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주도하는 K콘텐츠의 미래를 마냥 밝게 볼 수는 없다.
시장 불균형을 조정하려는 산업계·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없다면 K콘텐츠의 버블은 이내 터지고 말 것이다.
‘퍼스트 넷플릭스’가 K영상콘텐츠시장의 기본값이 된 지 오래다. <오징어 게임> 등을 비롯한 한국 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고,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검이었다. 세계시장에 진출한 한국 콘텐츠는 그에 맞는 제작비 인상을 감수해야 했으며, 한국 영상콘텐츠산업 전반에 과부하와 생태계 교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국내 영상콘텐츠시장과 관련 정책은 이러한 부작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6~7년 사이에 일어난 이 일련의 변화 중심엔 넷플릭스가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 한국의 영상콘텐츠시장은 ‘OTT 독과점’이 아니라 ‘넷플릭스 독점’ 형태다.
제작비 효율성 높은 한국시장 독점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에 큰 제작비 투입하며 시장 전반의 비용 상승 초래
한 해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는 15~20개 내외다. 이 자리를 노리는 작품 수가 평균 2천여 개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제작사와 배우들은 높은 제작비를 내놓는 넷플릭스에 몰리고, 콘텐츠 평균 제작비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 결과 다른 OTT 플랫폼과 지상파·종합편성 채널들은 치솟은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하며 시장에서 도태될 위험에 처했고 콘텐츠 제작자, 창작자들은 넷플릭스의 시장 논리에 맞춰서만 움직이게 됐다. 다만 이 모든 일을 넷플릭스의 탓으로 돌리기보단 크게 봐야 한다. 넷플릭스 주도의 시장이 형성된 후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히 ‘제작비 상승’이 아니라 ‘수익 모델의 악순환’에 있다. 플랫폼과 창작자 사이의 수익 순환 구조가 무너지며 시장 불균형이 심해진 점을 중점적으로 다뤄야 한다. 이어서 시장 불균형의 자정 작용이 일어나지 못하는 산업 구조의 한계와 정책상의 결함도 논해야 마땅하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테라포밍을 마친 뒤 일종의 정복기에 들어선 상태다. 정복기에 방점을 찍은 작품은 당연히 <오징어 게임>이다. 2021년 <오징어 게임> 공개 후 91일 동안의 누적 시청 수는 2억6,500만 회, 누적 시청 시간은 22억 시간이다. 형이상학적으로 느껴지는 이 흥행의 영광은 <오징어 게임> 시즌 2, 3으로도 이어졌다. 현재 넷플릭스가 공인한 비영어 시리즈 상위 열 편(작품 공개 후 91일 동안의 시청 수 기준) 중 1~3위를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차지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을 위시한 한국 콘텐츠의 성공 신화는 그 결과에만 있지 않았다. 제작비 효율성이야말로 넷플릭스가 한국 제작 콘텐츠를 애호하는 주요 이유였다. <오징어 게임> 시즌 1의 제작비는 총 253억 원으로 회당 제작비는 약 28억1천만 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한국 대작 드라마의 평균 제작비보다 적은 액수였다. 2019년 tvN의 <아스달 연대기>가 회당 제작비 약 30억6천만 원에 총제작비 550억 원, 2020년 SBS의 <더 킹: 영원의 군주>가 회당 제작비 20억 원 내외에 총제작비 320억 원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의 기존 대작들보다도 낮은 제작비니 세계 혹은 북미시장 기준에선 너무 저렴한 가격이었다. 예를 들어 역대 넷플릭스 영어 시리즈 중 작품 공개 후 91일 동안의 시청 수 1위인 2022년작 <웬즈데이>의 경우 <오징어 게임>보다 낮은 흥행 기록에도 회당 평균 제작비는 약 2천만 달러(약 290억 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수치는 밝혀진 바 없지만) 한마디로, 한국은 넷플릭스에 북미 콘텐츠 제작비의 10분의 1 가격으로 그 이상의 흥행을 이끌어 내는 황금 같은 시장이었다.
