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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하듯 경기장 가는 2030 여성, 경기장 분위기도 지역경제도 띄웠다
김영은 한경비즈니스 기자 2026년 04월호
지난해 한국 야구는 새로운 기록을 썼다. KBO 정규 시즌 관중은 사상 처음으로 1,200만 명을 돌파했고, 입장 수익 2천억 원 시대를 열었다. 1982년 출범 당시와 비교하면 100배에 가까운 성장이다.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진화했다. 야구 관련 굿즈와 응원용품 판매는 급증했고, 기업들은 앞다퉈 KBO와 협업하며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비단 야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는(1, 2부 합산) 278경기 만에 200만 관중을 넘어서며 3년 연속 최소 경기 2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경신했다. K리그 흥행은 시즌 내내 이어져 K리그1, 2를 합쳐 347만6,027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배구 역시 경기장 수용 인원 대비 관중 점유율에서 여타 종목을 압도하는 팬덤 밀도를 보이고 있다. 스포츠 관람이 하나의 문화 소비로 자리 잡으면서, 팬덤 이코노미가 종목을 가리지 않고 확장 중이다.

여성 관객, 2024년부터 남성 추월하며
콘텐츠 재생산과 소비 확장 이끌어


야구 흥행의 주역은 2030 여성 팬덤이다. 지난해 야구장을 찾은 관객 중 여성의 비율은 54.4%로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20대 여성은 5년 전 17.9%에서 24%까지 급증하며 야구장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았다. 2025년 KBO리그의 TV 및 OTT(티빙 등) 플랫폼 시청자 분석에서도 20~30대 여성 팬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까지만 해도 남성이 57.1%, 여성이 42.9%로 남성 시청자의 비율이 더 높았지만, 2024년부터 남성 44.5%, 여성 55.5%로 판이 뒤집혔다.

전문가들은 여성 팬층의 급증이 단순한 매출 확대를 넘어 야구가 IP 기반 콘텐츠산업으로 진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브랜딩·마케팅 전문가인 한주영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는 “과거 야구가 지역 연고로 중장년층 남성을 주된 소비자로 뒀던 스포츠였다면 최근에는 2030 여성 팬층이 급증하면서 문화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여성들이 콘텐츠의 재생산과 소비의 확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한 교수는 “2030 여성을 중심으로 커뮤니티와 팬덤이 구축되면서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등 야구와 접목할 수 있는 콘텐츠 영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야구에 여성 관객이 늘어난 이유를 뚜렷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두고 ‘돌판(아이돌) 문화’가 이식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K팝으로 단련된 팬덤 문화가 야구에 그대로 옮겨갔다는 해석이다.

K팝과 야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미래 가치가 ‘사람’에 달려 있다. 잘 키운 아이돌 그룹 하나가 엔터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듯 잘 키운 선수가 구단의 분위기를 바꾸고 좋은 성적을 내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 팬덤에 따른 수익은 플러스 알파다. 야구와 K팝 모두 팬덤의 화력이 숫자로 나타난다. 인기가 있다고 해서 구단의 승률이 높아지는 건 아니지만, 팬덤 충성도가 높을수록 구단의 상품 매출과 입장 수익이 증가한다. K팝 아이돌이 앨범 판매량, 콘서트 횟수 등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와 비슷하다. 아이돌과 선수가 우상인 동시에 육성 대상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소속감을 가지고 응원하는 문화 역시 비슷하다.

디지털 환경의 변화도 흥행에 불을 지폈다. OTT 플랫폼 티빙이 중계권을 확보하며 ‘수익화 비허용 조건하의 2차 가공’을 전면 허용했기 때문이다. 과거 저작권에 묶여 있던 중계 화면이 해방되자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는 기발한 숏폼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실책 장면에 애절한 발라드를 입히거나 선수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편집한 영상들이 수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신규 팬들을 유입시키는 매개체가 됐다. 실제로 1020 세대는 TV 생중계보다 모바일을 통한 하이라이트와 2차 콘텐츠 소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야구장에 발을 디딘 젊은 세대들이 떠나지 않도록 야구 경기라는 서비스 품질을 높인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KBO는 경기가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부터 ‘피치클락(Pitch Clock, 투구 시간 제한)’ 제도를 도입했다. 또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AI가 스트라이크·볼을 판정하는 ABS도 도입했다. 이러한 시도가 공정성과 투명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야구계의 평가다.
 

