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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노동법제 개편을 위한 세 가지 방향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2026년 07월호
200여 년 전 산업혁명은 온 세상을 바꿨다. 중세 영농 산업구조는 근대 공장제 산업구조로 개편됐다. 그 과정에서 종속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자 계층이 등장했다. 노동법은 바로 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구축된 법·제도 체계다. 따지고 보면 노동법은 산업혁명의 산물로, 자본과 노동 사이 ‘쟁취와 착취’의 프레임을 전제로 설계됐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노동법의 구조적 속성과 체계는 고스란히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산업기술의 발전으로 노동 현실과 규범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크게 벌어졌고, 이를 메우는 과정에서 요란하게 법적 분쟁을 거듭해 왔다. 

피지컬 AI가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
대립적 노사관계, 경직적 노동법제 체계는 실효성 갖기 어려워

이제 AI 시대다.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 시장과 규범의 괴리를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AI로 대표되는 산업의 구조적 전환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 시대에 그러했듯 AI 시대가 가져올 미래의 변화는 예측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던 로봇은 인간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지만, 피지컬 AI는 스스로 생각하고 추론하며 행동한다. 게다가 인간의 신체구조에 내재된 기능적 한계를 극복하고, 기능적 효율성을 극대화한 운동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지컬 AI가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 시간 또한 틀림없이 우리의 예측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쯤 되면 이념적 도그마에 갇힌 전통적인 대립적 노사관계와 경직적·획일적 노동법제 체계는 더 이상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미시적인 법 문구 개정만으로 전환기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애당초 버려야 한다. 

법원 판결에 의존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200여 년 전에도 그랬다. 공장 설비만 파괴하면 도제식 공방 생산방식이 유지되리라는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우리는 분명히 목도한 바 있다. 이제 노동과 노동법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첫째, 착취와 쟁취의 이데올로기적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등장한 자본과 노동의 대립적 관계를 규율의 틀로 삼았던 노동법은 피지컬 AI 시대에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노사가 기업의 미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기에도 벅찬 시대에 직면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는 피지컬 AI의 도입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림없는 소리다. 피지컬 AI의 도입이 인간의 일자리와 충돌하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가 아니라, 인간의 일자리를 어떻게 더 안전하고 생산적으로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



둘째, AI에 대한 새로운 노동법적 규율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통적인 근로시간이나 임금 기반의 법리에 대해서는 과감한 손질이 필요하다. 노동의 양이 아니라 노동의 질이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 안전 분야도 마찬가지다. 산업 안전 분야에 피지컬 AI가 가장 빠르게 도입될 것이다. 위험한 작업현장에 굳이 인간의 노동력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만들어졌다 해도 정작 하늘 위 자동차길을 규율할 법·제도가 완비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피지컬 AI 시대를 위한 새로운 노동법 체계 구축에 지금 당장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고민스러운 대목도 있다. 인간과 피지컬 AI의 협업을 어떻게 이룰지다. 자칫 피지컬 AI와 인간의 경쟁구도가 초래돼서는 안 된다. 나아가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평가하고 예측하도록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인간과 인간의 노동력을 위해 피지컬 AI 활용 규범의 틀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고용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고용능력 보호에 집중하고
새 일자리에 수시로 진입할 수 있도록 근로자 역량 강화도 필수

셋째, 고용능력(employability) 보호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껏 노동법제의 핵심 가치이자 토대는 고용관계 그 자체의 유지와 보호였다. 해고제한제도가 대표적인 규율의 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고용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언제라도 고용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충분한 고용능력을 갖추도록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피지컬 AI 시대에는 일자리의 소멸과 생성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고용관계 그 자체를 무작정 보호하고 지속되도록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새롭게 생겨날 일자리는 새로운 직업능력을 필요로 할 것이고, 기업으로서도 근로자가 새로운 직업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국가는 이러한 기업의 역할을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로자의 참여다. 새로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직무능력을 학습하고 훈련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학 전공을 생애 내내 써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하는 시대가 AI 시대다. 독일은 국가 전략적으로 인간의 생애주기 내내 수시로 역량 개발을 위한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학습을 통한 역량 강화를 공적 이력이자 경력으로 제도화해 새롭게 생겨날 일자리에 수시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바로 미래 일자리 전략이다.

돌이켜보면 노동시장의 극단적 분절과 차별, 초고령화, 중대산업재해, 과도한 근로시간 문제는 우리가 풀어내야 할 노동시장의 해묵은 숙제요, 고질병이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로 재해석해 매번 요란하게 변죽만 울리다 어김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정부나 전문가의 의지와 확신만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게 노동 문제라는 것을 뼈아프게 각성하지만 시행착오는 어김없이 반복된다. 덕분에 노동시장 현실과 규범의 괴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오랫동안 너무나 당연시했던 것들이 갑자기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지는 격변의 시대다. 특히 피지컬 AI의 도입은 아예 판 자체를 바꿀 게 틀림없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가야 하는 길이 맞다면 중요한 것은 용기와 결단이다. AI 시대, 노동법제 체계의 개편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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