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2020년 11월 3일(화) 오후 2시 30분 장소:한림대 총장 집무실 대담: 주호성 『나라경제』 편집주간
1947 서울
서울대 경제학과,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1979~1983 미 오하이오주립대 수석연구원
1983~1991 KDI 연구위원, 국민경제제도연구원 부원장
1991~1993 KDI 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장
1995~1997 OECD 가입준비사무소장
1997~1998 한국조세연구원장
1998~2007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원장 및 교수
2002~2005 KDI 원장
2007~2008 한림대 총장,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2008~2010 주OECD대표부 대사
2010~2014 한국은행 총재
2014~2015 미 펜실베이니아대 초빙교수
2016~현재 한림대 총장
코로나19로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가 와닿는 한 해입니다. 총장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100세 시대, 제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도전과제로 펼쳐진 환경에서, ‘어떤 내일이 올 것이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코로나19는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갖도록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무엇이 지나쳤고 무엇이 부족했는가를 성찰해보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생활과 나라경제에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이 많습니다. KDI를 포함해 아카데미아(academia)라는 곳은 언제나 앞을 내다보는 지혜를 갖고 사회 문제 해결의 등불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한 혜안을 갖는 데 많이 부족한 점에 대해 스스로 큰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라경제』가 올해로 창간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난 30년간의 한국경제를 짚어보고 앞으로 30년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찾고자 합니다. 우선 총장님께서는 지난 30년이 한국경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십니까?
『나라경제』를 받아볼 때마다 저는 30년 전 『나라경제』를 창간하던 시절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왜 창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을까요? 당시의 사회를 회고해보면, 국제적으로는 동유럽의 사회주의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국내적으로는 정치민주화의 물결이 사회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였으며 경제 불균형과 경제 불안정이 대내외적으로 심각하게 우려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정부정책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므로 정부당국자와 시장참여자 간 정보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믿었고 바로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나라경제』를 창간했던 것입니다.
지난 30년의 경제는 무엇보다도 정부 주도의 경제운영에서 민간참여의 시장경제로 안정적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10여년 간격을 두고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고통을 겪었습니다만,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위기에 따른 제반 문제를 잘 해결했다는 것도 성과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1960~1980년대 고도성장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장통’을 극복했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경제도약을 내부 구조에 정착시킴으로써 우리나라를 명실상부하게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키게 된 시기가 지난 30년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의 우리 경제를 돌아볼 때 우리가 잘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리는 OECD에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회원국이 됐고,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함으로써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돋움하는 세계사적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 IMF에서는 신흥경제권으로 불리는 중국 등과는 달리 우리를 선진경제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 우리 경제의 위상을 나타내는, 지난 30년 동안 잘한 점들을 요약하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부족했던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부족한 점이 왜 없겠습니까만, 이러한 지적은 전적으로 어떤 기준을 세우고 분석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대개 부족했다고 하면 자기 기준에 의해서 부족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무엇을 잘했냐, 무엇을 못했냐, 강점이 무엇이냐, 약점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는 항상 기준을 미리 서로 이야기해야 해요. 경제 발전이라는 큰 성과를 내고도 이러한 거버넌스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결과 어떤 성과를 내던 장점보다는 단점을 국민들이 서로 부각시키는 현상을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이 계몽시대는 아니지만 국민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을 하는 것에 소홀한 점이 많았어요. 한 나라가 저절로 선진화되는 것은 아닌데 교육을 담당하는 우리의 책임이 클지도 모릅니다만 그것이 가장 아쉽게 느껴집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국이 플러스 성장을 보였습니다. 총장님께서는 현재 한국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 IMF는 중국경제가 올해는 1.9%, 내년엔 8.2%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장률을 보면 올해 1.9%로 상대적으로 경제운영에서 선방하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내년에는 2.9%로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성장률이 제일 낮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OECD도 이와 비슷한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지금 잘한다는 것보다는 내년에 우리가 이렇게 못한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비관적이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편안한 때일수록 위험이 닥칠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올해 남보다 잘했을 때 내년을 대비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는 이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나타날 뉴노멀과 새로운 패러다임에 한국경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하겠습니까?
코로나19 이후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언제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가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 이후를 규정짓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봅니다. 추상적인 표현처럼 들리겠습니다만, 불확실성이 만연하는 상황에서는 정해진 미래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미래의 길을 직접 만들어간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비전과 실천계획을 세워가면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콘택트(contact)에서 언택트(untact)사회로 변화한다고 인간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간극을 인터넷 기기 등 각종 기기가 메워준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인공지능(AI)을 위시한 기술발전이 생활 속에 파고들 것을 시사하는 것이며, 정책적으로는 더 형평하고 더 환경 친화적인 정책들이 주류를 이룰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하겠습니다. ‘의료·디지털·그린’이 향후 정책운용의 핵심 단어로 등장할 것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국가의 운영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세계를 둘러보며 미래지향적으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30년을 내다볼 때 한국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부분과 위협이 될 요인으로는 무엇이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습니까?
