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이지만 다소 건조하고 냉랭한 미국·서구의 작품과 달리 한국 드라마에는 사회적 비리에 뜨겁게 분노하고 해결에 목숨 거는 열정적인 인물들, 그들이 보여주는 끈끈한 애정과 가슴 아픈 사연들, 비서구권 문화에서 친근한 초현실적 요소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는 수백 년 전 시민혁명을 끝낸 미국·서구와 아직도 권위주의와 부패가 만연한 아시아 지역의 중간쯤인 절묘한 위치에서 이들 시청자 모두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이제 정점에 선 듯하다. 정점(頂點), 가슴 설레지만 불안함을 동반하는 위치다. 한국에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것이 생긴 지 불과 70년 만이니 숨 가쁠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한 것이고,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몰아붙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더 나아갈 수 있을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복잡한 고민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위치에 와 있다.
연극을 TV로 옮긴 생방송에서 1970년대 일일극 전성시대로···
문민시대, 감각적 미장센과 내용으로 드라마 한류의 길 열려
우리나라에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것은 1956년 속칭 ‘종로테레비’로 불렸던 코카드(KORCAD)라는 민간 방송국이 설립되면서다. 적자에다 화재까지 겹치며 2년도 안 돼 단명했지만 최초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여기에서 시도됐다. 연극 무대를 텔레비전 스튜디오로 옮겨온 형태였다.
국영방송인 KBS의 텔레비전 방송국 개국은 1961년 12월 31일이었다. 정말 이상한 개국 날짜 아닌가. 관료 사회를 오래 경험한 사람이라면 정황을 짐작할 수 있을 터다. ‘위’에서 ‘연내 개국’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5.16 군부정권이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적 ‘선물’로 기획됐고, 종로테레비 경험자를 끌어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불과 4개월 만에 개국 방송을 했다. 뉴스는 그럭저럭 만들 수 있어도 차분히 공들여 제작해야 하는 드라마는 쉽지 않았다. 당시엔 녹화기가 없어 모조리 생방송이었고, 드라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좁은 스튜디오의 세트가 쓰러지고 배우의 대사와 동선이 뒤죽박죽 엉키는 NG에도 생방송 카메라는 멈출 수 없었다. 맙소사!
녹화기가 도입된 것은 1964년이고 편집기의 도입은 그로부터 몇 년 뒤였다. 그것도 삼성 계열사로 과감한 투자가 가능했던 TBC가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단회물이 아닌 연속극이 다소 안정적으로 제작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일정에 쫓길 수밖에 없는 일일극은 여전히 어설펐고 주 1회짜리 연속극 제작이 그나마 자리를 잡았다.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에서 1960년대 후반은 이런 시기였다.
그러다 1970년 TBC의 일일극 <아씨>로 새 판이 열렸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를 계기로 일일극 제작의 노하우가 안착했다. 대중들은 매일 저녁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모이는 습관이 생겼고, 그 결과 1960년대 말 연 200편 이상 제작되던 영화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전국 방송망을 가진 KBS가 1972년 <아씨>의 벤치마킹 작품 <여로>를 히트시키면서 1970년대는 일일극 전성시대가 됐다. 한 채널에서 하루에 4~6편의 일일극을 편성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텔레비전 수상기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1980년대에는 1시간 내외의 주 2회짜리 드라마로 발전했다. 지금도 유지되는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의 관행이 이때 시작된 것이다. 1시간 내외의 긴 러닝타임 덕분에 작품에는 깊이가 생겼고, 많은 제작비를 투여해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다큐드라마 <제1공화국> 같은 대작이 나오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귀재 김수현 작가의 최고 전성기도 이때였다. 이를 주도한 것은 유일한 ‘준공영’ MBC였다(언론통폐합으로 민영방송이 사라져 나머지 둘은 모두 KBS 채널이었다). ‘드라마 왕국 MBC’의 시대는 30년간 지속됐다.