넷플릭스는 최근 한국의 오리지널 시리즈에 이전보다 큰 제작비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2023년 <경성크리처> 시즌 1에 총제작비 700억 원을 들였고,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총제작비 1천억 원에 회당 제작비 167억 원이라는 전례 없는 수치를 기록했다. 후발주자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2023년 디즈니플러스가 회당 제작비 32억5천만 원, 총제작비 650억 원 내외의 <무빙>을 제작했고, 올해 tvN은 <별들에게 물어봐>에 총제작비 500억 원을 들였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비용은 제작사와 투자사, 플랫폼의 치킨 게임을 일으키며 시장 전반에 앓는 소리를 퍼뜨렸다.
이 과정에서 언론에 자극적으로 보도된 요소는 배우들의 출연료다. 일부 배우들의 시리즈 회당 출연료가 평균 5억 원에서 최대 10억 원까지 급등하며 제작비 상승을 일으킨다는 여론이 일었고, 이에 지난 9월 넷플릭스가 배우들의 회당 출연료를 3억 원으로 제한한다는 소식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의 드라마 제작비는 2010년대 전후 한류 열풍을 통과하며 이미 300억~500억 원을 오가고 있었다. 배우들의 출연료 문제 역시 하루이틀 거론되던 일이 아니며, 주 52시간 근무가 법제화된 이후 스태프 인건비와 부대 비용이 늘어나면서 실질 제작비가 이전에 비해 2~3배 늘기도 했다. 즉 제작비의 전반적 상승은 넷플릭스 독점 이전에도 일어났고 일어날 사태였다.
실질적인 문제는 넷플릭스의 독점 과정에서 도입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수익 모델에 있다. 국내 제작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때 기본적으로 5% 내외의 ‘프로덕션 피(production fee)’만 받는다. 그리고 디즈니플러스 등 다른 OTT 플랫폼의 계약 방식도 이와 유사하게 자리 잡았다. 북미시장의 제작사들이 넷플릭스에 20% 내외의 프로덕션 피와 기타 인센티브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어려운 실정이다. 콘텐츠의 지식재산권(IP)까지 편성 투자자인 넷플릭스에 귀속되기에 부가적인 수입을 거둘 수도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제작사가 저 5%만이라도 보전받고자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영화, 시리즈 제작자 A 씨의 말에 따르면 “지금처럼 영화산업이 어렵고 콘텐츠 제작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제작자들에게 넷플릭스 시리즈 제작은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비가 올라야만 한국 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고 제작자들은 더 큰 수익을 취할 수 있으니 작품의 규모와 제작비가 더 상승하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불합리한 산업 구조에 대해 북미 콘텐츠 관계자 B 씨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입했을 무렵 일부 제작사가 한국 드라마시장이 원래 채택하던 외주 제작 형태의 계약 관습을 이어가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외주 제작 형태는 자본력이 약한 중소 제작사들이 자기 자본 투자의 위험을 줄이는 대신, 편성권을 독과점하는 방송사의 하청을 받아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제작자들이 지상파 방송사나 극장·배급 업자의 비용으로 콘텐츠를 만들 때는 국내 콘텐츠의 재생산으로 부가적인 수입이 발생했다. 물론 방송사들의 수입 독식은 꾸준한 문제였지만, 그나마 방송사의 광고 수입 등이 국내 제작자와 배우들에게 일부 환원됐다. 정부는 극장 업자로부터 영화관람료 부과금 3%를 거둬 그 수입을 영화진흥정책에 활용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 국내 산업 관계자나 정부는 제작사에 할당하는 5%의 프로덕션 피 외 해외 방영권 판매 등 부가적인 수익이나 IP 활용에 관여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돈이 바깥으로만 샌다는 것이다.
결국 2020년 무렵부터 산업·정책 관계자들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OTT 콘텐츠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억제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해당 개정안은 계속 좌초되고 있다. 한편 새 정부는 올해 ‘미디어콘텐츠부’ 신설을 논의하며 영화·OTT·방송 콘텐츠 등의 정책을 통합하는 밑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나뉘어 있던 방송·통신 행정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통합 신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OTT 콘텐츠에 대한 통합 정책안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에 지난 9월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조직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미디어콘텐츠 관련 정책을 미디어콘텐츠부 소관으로 통합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정부 관계자 C 씨는 “행정부 정책에서 탈락하고 국회로 넘어간 사안이니 적어도 이번 정부 임기 내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전했다. 요컨대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K콘텐츠의 미래를 마냥 밝게 볼 수만은 없다. 시장 불균형을 조정하려는 산업계와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없다면 K콘텐츠의 버블은 이내 터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