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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위대한 여정 디지털 만화 혁명을 이끈 웹툰 종주국의 성과와 과제
임재환 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2025년 11월호
한국 플랫폼과 창작자의 해외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사업적 현지화’에 머무르지 말고, 이제는 웹툰 생태계 시스템 자체를 세계 각지에 뿌리내리게 하는 ‘문화 확산’으로 나아가야 한다. 상업영화가 할리우드의 전유물이 아니듯, K팝이 하나의 글로벌 음악 장르로 자리 잡으며 ‘K 없는 한류’를 만들어가고 있듯, 글로벌 독자들이 세로 스크롤 형식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창작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시작된 웹툰은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산업의 심장이 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창작자들의 열정, 플랫폼의 과감한 기술 투자 그리고 플랫폼과 창작자의 상생 철학이 만나 위대한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2000년대 초 세로 스크롤 문법 창조해 만화의 DX 이룬 웹툰,
유료 모델 개발해 경제 생태계로 진화하며 해외에도 진출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와 일본문화 개방 등으로 출판만화 생태계가 붕괴하는 위기였을 때 한국 만화가들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기회를 찾았다. 창작자들은 단순히 기존 만화를 디지털 파일로 옮기는 대신, ‘인쇄될 원고’라는 전제 자체를 버리고 오직 웹 브라우저에서만 소비될 ‘웹 네이티브 콘텐츠’를 창조했다.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2003)를 시작으로 페이지 분할, 인쇄용지의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스크롤 길이와 칸 사이의 간극을 이용해 시간과 감정을 연출하는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들이 만화의 ‘페이지’ 개념을 과감히 파괴하고 마우스의 휠을 활용한 ‘세로 스크롤 연출’이라는 문법을 창조한 것은 만화 형식의 근본적인 디지털 혁신이었다.

2010년대 모바일 퍼스트 시대가 열리자 세로 스크롤 만화는 스마트폰의 터치 조작과 만나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며 잠재력이 폭발했다. 독자들은 한 손으로 웹툰을 감상하며 자신만의 호흡으로 서사를 즐기는 강력한 몰입감에 매료됐다. 

초기 포털사들이 웹툰을 ‘트래픽 미끼 상품’으로 활용하며 ‘웹툰은 공짜’라는 인식을 만들었지만, 만화계에는 모바일로 만화를 보는 행위가 유료시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네이버의 ‘모바일 무료 웹툰 앱’ 출시는 거센 저항을 불렀고, 이는 역설적으로 유료 모델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2013년 레진코믹스의 ‘기다리면 무료’ 모델과 네이버의 PPS(Partners Profit Share, 창작자 수익 공유)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웹툰 플랫폼은 ‘단순 중개시장’에서 창작자와 독자가 상호작용하는 ‘양면시장’이자 거대한 경제 생태계로 진화했다. 원고료 외에도 유료 보기, 광고, IP 사업 등의 수익을 작가와 나누는 PPS 모델은 작가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격상하는 상생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창작자가 많을수록 유료 독자가 모이고, 유료 독자가 많은 곳에 다시 우수한 창작자가 모여드는 ‘네트워크 효과’를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은 이 상생 모델이 안착하면서 웹툰산업의 패러다임은 바뀌었고 글로벌 확장의 발판이 마련됐다. 

이제 웹툰은 K콘텐츠의 원천 소스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마음의 소리> 같은 일상물·개그물로 국내 트래픽을 확보했다면, 글로벌 진출 과정에서는 <신의 탑>과 같은 서사 중심의 장르물이 IP 확장의 핵심이 됐다. <지금 우리 학교는>, <스위트홈> 등 웹툰 원작 영상의 성공은 할리우드 파트너십으로 이어졌고, 디즈니는 마블, 스타워즈 등 자사 IP를 미래의 소비층인 Z세대에게로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웹툰 포맷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2023년 기준 콘텐츠 산업조사」에 따르면 만화산업 매출액 규모는 2조7,395억 원으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연평균 19.6% 성장했으며, 수출액은 전년 대비 65.3% 급증해 전체 콘텐츠산업의 정체 속에서 신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을 입증했다.

