지만 입소문이 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급기야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역대 오리지널 콘텐츠 가운데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2위인 점을 고려하면, K컬처가 글로벌 시청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저승사자, 무속신앙, 민화 속 호랑이와 까치 등 한국의 전통문화까지 ‘쿨하고 힙한’ 것으로 여겨지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의 미국 드라마 <엑스오, 키티> 시즌 1, 2도 화제가 됐다. 이 작품은 한국의 국제고등학교로 전학 온 미국인 여학생 키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한 것은 물론 한국의 명소, 전통음식, 역사 등을 함께 다룬다. 작품 속 인물들 사이에선 “한국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란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엑스오, 키티> 시즌 2는 지난 1월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공개된 직후에 나왔는데,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처럼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문화가 과거엔 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걸까?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과거 군사적·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공격적인 식민정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문화는 쉽게 퍼져나갔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은 제국주의적 침략의 역사가 없어 문화를 널리 확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무력이 아닌 온전히 문화 자체의 힘으로 전 세계로 뻗어간 경우는 한국을 제외하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K컬처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흐른다. 글로벌시장 곳곳에 파고들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상품과 문화를 동시에 수출해 본 나라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과 한국뿐”이라고 했던 프랑스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의 얘기처럼 한국은 명실상부한 문화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IT 발전이 콘텐츠 동시다발적 공급 가능케 해 경쟁 심화···
누구나 공감할 내용을 한국적 요소로 풀어내며 승기 잡다


K컬처 확산의 원동력으로는 한류의 기민하고도 과감한 확장을 꼽을 수 있다. 그 시작은 1997~2000년대 초 H.O.T. 등 1세대 아이돌 음악을 중심으로 한 ‘한류 1.0’이었다. 나아가 2000년대 초·중반엔 <겨울연가> 등 드라마를 통해 일본, 동남아 지역을 집중 공략해 ‘한류 2.0’ 시대를 열었다. 2010년대 이후엔 아시아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시장 전체를 목표로 삼고 ‘한류 3.0’을 이뤄냈다. 그리고 오늘날엔 K팝과 K콘텐츠 이외에도 음식, 뷰티, 패션, 라이프 스타일 등 K컬처 전체로 확장해 ‘한류 4.0’ 시대를 활짝 열었다. 

때마침 거대한 기술적 변화가 일어나 한국문화 확산에 순풍이 불었다. 첨단기술, 특히 IT의 발전으로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온라인 기반 플랫폼이 탄생한 것이다. 덕분에 한국의 작품, 한국 관련 영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급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해당 플랫폼들을 이용해 문화를 전파하는 데 힘썼지만, 한국은 차별화된 매력으로 이 경쟁에서 승기를 잡게 됐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문화만의 매력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절묘한 결합에서 비롯됐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을 포함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K콘텐츠 다수엔 다음과 같은 공식이 적용돼 있다. 전 세계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형식적인 면에선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은 양극화, 불평등과 같은 보편적인 사회 문제를 다루고 그 기저에 깔린 절박함, 이기심 등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의 특수한 배경과도 연결된다. 한국은 과거 침입과 전쟁, 극한의 가난에 시달린 개도국으로서의 경험이 있다. 이후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도약한 경험까지 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 분노와 승화 같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을 느끼게 됐다. 창작자들은 세분화된 감정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 전 세계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요소를 적절히 가미해 특수성을 만들어냈다. <오징어 게임>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전통 게임을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장르적 변주도 이뤄졌다. 

<킹덤>은 서구에서 시작되고 발전한 좀비물을 가져오면서도 등장인물들에 한복을 입히고 갓을 씌워 사극으로 만들었다. 글로벌 시청자의 입장에선 미국, 유럽 중심의 콘텐츠시장에서 접할 수 없었던, 낯설지만 매력적인 문화를 바라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개별 작품뿐만 아니라 K컬처 전체를 알리기 위한 꾸준한 노력도 오늘날 빛을 발하고 있다. 2012년부터 CJ ENM이 개최하고 있는 한류 축제 ‘KCON’은 K팝 공연을 중심으로 하면서 한국문화를 체험할 기회도 따로 제공하고 있다. 현지 팬들이 K콘텐츠에서 봤던 음식을 직접 맛볼 수 있고 한국 스타의 화장도 따라 해볼 수 있으며 옷도 입어볼 수 있다. 열광적인 반응에 누적 관객 수는 222만 명을 돌파했다.

BTS의 리더 RM은 2023년 한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K라는 수식어가 지겹지 않나?” 그러자 RM은 “그건 프리미엄 라벨”이라며 “조상들이 싸워 쟁취하고자 노력했던 품질보증과 같은 것”이라고 답했다. 오랜 시간 한반도에서만, 한국인에 의해서만 활용되고 가꾸어졌던 품질보증서. 하지만 이젠 글로벌 전역에 걸쳐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K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앞으로도 뛰어나고 탄탄한 품질보증으로 K프리미엄을 키우고, 나아가 K컬처가 더욱 널리, 오래도록 퍼져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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