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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작은 로컬을 지향하는 하이퍼로컬, 키워드는 ‘주민’과 ‘일상’
정명진 (주)지역콘텐츠발전소 소장 2026년 03월호
이동과 집합이 제한됐던 코로나19 시절, ‘슬세권’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슬리퍼를 신고 편안한 복장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권역을 뜻하는 신조어다.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에 대한 두려움은 컸지만, 잘 아는 사람들과 어우러진 ‘동네’라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줬다. 

비슷한 시기 언론에는 기존에 인식했던 로컬보다 더 작은 생활권을 의미하는 ‘하이퍼로컬(Hyper-local)’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지금까지 개척하지 못한 시장으로서 하이퍼로컬의 경제적 가치를 주목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 ‘당근’(구 당근마켓)과 같이 동네를 기반으로 사람들을 연결하는 온라인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퍼로컬은 동네와 비슷한 범주로 이해되기도 한다. 

주민들이 펼치는 연결, 활동, 경험에 집중…
농촌 마을만들기, 원도심 도시재생 등 정책 지원도


하이퍼로컬은 코로나19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매체 기술 발달로 전 세계에 하이퍼로컬 미디어가 등장하며 학자들이 개념화를 시도했고,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하이퍼로컬이 지역 미디어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영국의 언론학자 데미안 래드클리프는 하이퍼로컬을 “도심, 마을, 단일한 우편번호 또는 기타 지리적으로 정의된 작은 커뮤니티”라고 설명한다. 국내 연구자들은 지역밀착형 보도를 강조하며 하이퍼로컬을 다뤘다. 

미디어 분야에서 논의되던 하이퍼로컬 개념은 이후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경제적 담론으로까지 확장됐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생활권 안에서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결되면서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발견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지방소멸 대응 방안으로서 주민 주도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하이퍼로컬 활동이 활용되기도 한다. 

하이퍼로컬은 상대적인 공간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로컬은 글로벌과 대비돼 사용된다. 전 세계 차원에서는 한국이 로컬이며, 국가 차원에서는 광역·기초 지자체가 로컬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하이퍼로컬은 더 작은 로컬을 지향하는 하나의 관점이자 실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문화, 경제, 서비스, 미디어 등 어느 분야에서든 기존보다 더 작은 커뮤니티를 지향한다면 모두 하이퍼로컬이라 할 것이다. 

하이퍼로컬의 키워드는 ‘주민’과 ‘일상’이다. 로컬의 차원을 조금만 확장해도 일상은 희미해지고, 주민들은 시야에서 멀어진다. 따라서 하이퍼로컬은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펼치는 연결과 활동, 경험에 집중한다. 정책적으로는 농촌 마을만들기사업, 원도심 도시재생사업, 지역혁신사업 등을 통해 다양한 하이퍼로컬 활동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농촌 활성화를 위한 마을만들기사업은 대부분 하이퍼로컬을 기반으로 한다. 지속 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위해 주민 스스로가 마을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농촌체험 프로그램 및 상품 개발 등 소득사업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도시재생사업에서는 원도심을 활성화할 수 있는 소규모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 방식의 창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지역혁신사업으로 일상 속 지역 문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의제화하거나 리빙랩 방식으로 실험하는 프로젝트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주민들의 역량과 수요가 사업과 정확하게 맞물리지 않아 불협화음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주민들은 그 과정 속에서 경험을 쌓는다. 

이 사업들은 지역에서 미시적으로 이뤄지는 지방소멸 대응 정책들이다. 거시적으로 행정구역을 통합해 메가시티를 조성하고, 공항을 짓고, 고속도로와 철도를 연결하고, 기업과 정부 기관을 유치한다고 해서 지방이 저절로 살아나지는 않는다. 결국 교통을 이용하고 그 지역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사람의 존재가 핵심이다. 주민들의 활동이 지역이라는 공간을 채우지 않으면 속 빈 강정이 된다. 주민들 스스로 로컬살이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가 외부인에게도 매력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지역이 살아난다. 

출렁다리, 랜드마크처럼 장소성은 숨고 유행 타는 명소 대신
주민과 지역 자원 활용한 고유의 특성 살려야

지난해 (주)지역콘텐츠발전소는 백석대 ‘충남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의 일환으로 충남 청양군 주민을 대상으로 로컬스토리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민의 관점에서 로컬의 숨은 매력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두 달간의 글쓰기 교육을 통해 주민들은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장소, 역사, 공동체, 사람에 관해 22편의 글을 썼다. 대부분 마을과 동네에서 주민들이 경험한 일이 담긴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하이퍼로컬 차원에서 촘촘한 일상이 지역 자원과 만나 생동감을 더했다. 외부인을 위한 관광책자나 딱딱한 지역 기록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결이 드러났다. 주민 작가들의 글은 『살아 볼래? 청양!』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전자책으로 공식 출판됐다.

                              

주민들은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일상을 되돌아보고 질문하며 지역을 재인식한다. 도시로 떠났다가 고향인 청양으로 돌아온 40대 여성 참가자는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청양에 대해 잘 몰랐다”며 “글을 쓰기 위해 섬세하게 조사하다 보니 내가 진짜 보석 같은 곳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요즘 로컬이 ‘힙하다’고 하지만, 여기저기 비슷한 사업과 시설이 들어서면서 로컬이 너무 흔하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여러 지자체가 경쟁하듯 국내 최장 길이를 경신하며 곳곳에 출렁다리를 놓는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세우지만 지역 특유의 장소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유행은 동일화를 낳고, 동일화는 로컬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독일의 공간사회학자 마티나 뢰브에 따르면 공간은 인간과 사물의 배열과 관계를 통해 구성되며, 늘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또 장소성이나 공간이 주는 분위기는 행위자 간 실천의 결과물로 드러난다고 한다. 즉 주민들이 동네의 시설과 지역 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며 만들어내는 특유의 결에 집중해야 차별화된 로컬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지역의 ‘진짜 보석’을 캐기 위해서는 일상을 더 자세히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주민들이 만들어낸 일상의 결은 지역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 친근함과 새로움이 외부인을 끌어들인다. 로컬이 ‘힙’해지려면 하이퍼로컬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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