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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김영대 음악평론가 2025년 10월호
K팝의 성장을 단순히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철저한 기획의 승리로만 볼 수는 없다. 그 안엔 세계 음악 트렌드의 변화와 그에 따른 ‘운’의 요소가 있었다. 1990년대 본격 확산된 힙합의 세계적 지배력은 K팝에 새로운 표현 양식과 퍼포먼스에서의 차별성을 부여했고, K팝은 영미권과 일본 보이·걸 그룹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또한 마이클 잭슨 이후 20여 년간 비슷비슷한 팝 스타들만 양산하던 영미권 메인스트림 음악이 2000년대 한계를 드러내자, 새롭게 떠오르던 K팝은 전 세계 대중에게 신선한 ‘대안’으로 여겨졌다

 
올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전 세계적인 현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소니 픽처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의 역사, 더 나아가 한국 대중문화사에 기념비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 작품은 지난 30년간의 K팝 역사를 갈무리할 뿐만 아니라 K팝이 걸어온 길과 특징, 저력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동시에 지금까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K팝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제는 더 이상 피하거나 미룰 수 없는 질문들이다.

‘문화기술’이라는 아이돌 시스템 아래 본격적인 K팝 시작···
뉴미디어 혁명으로 시스템과 자본의 열세 극복


K팝의 기원을 따져 묻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을 정치적·문화적으로 지배해 온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전해진 서구형 대중음악의 ‘상륙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8군 무대를 거점으로 탄생한 한국식 서구 음악과, 이를 기반으로 1970년대에 꽃피운 ‘청년문화’는 이후 K팝이라는 거대한 폭발을 준비한 저변이었다.

더욱 직접적인 계기는 1980년대 초 미국에서 등장한 MTV였다. 음악의 주요 전파 매체가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겨가면서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강조한 가수들이 잇따라 성공했고, 이는 미국뿐 아니라 그 영향을 받은 거의 모든 나라의 음악산업을 바꿔놓았다. 한국에서도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등 댄서 출신 가수들이 가요계의 주류를 장악했고, 뒤이어 현진영과 듀스가 힙합의 시대를 열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해 가요계의 질서를 완전히 바꿨다. 그들은 더 이상 단순한 ‘가수’가 아닌, 퍼포머이자 아이돌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서태지 이후 촉발된 이 새로운 흐름을 담기에는 국내시장이 너무 협소하고 낙후돼 있었던 것이다. 해외시장에서 우연히 성공을 맛본 제작자들은 재빠르게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고, 그 과정에서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이 흐름의 최전선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이다. 그는 연습생 제도, 현지화 전략, 집단창작 시스템 등 오늘날 K팝의 근간을 이루는 장치들을 차례로 도입하며 이를 ‘문화기술’이라고 선언했다. 대중음악을 기술로 규정한 것은 전례 없는 발상이었으며, 100년간 누구도 풀지 못했던 문제, 즉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이돌 시스템’이라는 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 깃발 아래 K팝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K팝의 성장을 단순히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철저한 기획의 승리로만 볼 수는 없다. 그 안에는 세계 음악 트렌드의 변화와 그에 따른 ‘운’의 요소가 있었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확산된 힙합의 세계적 지배력은 K팝에 새로운 표현 양식과 퍼포먼스에서의 차별성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K팝은 영미권과 일본의 보이·걸 그룹이 가진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또한 마이클 잭슨 이후 20여 년간 비슷비슷한 팝 스타들만을 양산하던 영미권 메인스트림 음악이 2000년대 들어 한계를 드러내자, 새롭게 떠오르던 K팝은 전 세계 대중에게 신선한 ‘대안’으로 여겨졌다.

2000년대 중반 유튜브와 SNS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혁명은 자본과 미디어 권력에서 절대적 열세였던 K팝에는 기적과도 같았다. 미국처럼 시스템을 지배하지도, 일본처럼 시스템을 돈으로 사들이지도 못했던 K팝은 대신 시스템을 우회해 중심부를 공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초기부터 서브컬처적 접근을 택해 팬들과의 밀착 관계를 중시했던 K팝산업은 어느새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팬 집단을 보유한 음악산업으로 성장했다. 미래를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미래가 K팝을 찾아온 셈이다.

적극적·주체적인 슈퍼팬덤과 함께 써낸 대중음악사의 전환점···
이제 세계와 경쟁하려면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특히 K팝이 만들어낸 팬덤의 새로운 위상은 대중음악사에서 전환점이라 불릴 만하다. 과거 어느 시대에도 ‘팬’은 일반 대중보다 조금 더 열성적인 소비자일 뿐이었다. 스타와 팬의 관계는 철저히 일방적이었고, 무대 위 스타와 객석의 팬은 높은 벽으로 분리돼 있었다. 그 대상도 주로 10대와 20대 초반 여성으로 제한됐다. 그러나 K팝은 이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렸다. 팬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지닌 ‘슈퍼 컨슈머’, 그리고 문화를 적극적으로 재해석·재창조하며 때로는 아티스트와 별개로 독립적인 어젠다를 가진 주체적인 존재가 됐다.

아티스트들은 이제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팬덤’을 위한 음악을 만든다. 그들의 발언과 활동은 팬덤을 중심으로 기획된다. 이는 마치 장르 음악 팬덤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상징, 네트워크를 공유하며 거대한 산업과 풀뿌리 커뮤니티를 동시에 움직이는 것과 같다. 최근 큰 화제를 모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단순히 K팝 아티스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와 팬덤의 힘이 합쳐져 무엇을 이루고 극복하는지를 다룰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BTS의 빌보드 첫 1위가 이제 10년을 조금 넘었고 보아가 일본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한 지는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사실 K팝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팝은 ‘구멍가게’의 단계를 넘어 이제 막 글로벌 기업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결과물에 비해 역량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K팝이 시스템 그 자체에 갇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K팝이 자랑하는 ‘문화기술’은 엄밀히 말해 ‘한국적’인 기술이라 할 수 없다. 한국적 토양 덕분에 빠르게 뿌리내리고 성장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방 가능하고 능가될 수 있는 기술이다. K팝의 현지화 전략도 마찬가지다. 최종 단계에서 ‘현지 그룹’이 완성돼 ‘K’라는 수식어가 사라지는 순간, 그 전략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제 K팝은 미국 주류 팝이 아닌, ‘유사 K팝’과 경쟁해야 한다. 최근 일본 그룹 XG의 성과는 두 세계의 격차가 놀라울 정도로 좁혀졌음을 보여준다.

세계관 IP 확장이나 AI 기술 도입은 어디까지나 방법론적 문제일 뿐 그것 자체가 다음 시대의 콘텐츠가 될 수는 없다. 플레이브(PLAVE)가 연 버추얼 아이돌의 시대는 K팝의 미래를 좌우할 잠재력이 있지만, 그 안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은 보편적 서사와 이야기의 힘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외국 스튜디오와 교포 감독의 협업으로 가능했던 작품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K팝이 진정으로 세계와 경쟁하려면,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한국이어서 더 의미 있는 콘텐츠를 과감하게 제시해야 한다. 시스템의 정비를 끝낸 지금, K팝은 다시 창작자와 디자이너들, 그러니까 크리에이터들의 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 산업적인 포맷이나 새로운 기술이 아닌 보편적이면서 매력적인 서사와 진정성 있고 오리지널한 콘텐츠만이 K팝에 차별성을 부여하고, 결국에는 ‘K’라는 거추장스러운 수식어를 벗어 진정한 글로벌 음악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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