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기준 K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약 157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여기서 게임의 매출 비중은 7분의 1 수준이지만,
수출액만 놓고 보면 한때 전체 콘텐츠산업의 70%에 육박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게임산업은 2023년 글로벌시장 점유율 기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이며,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위상을 차지했다.
2026년을 전후해 한국 콘텐츠산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글로벌 콘텐츠시장이 3천조 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세계 5대 문화강국을 기치로 K컬처를 300조 이상의 경제 가치를 가진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K컬처 경제의 중심에는 단연 K게임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년 4분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K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약 157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여기서 게임의 매출 비중은 7분의 1 수준이지만, 수출액만 놓고 보면 한때 전체 콘텐츠산업의 70%에 육박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게임산업은 2023년 글로벌시장 점유율 기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로, 3위 일본과의 격차가 근소하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산업은 1970년대 초 처음 시작됐다. 이십여 년 늦게 출발한 한국의 게임산업은 1990년대 중반 세계 최초로 글로벌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제공하며 한류 1.0을 선도했다. 또한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위상을 차지했다. 이쯤 되면 K게임은 한류 열풍의 주역이다. 그러나 이를 아는 이는 드문데, K게임의 빛나는 위상이 ‘게임=유해’라는 과학적 근거 없는 ‘유령’에 가려져 왔기 때문이다.
게임이 유해하다는 낙인과 싸우면서 게임인들은 고군분투해 왔다. 게임산업은 K팝, 웹툰, 드라마 등을 모두 포함한 문화콘텐츠산업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절대적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필자는 게임이 ‘K컬처 300조 시대’의 절대반지가 될 것이라 단언해 왔다. K컬처 300조 시대의 적임자로 게임을 지목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15일 K게임 현장간담회에서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6년째인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 논란에 ‘가르마를 탄’ 것이다.
한때 전체 콘텐츠산업 수출의 70% 차지했던 한국 게임,
국내서 유해성 논쟁할 때 미·중 빅테크는 게임사 인수·투자 경쟁
우리가 게임계에 드리워진 유령에 어물쩍하는 사이 해외 빅테크들은 이미 게임을 오락 그 이상의 미래형 콘텐츠 플랫폼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천문학적인 금액에 인수한 것은 게임을 콘텐츠 허브이자 클라우드 게이밍(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이용해 서버에 저장된 게임을 사용자 기기에서 스트리밍하는 서비스)이라는 미래 기술의 핵심으로 본 대표적인 사례다. 메타(구 페이스북) 역시 VR 기기 ‘메타 퀘스트’를 통해 게임을 주력 콘텐츠로 삼으며 게임이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OTT의 절대강자 넷플릭스조차 ‘게임플레이 존’을 추가해 크로스미디어 전략(여러 매체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마케팅 방식)으로 구독자의 충성도를 높이고 수익화를 꾀하고 있다.
더 주목할 것은 중국 텐센트다. 이 회사는 글로벌 게임산업의 핵심을 장악하며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텐센트는 단순히 게임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리그 오브 레전드(LoL)> 제작사 라이엇게임즈나 <어쌔신 크리드> 제작사 유비소프트 등 전 세계의 유망한 개발 스튜디오에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거나 인수하는 방식으로 게임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국내 게임계에도 활발히 투자해 크래프톤,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시프트업, 웹젠 등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지분을 보유하며 주요 주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글로벌 빅테크의 행보는 게임이 곧 미래 IP 생태계를 장악하는 핵심 통로임을 명확히 보여주며, 한국 게임산업이 가진 개발력과 IP 잠재력이 글로벌 자본의 표적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는 사이, 게임패권을 주도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 역시 치열하다.
원작 스토리텔링에 상호작용성 더한 IP 확장이 신성장동력···
게이미피케이션, 시리어스 게임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활용 중
눈을 돌려 국내 게임 생태계의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 기술이 게임 등 디지털콘텐츠와 결합해 빛의 속도로 퀀텀 점프하고 있으며, 장르와 포맷의 융합도 한창이다.
최근 콘텐츠 생태계는 하나의 IP를 다양한 미디어 포맷으로 확장하는 크로스미디어 전략이 두드러진다. 웹툰의 게임화가 대표적인 예다.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등 플랫폼의 월간활성이용자(MAU)가 일본·북미·유럽 등지에서 2억 명을 넘어서면서 K웹툰은 새로운 한류의 파도를 일으켰고, 게임과 만나 다시 그 파도를 키우고 있다. 성공한 IP를 인접 장르로 확대하는 트랜스미디어 전략을 실현한 웹툰의 게임화는 K콘텐츠산업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부상 중인데, 이는 우리 문화콘텐츠 생태계가 빠른 기술 수용력과 스토리텔링 역량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웹툰 원작 게임은 글로벌 경쟁력이 뚜렷하다.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는 원작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스토리텔링에 게임의 상호작용성을 결합한 것으로 문화적 몰입도와 경제적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한 사례다. 지난해 출시 후 국내는 물론 글로벌 27개국에서 한 달 누적 매출 1천억 원을 넘는 메가히트를 기록하는 등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만큼이나 K컬처의 글로벌 영토 확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그 인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K게임이 가진 진정한 잠재력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교육, 훈련, 의료 등 문제 해결이 주요 목적인 게임 장르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 기능성 게임)’과 경쟁·보상 메커니즘 및 디자인 등 게임의 요소·원리를 현실에 적용해 교육, 업무 등에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소방관의 재난 대처 훈련, 군사 훈련, 기업의 리더십 교육 등에서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게임 <엔데버Rx>는 미국 FDA 승인을 받으며 디지털치료제로서 효과를 입증했고, 게임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헬스케어의 미래를 열기도 했다.
더불어 세계 각국에서는 모두의 게임(game for all)을 표방하며 인류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게임 개발을 독려하는 ‘게임즈 포 체인지(Games for Change)’ 운동이 대표적이다. 빈곤, 환경, 인권 등 복잡한 사회문제를 게임에서 체험하고 공감하게 해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슈퍼팬덤이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다. 또 ‘게임 오브 임팩트(Game of Impact)’는 게임의 힘을 활용해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려는 국제적인 운동이다. 한국의 게임 개발 역량이 이러한 글로벌 이니셔티브와 결합한다면 보편성과 특수성의 절묘한 결합을 이룬 K콘텐츠의 힘을 바탕으로 한국이어서 더 의미 있는 콘텐츠를 세계에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K게임의 위상은 온전히 우리 힘으로 이룬 게임인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이 산업의 미래는 여전히 게임의 질병화라는 유령에 발목 잡혀 있다. 2009년 국내에서 규정된 ‘게임중독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은 당시 의학적 논의에 근거하지 않았고, 지난 10월 1일 조승래 의원실에서 게임중독만으로 중독자 재활시설에 입소한 사례가 없음을 확인해 2019년 WTO가 규정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국내에 도입하는 것도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게임은 더 이상 유해물질이 아니며, 게임창작자는 디지털 시대의 상상력과 기술을 갖춘 21세기의 연금술사다. 결국 게임의 본질은 첨단기술과 예술의 융합이다. 게임은 인류가 상상력으로 현실의 경계를 확장해 온 문화적 실험장이며, 21세기형 미래 성장엔진의 핵심이다. 게임은 AI 시대를 가장 먼저 선도해 온 문화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이제 정부와 시민사회가 나서 게임산업에 씌워진 굴레를 벗겨내고 다가올 30년의 비전을 설계해야 한다. 게임이야말로 K컬처 300조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주문을 해본다. “K게임, 문화강국을 부탁해. K게임 300조 시대를 열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