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양극화 해소는 결국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명시하는 작업이다. 중앙정부는 국가 차원의 인프라와 법제 정비를, 지자체는 지역 격차에 맞는 접근 거점과 프로그램 운영을, 기업은 자사 서비스가 초래하는 격차에 대한 자기 점검을, 시민사회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한 감시와 참여를 맡아야 한다.
AI는 이제 특정 산업이나 전문가의 도구가 아니라 학습하고 일하고 소비하고 판단하는 우리 일상의 모든 국면에 침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침투 속도만큼 빠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AI 양극화다. 단순한 개인 간 AI 격차의 총합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를 두 세계로 갈라놓는 힘으로 작동하려 한다.
AI 양극화는 개인 간 격차의 합 아니라 사회 구조 갈라놓는 힘…
성적·소득·자산 격차로, 다음 세대의 출발선으로 대물림
우선, 시장의 양극화다. 방대한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을 선점한 소수 플랫폼이 AI 생태계의 표준을 장악하고, 그 위에서 서비스와 이윤이 재편되고 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도구 사용료조차 부담스러운 반면, 일부 기업은 AI로 생산성을 몇 배씩 끌어올린다. 승자독식의 속도가 그 어느 산업혁명 때보다 빠르다.
다음은 세대 간 양극화다. 태어날 때부터 AI와 대화하며 자란 세대와 스마트폰 앱 하나를 설치하기 위해 자녀에게 전화를 거는 세대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간다. 이는 단순한 문화 차이를 넘어 정보 접근, 행정서비스, 의료 예약, 금융 거래 등 삶의 필수 영역에서의 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접근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양극화도 문제다. AI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학습·업무·창작에서 시간을 벌어 더 나은 기회를 축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같은 시간을 들여도 뒤처진다. 이 격차가 성적으로, 소득으로, 자산으로, 결국 다음 세대의 출발선으로 대물림된다. 이러한 양극화는 원칙을 선언한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예산을 배정하며, 책임 주체를 명시할 때 비로소 좁혀진다. 그 실행 조건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는 기울어진 출발선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AI 양극화의 뿌리는 어릴 때부터 자란다. 유료 AI 튜터를 쓰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차이는 한두 학기가 아니라 10년 뒤의 진학과 취업으로 굳어진다. 그래서 가장 먼저 손대야 할 곳은 교육 현장의 AI 인프라다. 초중고 학생 전원에게 검증된 교육용 AI 계정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습권을 구성하는 필수재로 AI 도구를 재정의할 시점이 왔다. 여기에 공공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 청소년수련관을 AI 학습 거점으로 재편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다만 접근성 확대와 함께 반드시 균형을 맞춰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AI 과몰입과 과의존의 예방이다. AI가 손쉽게 답을 내주는 만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이 위축될 위험이 상존한다. 접근을 넓히는 정책과 절제 있게 활용하도록 돕는 정책이 한 쌍으로 설계돼야 한다.
계층·세대 간 양극화 해소를 위해 취약계층 및 성인·고령층 정책도 시급하다. AI 취약계층, 자영업자와 경력단절 여성, 중·고령 노동자를 위한 AI 실습 바우처는 강의에 그치지 않고 자기 업무에 실제 적용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고령층에게는 행정·의료·금융 등 필수서비스 영역에서 AI 창구와 인간이 운영하는 창구를 병행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기술의 진보가 특정 세대를 시민의 자격에서 밀어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자본과 데이터의 비대칭을 완화하는 것이다. 시장 양극화의 근원은 데이터와 컴퓨팅, 자본의 비대칭이다. 대기업은 자체 데이터센터와 전용 모델을 운용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API 사용료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이 비대칭을 방치한 채 ‘모두 AI를 쓰라’고 하는 것은 공허할 뿐이다. 해법은 공공 AI 인프라 구축에 있다. 정부가 국가 AI데이터센터를 통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연구자에게 컴퓨팅 자원을 현실성 있게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해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와 함께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공공 부문이 보유한 양질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산업별로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표준화해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개인정보와 영업비밀을 보호하면서도 안전하게 활용할 기술적·법적 장치를 함께 갖춰야 한다. 데이터가 소수 기업에만 집중된 채로는 어떤 지원정책도 결국 자본의 격차를 뒤따라갈 뿐이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AI 도입에 대한 세제 혜택과 도입 컨설팅,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재도전 지원책이 결합돼야 한다. 시행착오를 감내할 수 있는 기업만 살아남는다면 결국 대기업만 남게 되고, 이는 국가경제의 다양성 자체를 위협한다.
정부가 공공 AI 인프라 구축해 데이터 비대칭 완화하고
AI 판단으로 채용 탈락, 대출 거절 시 설명받을 권리 보장해야
세 번째는 결정의 정당성을 지키는 제도적 방파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양극화의 가장 위험한 얼굴은 격차가 알고리즘의 결정으로 정당화되는 순간에 드러난다. 채용에서 탈락하고 대출이 거절되고 보험료가 오르고 복지 수급에서 배제될 때, 그것이 AI의 판단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는 격차가 곧 운명이 되고 만다.
이를 막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 첫째, 자동화된 결정으로 불이익을 받은 사람은 그 사유를 이해 가능한 언어로 설명받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이의를 제기할 경우 반드시 사람이 재검토하도록 절차가 보장돼야 한다. 셋째, 고위험 영역의 AI 시스템은 사전·사후 영향 평가와 감사 기록을 보존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AI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이며, 규제와 혁신은 대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의 두 축이다.
위와 같은 세 측면을 관통하는 원칙은 책임 주체의 명확화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AI 양극화 문제를 개인의 노력이나 시장의 자연스러운 조정에 맡겨두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격차가 저절로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인쇄술도, 산업혁명도, 인터넷도 그러했다. 제도가 개입하지 않은 자리에서 격차는 언제나 확대됐고, 시장·세대·계층의 양극화로 굳어졌다. 따라서 AI 양극화 해소는 결국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명시하는 작업이다. 중앙정부는 국가 차원의 인프라와 법제 정비를, 지자체는 지역 격차에 맞는 접근 거점과 프로그램 운영을, 기업은 자사 서비스가 초래하는 격차에 대한 자기 점검을, 시민사회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한 감시와 참여를 맡아야 한다.
특히 AI 기술은 초단기로 세대가 바뀌지만 정책은 3년, 5년 단위로 굳어지곤 한다. AI정책은 완성이 아니라 갱신을 전제로 설계돼야 한다. AI가 열어가는 미래는 두 갈래다. 하나는 모두가 시간의 주권을 되찾고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가 AI를 부리고 다수가 AI와 경쟁하며 소진되는 사회다. 어느 쪽으로 갈지는 기술이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어떤 제도를 설계하고, 어떤 예산을 배정하며, 어떤 책임 구조를 세우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AI 양극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에 의해 줄어든다.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오직 설계와 실행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