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일본은 똑같이 8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똑같은 게’ 아니었다. 한국은 도미니카공화국에 콜드게임으로 졌고, 일본은 우승을 거머쥔 베네수엘라에 접전 끝에 역전패했다. 6차례의 WBC에서 한국은 2009년 준우승 이후 1라운드 탈락이 3차례인 반면 일본은 우승 3회 포함 4강 이상이 5차례다. 이번 WBC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일본에 져 11연패다.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한일전. 그런데 2010년 이후 양국의 국제대회 성적 격차가 두드러지고 있다.
2024년 파리 하계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 8위, 일본은 3위를 기록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었지만, 한국은 금메달 13개 중 10개(77%)가 총·칼·활(사격·펜싱·양궁)에 쏠렸다. 일본은 육상 창던지기를 포함, 금메달 20개가 7개 종목에서 골고루 나왔다. 또 2018·2022년 FIFA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각각 조별리그 탈락과 16강 턱걸이에 그쳤지만, 일본은 연속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도 2022년 대회에선 강팀 독일과 스페인을 제압하는 경기력을 보였다. 일본이 스포츠에서 속도를 올려 뛰고 있다면, 한국은 뛰다가 걷고 오히려 뒤로 가는 모양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일본의 스포츠 약진은 중·고등학교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인 ‘부카츠(部活)’에서 시작한다. 1880년대 시작된 부카츠는 만화 『터치』(야구), 『슬램덩크』(농구), 영화 <으랏차차 스모부>(스모), <워터보이즈>(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등의 소재가 될 정도로 폭이 넓다. 부카츠 중에서도 운동부에 소속된 경우가 중학생은 70%, 고등학생은 50%가 넘는다. 한국 10대의 체육 참여율은 2025년 기준 43%에 그친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부카츠는 자연스레 성인 생활체육으로 연결되면서 선수 풀이 넓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 대한체육회에 등록한 한국 고등학교 야구부는 75개. 일본은 고교 팀이 3,700여 개다. 숫자에서부터 밀리는 현실은 ‘빅리그’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MLB)에는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 스즈키 세이야(시카고 컵스) 등 14명의 일본인이 진출해 있다. 한국 선수는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김혜성(LA 다저스) 등 4명뿐이다.
축구에서 차이는 더 크다. 유럽축구연맹(UEFA) 소속 1부 리그 팀에는 일본 선수가 92명, 한국은 23명이 뛰고 있다. 4대1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는 일본인 4명, 한국인 1명(황희찬)으로 역시 4대1이다.
구조적으로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유리하다. 축구만 봐도 2024년 기준 일본 J리그(1·2·3부 각 20개, 총 60개 팀) 입장료 수입은 약 288억 엔(약 2,721억 원)으로 약 426억 원을 기록한 K리그(1부 12개, 2부 13개 팀)의 6.3배 규모다. J리그 팀들은 K리그보다 높은 재정자립도를 바탕으로 이적료를 낮게 부른다. 무엇보다 일본 선수들은 국제무대 성적으로 검증된 상태다. 여기에 일본의 스포츠정책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일본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로 18위에 그쳤다. 이후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해 ‘국가전략으로서의 스포츠’를 내세웠다. 2015년에는 ‘스포츠청’을 신설했고 현재 제3기 스포츠 기본계획을 실행 중이다. 2020 도쿄 하계올림픽 이후의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엘리트 선수를 발굴해 ‘올림픽 입상 가능 수준까지’ 체계적인 훈련을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넓은 스포츠 저변에 깊은 정책이 더해진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 나아가 일본 스포츠청은 스포츠관광까지 다룬다. 지난해 관련 예산만 약 650억 엔(약 6,141억 원)에 이른다. 올림픽·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에서의 선전으로 국제 인지도를 높이고, 각종 대회를 지역에 유치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전략이다. 도쿄 국제마라톤만 해도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약 400억 엔(약 3,780억 원)에 이른다. 일본은 2032년까지 스포츠관광 시장을 약 202억 달러(약 30조1,525억 원)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다. 2022년 87억9천만 달러의 두 배 이상이다.
풀뿌리 부카츠–생활체육 확대–엘리트 스포츠 육성–국제무대 선전–스포츠산업으로 경제 활성화, 그리고 그 재원으로 다시 부카츠 지원. 거대한 그림이다. 다가오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묘하게도 한국 못지않게 일본에도 시선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