외부요인은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없으므로 어떠한 변화가 오더라도 이에 적응해 활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정책당국자의 시각이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미중 간의 갈등 심화, 신흥경제국가의 영향력 강화 등은 세심하게 다루지 않으면 순식간에 우리가 세계무대에서 뒤처질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국내요인보다는 훨씬 심각한 요인인데 이를 간과할 위험이 상당하다는 점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내부요인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경제발전의 동인은 이미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분석됐다고 봅니다. 이에 적절하게 대처하면 긍정적 요인이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많은 학자가 특정지역이 갖고 있는 특유의 발전요인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국가 발전에 참여해 포용적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적절한 제도(institution)를 구축하고, 유능한 거버넌스를 갖추는 것이 필수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중요성을 갈파하고 여론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아카데미아가 해야 하는데, 향후 발전 여부는 아카데미아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정부 주도의 성장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실제로는 당시로서는 매우 식견 높은 전문기관의 분석이 그 토대를 이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지식기관의 기능이 약화된 상황에서 국가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교육 부실화와 교육격차 심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코로나19가 대학 교육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합니다.
참 어려운 질문인데 제가 매일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 상태가 장기화되면 ‘교육의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사실 많이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교실강의가 온라인강의로 적절하게 대체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방역조건을 충족시키는 조건 아래 교실강의의 기회를 확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소외되고 뒤처지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만일 소득양극화에 상응하게 교육양극화가 현실이 된다면 이는 정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육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 많은 학습량을 유지시키도록 과제를 더 많이 내는 등의 노력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하이브리드(hybrid, 온라인+오프라인) 교육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 방안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편 교육격차의 문제는 세심하게 소외학생들을 파악하고 이에 접근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첩경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라는 것이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만을 하는 곳은 아닙니다. 교수와의 면담, 학생들 사이의 토론, 다양한 비교과활동 등을 통해 대학생활을 보내는 장소입니다.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습니다만, 설령 종식되더라도 신기술의 활용을 통한 대학생활의 새로운 패턴이 등장하고 정착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려면 우리 대학도 달라져야 할 텐데요, 어떤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대학이 사회변화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사회변화에 뒤처진다는 비판도 받고 있는 실정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사회의 여타 부문에도 적용되겠습니다만, 그동안 미적거리던 기술변화의 적용을 앞장서서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예들 들어 AI를 활용한 교육을 시행한다든지 또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절한 ‘융합’과정을 교육한다든지 하는 일들을 적극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봅니다. 그동안의 대학은 산업사회의 노동자를 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교 졸업생의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에서 이들을 교육시키는 부담도 상당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선진사회처럼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환경이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연구중심대학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인재양성이라는 측면 이외에 사회의 등불을 밝히는 연구에 더 몰입할 수 있는 대학으로 변신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시대의 필요에 따라 인재상도 변화해왔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미래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이러한 인재를 기르기 위한 방안은 무엇입니까?
‘100세 시대’나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은 개념은 이미 그 통용되는 의미가 어느 정도 정립됐습니다만, ‘코로나19 이후’는 아직 모호한 감이 있습니다. 단지 각자 나름대로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뜻으로 쓰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 ‘스페인 독감’ 같은 경우는 워낙 영향이 컸으므로 대학도 상당수 사라졌고 대학이 연구에 중점을 두는 계기로도 작용했으나, 에이즈(AIDS)·메르스(MERS)·사스(SARS) 등의 경우에는 이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전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마디로 이제 대학은 지식(knowledge)을 전달하는 기관에서 개인의 역량(competence)을 키우는 기관으로 그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터넷이 발달되고 생활화된 지금, 이제 지식은 어느 곳에서나 습득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또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시대에 뒤떨어질 수 있다는 겸허함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학교는 고기(fish)를 주는 곳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how to fish)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말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배우는(learn) 곳이 아니라 배우는 것을 배우는(learn to learn)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제의 답을 풀려고 하는 곳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능력부터 키우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했던 주입식이면서 외우는 교육의 시대는 이제 그 효력을 다했다고 봅니다. 새로운 대학상이 그려지고 있으며 이런 면에서 새로운 대학들이 튀어나올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는 문과와 이과와 같은 인위적인 학문의 구분을 무시하고 폭넓게 지식을 통섭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며, 기초적인 수학이나 통계학은 누구나 수학하도록 하되 AI를 활용해 개인별 역량을 고려한 적응형(adaptive) 교육을 하는 등의 대변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창간 30주년을 맞은 『나라경제』에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통’의 중요성은 제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공공부문은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정보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갭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두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소위 ‘정보의 비대칭성’의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경제사회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나라경제』의 기여도는 매우 크다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공공부문 종사자에게 글 쓰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글은 한마디로 ‘생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글을 써야 수요자를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것입니다. 개조식이 아닌 완결된 글 형태로 내용을 정리한다는 것은 올바른 정보전달의 전제조건입니다. 이렇게 글로써 소통하는 것이 나라의 무형자산인데, 『나라경제』가 선진화된 사회로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데 지속적으로 기여하길 바랍니다. 지난 30년간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나라경제』가 훌륭하게 성장한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국가가 선진화되는 데에는 『나라경제』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게 헌신하는 조직이 반드시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라경제』의 무궁한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