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는 세계 뮤지컬시장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심장 같은 곳이다. 뮤지컬의 기원을 두고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학자들이 다투고 있지만, 영미 양국은 뮤지컬의 기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뮤지컬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영문 제목 )이 작품상, 음악상, 극본상, 연출상 등 여섯 개 부문을 휩쓸었다. 비영어권 작품이 토니상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물론 은 철저히 브로드웨이 시스템에 의해 브로드웨이 제작사가 개발한 대극장 공연으로, 중소극장에서 공연한 한국의 <어쩌면 해피엔딩>과는 음악이나 캐릭터의 세부적인 구성에서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한국 공연과 기본적인 서사와 음악을 공유하고 한국 공연 창작진이 브로드웨이 작품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이번 토니상 수상에 한국 뮤지컬의 선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에서 K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으로 K뮤지컬에 관심 고조···
세계 4위 한국 뮤지컬시장, 창작 활발하나 여전히 라이선스 중심
한국 뮤지컬시장 매출액은 지난해 4,651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해 웨스트엔드는 대략 1조2,500억 원, 2023~2024 시즌 브로드웨이는 1조8천억 원(영국과 미국 뮤지컬시장이 아닌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공연장 클러스터 뮤지컬 매출액 기준), 2023년 일본이 7,500억 원 정도였고, 그다음 순위가 한국이었다. 인구 5천만 명을 간신히 넘는 한국이 세계 4대 뮤지컬시장에 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한국인의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대중가수 콘서트를 제외하면 뮤지컬이 전체 공연 티켓 판매액의 약 70%를 차지하고, 작품 수로도 영국, 미국을 앞설 정도로 많은 뮤지컬이 제작된다. 지난해 서울에서 공연된 뮤지컬은 아동물을 제외하고 313편으로, 이 수치만 보면 한국 뮤지컬이 이제야 토니상을 수상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통계 수치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한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뮤지컬을 많이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중소극장용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공연된 313편 중 300석 미만이 156편(49.8%), 300~500석 미만은 91편(29%)으로 500석 미만 중소형 뮤지컬이 80%에 가까웠다. 1천 석 이상 대극장에 올라간 뮤지컬은 50편(16%)에 불과했다. 뮤지컬시장은 대극장이 주도한다. 지난해 아동극을 포함해 전국에서 공연된 뮤지컬 총수는 3,006편이고 이 중 매출액 상위 10편이 모두 대극장 뮤지컬이었다. 이들 매출이 전체 시장에서 무려 31%를 차지한다.
지난해 판매액 상위 10편을 살펴보면 7편이 라이선스 뮤지컬이었다. 창작 뮤지컬(라이선스나 투어 뮤지컬과 대비되는 의미로 한국 제작사가 직접 제작하는 뮤지컬을 이름)은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 판매액 1위를 차지한 <프랑켄슈타인>과 7위 <영웅>, 9위 <베르사유의 장미> 정도다. 한국 뮤지컬 중 창작 작품 수는 전체의 70%에 가깝다. <프랑켄슈타인>이 판매액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작품 수 기준으로 30%밖에 되지 않는 라이선스 뮤지컬이 한국시장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리하자면 한국 뮤지컬시장은 세계 4위 규모이고 제작되는 편수도 많지만 여전히 라이선스 뮤지컬 위주인 것이다. 다행히 2010년대 중후반부터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 <영웅>, <신과 함께> 등 경쟁력 있는 대형 창작 뮤지컬이 등장하며 라이선스 뮤지컬 일변도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그 와중에 최근 <위대한 개츠비>가 브로드웨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을 받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아직 영미권 뮤지컬시장의 벽은 높다.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 프로듀서가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했지만 미국 고전을 원작으로 하고 브로드웨이 스태프가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 먼저 공연된 작품이지만 한국과 브로드웨이에서 각각 개발됐고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가 현지 제작을 총괄했다. 지난해 영국에서 두 달간 공연한 <마리 퀴리>는 한국 제작사 주도로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사례이지만 이 또한 일반적인 라이선스 수출과는 다르다. 영국 파트너사가 라이선스를 수입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제작사가 영국 제작사를 고용해 영어판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도와 성과에도 여전히 상업적인 의미에서 수익을 올리는 일반적인 뮤지컬 라이선스 판매나 투어 공연과는 차이가 있다.
