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측면에서 한국영화는 여전히 훌륭하다. 다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영화관 생태계를 걱정할 따름이다.
이제 영화는 ‘개봉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방영일’을 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영화가 앞으로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이 해외에 소개될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우리 영화는 자막과 함께 동시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10월 27일은 ‘영화의 날’이다. 한국 최초의 영화라 할 수 있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가 단성사에서 소개된 날을 기준으로 한국영화를 기념하는 날이 정해졌다. 연쇄극은 영화 상영 가운데 연극 같은 공연의 요소가 끼어드는 형태로, 비록 완전한 극영화는 아니지만 연극과 영화적 요소가 결합한 귀중한 초기 영화 자료다.
다양한 장르·주제로 신진 감독들이 이끈 1990년대 르네상스···
2000년대엔 해외 영화제서 한국 이름 알려
2025년은 한국영화가 태어난 지 106년째 되는 해다. 그 사이에 우리 영화는 다양한 굴곡을 겪었다. <자유부인>(1956)과 같은 대단한 흥행작이 나타나며 1950년대 화려한 부흥기를 맞았고, 신상옥과 김기영 등 놀라운 작가의 재능이 발굴돼 1960년대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비록 검열이나 통제 등으로 영화제작이 제한된 시기가 있었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한국영화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영화계의 르네상스, 그야말로 1990년대 한국 영화관의 간판은 다채로웠다. 김성수, 장윤현, 강제규, 허진호, 김지운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에 접근하는 신진 감독들이 제각각 새로운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2000년대 한국영화는 해외 국제영화제를 통해 더 널리 알려졌다. 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임권택 감독은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고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감독 등의 작가적 재능이 자주 언급됐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아카데미를 석권하면서 세계시장에서 K영화의 권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해졌다. 코로나19 봉쇄기간을 지나며 위기가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영화는 건재하다.
1919년 작 <의리적 구토>가 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 지금의 한국영화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 연쇄극이 ‘한국 최초의 영화’라 불리게 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소위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다. 이에 대해 세계 영화사는 흥미로운 사실을 기록한다. 다름 아닌 ‘키네토스코프 논쟁’이다. 에디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는 한 번에 한 사람씩 영상을 들여다보는 장치인데, 사람들이 이 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음료 상점 같은 곳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영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견컨대 이전에 소개된 매직랜턴이나 다른 광학적 장치가 놀이기구였다면, 이 기계는 상업적 도구였다. 장치를 한번 설치하기만 하면 필름을 제공하는 업자가 지속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게 구성된 상품이었다. 즉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시대의 시작이 바로 1895년이었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영화라는 타이틀은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아니라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시네마토그래프’로 촬영된 영상에 돌아갔다. 뤼미에르 형제는 에디슨의 장치를 보고 영감을 얻어 여러 사람이 함께 보는 영사 시스템을 고안했다. 기술의 문제를 넘어 일종의 문화적 변화를 이끌었다. 이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함께 본다’는 것을 포함해 ‘영상 상영의 과정’ 일체를 포괄했다. 필름을 제작하는 사람, 영화관을 소유한 자본가, 영화 상영에 포함되는 모든 기술 인력이 영화적 요소에 합류했다. 그렇게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영화는 시네마토그래프를 주축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세계를 장악한 스트리밍서비스로 소비·제작 환경이 변한 지금,
한국영화의 미래는?
2025년 상반기의 한국영화계를 돌아보며,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서비스가 관객의 소비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한다. 극장영화가 차지하는 비중과 주목도는 줄었다. 개인의 취향은 세분화됐으며, 장르 전환과 포맷 변화에 대한 압력이 시장을 거세게 휘감고 있다. 기존 영화 소비자가 시간 대비 투자 가치를 언급하면서 영화관 방문을 꺼리는 사이에 일부 대형 블록버스터 프로젝트가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며 전체 제작 생태계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25년의 영화들을 보면 올해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입한 한국영화가 없다. 지난 몇 년간 시장을 지탱해 온 소위 ‘저장된 영화들’ 역시 바닥이 났다. 팬데믹 이전에는 매해 40편 이상의 한국영화를 공급하던 5대 투자배급사들의 올해 배급 편수는 고작해야 20편 정도다. CJ ENM이 올해 투자와 배급을 모두 맡은 영화는 2편으로, 지난 8월 개봉한 <악마가 이사왔다>와 9월 24일 개봉한 <어쩔수가없다>가 전부다.
그럼에도 지금 시점에서 한국영화의 미래가 어둡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올해 칸영화제는 홍상수 감독을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했고, 베를린국제영화제는 그의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2025)를 경쟁 부문에 초청했다.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됐다. 즉 작가적 관점에서 한국영화는 여전히 높은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게다가 한국문화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는 K컬처의 건재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정체성 측면에서 한국영화는 여전히 훌륭하다. 다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영화관 생태계를 걱정할 따름이다. 지난 9월 국회에서는 ‘표준 홀드백 기간 법제화’에 관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극장 개봉 이후 OTT서비스 등 다른 플랫폼에서 바로 공개되지 않도록 제동을 거는 법안이다. 현재 제안된 것은 영화관 상영 종료 후 6개월이 지나야 다른 플랫폼에 공개가 가능해진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건별 결제형 비디오 등 일부 예외가 생기겠지만 법률상 규제 기간이 도입되면 이러한 사항은 구독형 OTT를 중심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25년 법률 개정으로 미디어 타임라인이 조정됐다. 기존에 넷플릭스는 극장 공개 36개월 이후에야 영화를 방영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법률에서는 그 기간이 15개월로 당겨졌다. 디즈니플러스는 홀드백 기간이 17개월이었지만, 이제 9개월로 줄었다. 프랑스는 스트리밍서비스가 약속하는 영상 제작물에 대한 투자를 기준으로 법안을 제각각 수정했다. 미국 역시 새로운 규정을 고려하고 있다. 기존에는 대략 3개월 정도의 홀드백 기간이 표준이었지만 스튜디오별로 단계적 변화가 예고된다. 물론 미국은 거대 스튜디오가 직접 OTT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예컨대 디즈니 스튜디오가 디즈니플러스를,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가 HBO 맥스를 갖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이데올로기적 틀과 함께 경제적이고 합법적인 정책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거대 자본의 요구와 노하우 그리고 합리적인 판단이 자본과 함께 움직인다. 지금 한국의 영화산업은 확실히 해외 OTT 자본에 크게 기대고 있다. 그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판단된다. 2019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영화 자막에 대해 만일 ‘1인치의 장벽’을 허물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한국의 좋은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 장벽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OTT로 한국영화의 저변은 확대될 것이다.
이제 영화는 ‘개봉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방영일’을 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극장이 아니라 OTT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영화의 한류 물결, 실제로 아시아를 넘어 중동, 남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날짜에 새로운 한국영화를 선택해 관람한다. 대중적인 볼거리로서 영화산업의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과거가 영화적 작가 정책(감독을 단순한 연출자가 아닌 자신만의 개성과 철학을 가진 예술가적 ‘작가’로 보고 그의 작품 세계를 중시하는 비평적 관점)이 필요한 시기였다면, 이제는 산업계에 새로운 룰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이 해외에 소개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리 영화는 자막과 함께 동시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문화적으로도 수익성을 중심으로도 한국영화의 수준은 이미 높다. 이를 영속성의 영역이라 믿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