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픈’은 서로 다른 단어들을 연결할 때 사용하는 편의적인 장치다. ‘K’가 일종의 국적을 의미한다면,
콘텐츠는 국적 너머의 유동성을 갖는다. 인터넷과 AI 시대에 정보로서의 콘텐츠는 이미 다국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미국에서 개발한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한국에서 사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텍스트로서의 콘텐츠가 국가를 넘나드는 데 큰 장애가 되는 번역의 문제도 AI의 발전 등으로
쉽게 해결되는 시대에는 콘텐츠의 무국적적인 유동성이 더 활성화된다.
K-콘텐츠는 나날이 새로운 시간으로 장식되는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한국문화와 콘텐츠의 세계적인 확산은 고무적이지만 ‘K와 콘텐츠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에 관한 성찰 역시 필요해 보인다. 바로 ‘K-콘텐츠’라는 용어에서 하이픈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외국 플랫폼과 한국적 콘텐츠의 결합, 글로벌 모델로 부상···
<케데헌>은 K 자본·저작권 아니지만 문화적 영향 확대에 기여
‘하이픈’은 서로 다른 단어를 연결할 때 편의상 사용하는 장치다. ‘K’가 일종의 국적을 의미한다면, 콘텐츠는 국적 너머의 유동성을 갖는다. 인터넷과 AI 시대에 정보로서의 콘텐츠는 이미 다국적 성격을 띠게 된다. 미국에서 개발한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한국에서 사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텍스트로서의 콘텐츠가 국가를 넘나드는 데 큰 장애가 되는 번역 문제도 AI 발전 등으로 쉽게 해결되는 시대에는 콘텐츠의 무국적적인 유동성이 더 활성화된다.
최근 가장 유력한 콘텐츠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를 예로 들어보자. 이 콘텐츠는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음악과 캐릭터는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세계인에게 한국문화의 디테일한 매력을 어필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콘텐츠를 ‘K-콘텐츠’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몇 가지 질문이 남는다.
<케데헌>은 기본적으로 영어 영화이며,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세계에 퍼졌고 넷플렉스는 한국 자본이 아니다. 제작사인 소니픽처스 역시 마찬가지다. 소니픽처스는 일본 기업인 소니의 자회사지만 본래 미국에서 설립·운영돼 온 컬럼비아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것으로 일본 자본의 미국 기업 또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상업적 성공은 ‘K’ 자본, 저작권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케데헌>을 K-콘텐츠라고 부를 수 있는 몇 가지 이유는 존재한다. 총감독인 매기 강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며 이야기에 한국적 문화 요소들이 풍부하게 드러나 있다. 걸그룹이자 퇴마사인 ‘헌트릭스’가 저승사자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에 맞선다는 이야기 역시 한국적인 서사와 세계관의 반영이다. 무엇보다 K-팝이라는 소재 자체가 한국적인 것이다. 외국 플랫폼 혹은 자본과 한국적인 콘텐츠의 결합은 이제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콘텐츠의 유력 모델이 됐다.
이런 모델이 갖고 있는 문제, 이를테면 콘텐츠의 수익이나 저작권이 한국에 귀속되지 않는 문제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결합들은 ‘K’의 문화적 영향력을 확산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제 ‘K’는 국적과 자본의 순혈주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저작권 자체가 ‘K’로 귀속되는 이상적인 모델을 찾는 것은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지식재산권(IP) 확보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그 IP를 활용해 지속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들고 수익 모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K-콘텐츠’의 소비자가 더 이상 한국인들만이 아니기 때문에 수용자들의 글로벌하고 다양한 요구와 욕망이 K-콘텐츠의 생산 과정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대문자 ‘K’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키우고 보편적인 문화 소비 상품이 될수록 ‘K’의 정체성은 ‘순수한’ 것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순수성의 훼손이라기보다는 문화적 교섭과 확산의 결과다.
K-콘텐츠의 약진은 세계시장을 움직이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문화 내부를 세계적인 맥락에서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K-콘텐츠는 한국문화의 개별성을 세계적인 것들과 관계 맺게 하는 것이며, 자신의 특이성을 세계문화의 재구성을 위한 또 다른 창조성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즉 K-콘텐츠의 세계화란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세계적인 공간 안에서 재지역화하고 재맥락화하는 것이다.
기존 질서를 바꾸는 창의적 다양성의 에너지,
그것이 K-콘텐츠에 갖는 다른 희망
대중문화 영역에서 거대 문화산업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K-콘텐츠가 과연 한국문화의 창조적 다양성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도 성찰의 대상이다. 문화산업의 기획으로 만들어지는 K-콘텐츠가 성공 사례들을 모방 재생산하고 비슷한 콘텐츠들을 쏟아낸다면 K-콘텐츠는 획일화되고 그 매력은 약화할 것이다. 거대 문화 자본에 의해 기획된 K-콘텐츠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분출되는 독립적인 예술의 창의적인 에너지가 한국문화를 변화시키고 세계문화의 위계에 균열을 가할 잠재성이다. 한국문화의 장 안에서 그런 도발적인 작은 움직임들이 없다면 K-콘텐츠의 창조성은 고갈될 것이므로 다양하고 자유로운 복수의 예술적 실험이 허용되는 문화 역동성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1년 전 한강 작가가 국제적 고급문화의 정점에 있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한국문화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사건이었다. 노벨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오랜 염원이었지만 수상 후 어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고 현재는 한국문학의 미래에 대한 격렬한 희망도 조금 잦아든 상태다. 하지만 소란스러움이 지나간 뒤 분명해 보이는 것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장 안에서 달라진 위상과 태도를 갖게 된 것이다. 아시아 최초의 여성 작가 수상이라는 지워지지 않을 의미는 세계문학의 상징질서에 균열을 가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가장 큰 기대는 한국문학의 다양성 증대에 관한 것이다. 한강 작가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작가도, 가장 권위 있는 작가도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인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남성 작가 중심의 한국문학 정전들의 질서를 재편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한국에서 주류 문학이 아니더라도 세계문학의 시선에서 조명받을 가능성이 생겼다. 낯선 문학적 개성을 시험하는 젊은 문학인들에게 이 잠재성은 ‘다른 희망’을 의미한다.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한 작품에 대해서도 번역자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타자로부터의 인정이 우리 내부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젊은 여성 독자들이 이끌고 있는 트렌드, 시집의 약진이나 ‘텍스트힙’ 열풍도 그런 희망들의 단초다. 그리고 새로운 한국문학 독자들의 탄생이 그 희망들을 다시 만들어나가고 있다.
노벨문학상에서 <케데헌>에 이르기까지, K-콘텐츠에 대한 다른 희망은 기존 질서를 바꾸는 창의적 다양성의 에너지에 관한 것이다. K-콘텐츠는 세계문화와 한국문화의 경계와 위계를 변화시키는 다른 희망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