가장 극적인 성공은 일본시장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일본 만화시장은 2017년 이후 7년 연속 성장하며 2024년에 7,043억 엔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한 가운데, 웹툰을 포함한 전자만화가 72.7%(5,122억 엔)를 차지하며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일본은 강력한 출판만화 생태계를 가졌기에 역설적으로 디지털 전환과 유통에 소극적이었다. 잡지로 인기를 검증한 뒤 단행본으로 수익을 내는 ‘잡지 번들링’ 비즈니스 모델이 발목을 잡는 사이, 2013년 네이버의 디지털만화 플랫폼 라인망가, 2016년 카카오의 디지털만화 플랫폼 픽코마가 ‘에피소드별 판매’ 방식과 ‘기다리면 무료’ 모델로 일본에 진출해 시장을 선점했다. 2023년 단일 플랫폼으로 연간 거래액 1천억 엔을 달성한 카카오픽코마의 고무적인 성과는 아마존, 라쿠텐은 물론 전통 만화 강자인 슈에이샤까지 디지털만화시장에 뛰어들게 했고, 시장은 격전지가 됐다. 

미국에선 기존 콘텐츠가 담아내지 못한 ‘다양성’을 무기로 콘텐츠 대부분을 무료로 제공하며 구매력 약한 Z세대에게 빠르게 안착했다. 네이버웹툰의 북미 지역 월간활성이용자(MAU) 1,510만 명 
중 75% 이상이 Z세대일 정도로 미래 소비층을 장악한 것이다.



엔데믹 후 글로벌 성장세 둔화된 데다 불법 유통 피해 심각···
정책 컨트롤 타워 및 공공 기술 허브 절실 


하지만 코로나 엔데믹 이후 글로벌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매출 성장률은 2022년 38.8%에서 2024년 16.8%까지 하락했고 최근 NHN과 카카오 계열사들은 수익성이 낮은 유럽, 동남아시장에서 철수하며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무엇보다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 유통 문제를 해소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2023년 국내 피해액만 약 4,465억 원으로 이는 유료시장 매출의 8%에 해당하는 규모다. 해외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불법 번역물 유통으로 연재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으며, 조직적인 불법 번역 사이트가 성행해 플랫폼사가 서비스 철수를 결정할 정도로 피해가 막대하다. 

스낵컬처 역할은 틱톡, 릴스, 쇼츠와 같이 흥미와 호기심 유발에 강점이 있는 숏폼 영상으로 넘어갔지만, IP로서의 확장성을 가진 웹툰은 상대적으로 ‘저비용 완결형 서사’를 만들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이제 웹툰은 단순 ‘소비재’가 아닌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더 큰 부가가치를 낳는 콘텐츠산업의 ‘생산재’로 주목받는다. 이러한 생산재 가치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웹소설 원작 웹툰(노블코믹스)’이 부상했다. 이미 웹소설시장에서 검증된 IP를 활용해 흥행 불확실성을 줄였고, 이를 통해 웹툰 스튜디오들이 안정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며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에 기반한 공정 분업화로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산업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산업 성장의 후폭풍은 장르 획일화라는 문제로 나타났다. 투자금 회수를 위해 안전한 선택이 우선시되면서 로맨스 판타지, 회귀물 등 특정 인기 장르 편중이 심화했고, 웹툰의 가장 큰 매력인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는 웹툰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으나, 관련 정책은 여러 기관에 흩어져 사업 중복, 단발성 행사 추진 등 정책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웹툰 창작 지원 지역 거점인 웹툰캠퍼스의 정부 예산 지원이 중단되는 등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며 지역 웹툰산업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중장기적 안목으로 산업 전체를 조망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정책 컨트롤 타워가 절실하다. 또한 글로벌 웹툰 연구센터와 같은 공공 기술 허브를 통해 AI 창작기술 도입, 스마트글래스 등 차세대 폼팩터(기기 구조나 형태) 대응기술 연구개발(R&D)을 지원해 웹툰 종주국으로서 기술 표준을 선도해야 한다.

웹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적 현지화가 필수다. 현재의 해외 진출이 한국 플랫폼과 창작자의 진출, 즉 한국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사업적 현지화’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는 웹툰 생태계 시스템 자체를 세계 각지에 뿌리내리게 하는 ‘문화 확산’으로 나아가야 한다. 상업영화가 할리우드의 전유물이 아니듯, K팝이 하나의 글로벌 음악 장르로 자리 잡으며 ‘K 없는 한류’를 만들어가고 있듯, 글로벌 독자들이 세로 스크롤 형식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서 나아가 세로 스크롤을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창작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미국 Z세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풀어내고 프랑스 작가가 세로 스크롤 BD(bande dessinee, 만화)를 창작하는 날, 웹툰은 한국의 콘텐츠 형식을 넘어 세계의 보편적인 창작 언어가 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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