한류 붐 타고 중·일 시장 라이선스 수출·협력 활발···
아시아 단일시장으로 브로드웨이 넘어설 수 있을까?
오히려 아시아시장에서 한국 뮤지컬 판매가 두드러지고 있다. 2010년부터 한류 붐을 타고 한국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K팝 스타가 출연하는 한국 뮤지컬의 투어 공연이 이뤄지는 방식이었지만, 이후 한류 붐과 무관하게 라이선스로 진출하는 한국 작품이 늘어갔다. 2010년대 후반부터 일본 진출이 꾸준히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10편 정도가 꾸준히 수출되고 있다. 일본시장은 중소극장 뮤지컬뿐만 아니라 <프랑켄슈타인>(토호), <마타하리>(우메다 예술극장), <웃는 남자>(토호) 등 대형 뮤지컬의 라이선스 수출도 이뤄졌다.
일본의 경우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원작에 기반해 원작 팬을 주 관객으로 하는 ‘2.5차원 뮤지컬’을 제외하면 규모 있는 창작 뮤지컬(일본에서는 ‘오리지널 뮤지컬’로 칭함)을 잘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대형 창작 뮤지컬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고, 그중에는 한국 창작자가 참여하는 대형 창작 뮤지컬도 있다. 일본 제작사 호리프로는 한국 웹툰을 원작으로 뮤지컬 <미생>(2025)을 만들면서 최종윤 작곡가, 박해림 작가를 창작자로 섭외했다. 토호가 제작한 <이태원 클라쓰>(2025) 역시 한국의 이희준 작가에게 작사와 구성을 맡겼다. 또한 한국 창작진이 만든 뮤지컬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의 에이투지엔터테인먼트와 일본의 후지TV가 협업해 한국에서 공연을 마친 후 곧바로 일본 공연이 이뤄졌다. 일본은 한국 뮤지컬 라이선스를 수입할 뿐만 아니라 창작진 간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 뮤지컬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진출 작품 수만 따지면 중국이 한국 뮤지컬 수입에 가장 열성적인 나라다. 한국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그해 CJ ENM, 중국 문화부, 상하이미디어그룹이 합자한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아주연창(亞洲聯創, United Asia Live Entertainment)이 중국 상하이에 설립됐고, 2013년 한국 뮤지컬 <김종욱 찾기>가 이곳을 통해 중국어 라이선스 <첫사랑 찾기>로 제작됐다. 중국 진출작은 꾸준히 늘어나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는 13편에 이르렀다. 2019년 상하이는 공연예술신공간 운영 기준 변화에 따라 공연장 설립이 자유로워졌다. 상하이 인민광장 주변에 100개의 새로운 ‘연예신공간’이 마련되면서 한국 뮤지컬 수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진출작이 꾸준히 늘더니 2023년 34편, 2024년 28편에 이르렀다.
다만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뮤지컬은 중소극장 뮤지컬 위주이며, 대극장 뮤지컬은 최근 진출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 역시 종종 한국 창작진을 초빙해 작업하는데, 작가와 작곡가는 물론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창작진을 영입해 중국 창작 뮤지컬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영미권에서 K뮤지컬이 좋은 소식을 전해 왔지만 아직 영미시장의 벽은 견고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시아시장에서는 중소극장 뮤지컬의 해외 진출이 꾸준히 늘고 있고 창작진 교류, 협업 등 그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뮤지컬 업계는 세계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영미권 진출에 도전하는 한편 아시아시장을 ‘원 아시아 뮤지컬 마켓’으로 만들기 위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아시아 단일 뮤지컬시장이 형성된다면 그 시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이를 능가하는 아시아 뮤지컬시장으로 세계 뮤지컬 지형이 재편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