응원 팀 원정 경기 따라가는 ‘스포츠케이션’ 강세…
승패보다 문화경험으로 소비되는 스포츠


팬덤 이코노미의 물결은 축구 리그로도 번지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2부 리그인 K리그2의 약진이다. 2024 시즌 수원삼성이 1부 강등 후 K리그2에 합류하자, 해당 시즌 K리그2 평균 관중은 전년 대비 86.7% 급증했다. 통상 강등은 구단에 위기지만, 수원삼성에게는 달랐다. 거대한 팬덤이 2부 리그 경기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수원삼성의 원정 팬 파워는 인상적이다. 수원삼성이 원정 경기를 치른 구장 대부분에서 해당 구단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이 새로 쓰였다. ‘원정 원군’이 홈구장을 장악하는 이 현상은 단순한 팬 충성심을 넘어 팬덤이 리그 전체의 흥행 인프라를 지탱하는 구조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올해도 ‘축구의 봄’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28일 개막한 프로축구 K리그는 개막 3일 만에 15만2,645명이라는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K리그의 수익 구조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기 관람권과 교통·숙박 등을 연계한 패키지 상품 판매가 확대되면서 객단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이른바 ‘스포츠케이션(스포츠+베케이션)’의 흐름이 K리그 수익 구조 안에 이미 녹아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원정 경기를 따라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숙박과 식사, 관광을 함께 즐기는 소비 패턴이 확산되고 있다. 호텔이나 여행업계가 축구뿐만 아니라 마라톤, 야구 등과 연계한 여행 상품을 내놨고, 지자체 역시 지역 활성화를 위해 스포츠케이션을 앞세운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들은 경기의 승패보다 경기장의 ‘분위기’에 관심을 보인다. 이들에게 스포츠란 영화관 티켓 가격에 먹고 놀고 소리 지르며 3시간 이상을 보낼 수 있는 하나의 레저다.

KBO가 2024년 7월 2,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방문객 중 ‘응원팀 성적과 관련 없이 경기장을 찾는다’는 응답자가 56%나 됐다. 이들이 경기장을 찾는 이유는 응원 문화가 재미있어서(49.3%), 가족이나 지인의 권유로(39.2%), 나들이·데이트 목적으로(31.1%), 치맥 등 음식 문화가 좋아서(29.4%), 다른 놀거리 대비 비용이 적당해서(26.2%) 등이었다(복수응답). 이처럼 야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관람을 넘어 문화 소비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허구연 KBO 총재는 일찍이 “야구의 라이벌은 축구가 아니라 영화관과 놀이공원”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요즘 팬들에게 야구장은 승패를 확인하는 곳이 아니라 먹고 놀고 소리 지르는 레저 공간이다.

지역경제 파급효과도 상당하다. KB국민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야구 경기가 열린 3월부터 5월까지 전국 9개 야구장 주변의 치킨전문점 등 패스트푸드점의 매출은 평소 대비 166% 상승했다. 편의점은 122%, 주점을 포함한 음식점과 커피·음료 판매점은 각각 76%, 제과·제빵점은 62% 늘었다. 대전에 새 둥지를 튼 한화 이글스는 성적 반등과 함께 관중이 53% 폭증하며 대전 시내 상권의 중심축이 됐다.

K리그 인근 상권도 경기 당일 눈에 띄는 매출 상승을 경험하고 있다.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 이벤트를 넘어 지역경제와 연결된 복합 소비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선홍 티빙 콘텐츠 총괄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며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승패보다는 문화적 경험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승리보다 경험을 사는 시대, 스포츠 이코노미의 무대는 이미 종목의 경계를 넘어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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