1990년대에는 <질투>를 필두로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 16부작 미니시리즈가 정착했고, 이 흐름 속에서 <별은 내 가슴에> 등이 ‘드라마 한류’의 길을 열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시작한 대작들은 영화 못지않은 미장센과 파격적인 내용을 보여줬다. 문민시대라는 달라진 환경에 기술 향상과 큰 투자가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1세기에 본격화된 드라마 한류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불치병을 소재로 한 애정물 미니시리즈,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퓨전사극이 주도했다. 현대적인 자의식을 갖춘 캐릭터가 일반화됐고, 삽화적 내용을 이어가며 줄거리를 질질 끌지 않고 대립을 격하게 만들어 드라마틱한 흐름을 만들었으며, 특히 화려한 볼거리와 기억에 남는 ‘명대사’로 시청자를 매료했다. 의지로 행동을 개척해 가는 매력적 캐릭터, 잘 짜인 구성, 빠른 전개 등 ‘잘 만든(well-made)’ 극의 요소들이 갖춰지면서 국내 시청자를 만족시켰고, 해외 시청자까지 끌어들이는 보편적 호소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방송 사상 처음으로 미드(미국 드라마)가 공중파 채널에서 확실히 밀려난 것도(<초원의 집>, <600만 불의 사나이>, <뿌리> 등의 엄청난 인기를 생각해 보라) 1990년대 중후반 한국 드라마가 보편적인 극적 완성도를 갖추면서였다.
2000년대 인물·전개 등 극적 완성도 높이며 보편적 호소력 발휘,
2020년대엔 OTT에 올라타며 비주류 장르로도 성공 거둬
변주를 거듭하며 10년 넘게 이어진 신데렐라 이야기의 애정물은 2010년대 초에 이르러 한계를 보였다. 국내에서 식상하다는 비판이 점점 높아졌고, 해외시장 역시 양적 확대에도 미래가 위태롭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즈음 드라마 애호가들이 다시 미드로 쏠렸다. 범죄·추리물, 의학물, 오피스물 등 다양한 장르에 탄탄한 논리를 갖춘 미드는 한국 드라마의 결핍 지점을 명확히 느끼게 했다.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K드라마는 다시 한번 도약했다. 애정·가족물과 사극으로 단순화된 주류 트렌드를 극복하고 다양한 장르가 자리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10년대 범죄·추리물이 새로운 주류 트렌드로 부상하며 신데렐라류의 애정물을 밀어냈다. 사적 세계의 갈등을 중시하는 애정·가족물 대신,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범죄·추리물, 정치물, 재난물, 오피스물이 주류를 차지했다. 심지어 신데렐라 이야기의 달인인 김은숙 작가조차 그런 이야기에서 탈피해 <태양의 후예>, <미스터 션샤인> 등에서 새로운 장르를 받아들이는 변신을 감행했다.
급기야 2020년대에는 극소수만 즐겼던 <킹덤>, <악귀> 등 오컬트물, 좀비물 등이 급부상했고, 아직 장르로 정착되지 않은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이런 작품들이 OTT에 올라타면서 텔레비전 수상기에 묶여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극복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 드라마는 거의 전 장르를 고루 갖추게 됐다. 게다가 앞서 나가던 미국·서구의 작품과는 차별화된 장점도 갖췄다. 논리적이지만 다소 건조하고 냉랭한 미국·서구의 작품과 달리, 불평등과 권력의 부패 등 사회적 비리에 뜨겁게 분노하고 해결에 목숨 거는 열정적인 인물들, 그들이 보여주는 끈끈한 애정과 가슴 아픈 사연들, 비서구권 문화에서 친근한 샤먼과 초현실적 요소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이는 수백 년 전에 시민혁명을 끝낸 미국·서구 지역과 아직도 권위주의와 부패가 만연한 아시아 지역의 중간쯤에 선 절묘한 위치에서, 이들 시청자 모두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세계적 보편성과 우리만의 특장점, 게다가 장르적 다양성까지 갖춘 한국 드라마는 이제 정점에 섰다 할 만하다. 그래서 적잖이 불안하다. 제작비는 천정부지인데 한국의 방송사는 이런 제작비를 점점 감당할 수 없고, 국내 OTT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과도한 우려일까.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정점에 <기생충>(2019)의 오스카상 수상이 있었지만 이후 한국 영화계에서는 ‘망해가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적잖은 영화인들이 드라마로 옮겨오고 있다. 70년 만에 정점에 선 K드라마도 퇴보하지 않으려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뚫는 힘든 과제를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