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2021년 2월 15일(월) 오후 2시 장소: KDI 원장 집무실 대담: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1953 하동 生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1982~1983 미국 워싱턴-제퍼슨대 조교수
1998~2002 일본 도쿄대, 독일 호엔하임대 객원교수
2004~2006 건국대 상경대학장
2003~2009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1988~2018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2018~현재 KDI 원장 및 KDI국제정책대학원 총장
올해 국내경제 상황으로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나라보다는 충격이 덜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도 지난해 코로나19로 힘들었습니다. 올해에는 상황이 나아질까요?
물론 지난해보다는 훨씬 좋아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지난해에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과가 좋았어요. 올해 백신이 보급되면 팬데믹 상황도 끝나갈 것이고 K방역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국내 경기도 정상 궤도로 향해 가지 않겠나 전망합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첫해인데 미중 관계나 다자주의, 글로벌 환경규제 등 다소 다른 종류의 불확실성 요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통상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 보시는지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돌출 행동을 많이 해서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주로 미중 갈등이 핵심이어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어요. 바이든 행정부는 전통적으로 미국 다자주의를 추구하는 입장이고 미중 갈등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기에 우리 통상환경에는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지 않아요. 기후협약 문제도 장기간에 걸친 것이기 때문에 올해에 당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수출환경은 좋아지고 있고 차차 성과도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올해 본격적으로 소위 ‘K뉴딜’이라는 한국형 뉴딜 정책이 추진될 터인데, 거시경제지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한국판 뉴딜은 과거 프랭클린 루즈벨트 뉴딜에서 어원을 따왔지만 지금의 뉴딜 방향은 전혀 다르죠. 아시다시피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인데, 이것은 장기적으로 산업재편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생활구조가 바뀌거나 새 산업을 일으킨다는 의미죠. 디지털 뉴딜은 디지털 분야, 4차 산업혁명, AI 분야 등에 주로 투자해 그 산업을 특화시키는 것이고, 그린 뉴딜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업구조가 중장기적으로 바뀌는 상황을 전제해요. 이제 시작된 것이기에 올해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도 중장기적으로는 거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기대하는 큰 방향의 국가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판 뉴딜 정책이 일자리 상황도 개선할 수 있을까요? 요즘 20대를 부모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정책연구기관의 수장으로 고용이나 일자리, 특히 청년실업 문제에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일자리는 역시 가장 큰 정책 이슈지요. 지난해가 특수상황이라 하더라도 취업자 수가 지난 1월에 100만 명 가까이 줄었어요. 올해 취업자 수가 증가하더라도 청년실업은 여전히 문제인데, 한국판 뉴딜 정책이 당장 취업 문제, 고용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요. 시간이 걸리고 산업구조가 바뀌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고용은 주로 서비스산업에서 창출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서비스산업이 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서비스산업이 정상화되면 실업 문제는 많이 해결되고 고용상황도 더 좋아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비대면 서비스산업에 새로운 영역이 나타났기 때문에 서비스산업에도 큰 변화가 올 겁니다. 반대로 관광이라든지 대면 서비스산업은 타격이 더 심했는데 이들이 정상화되는 과정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입해서 생산성이나 고용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를 겪으며 정부 역할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어요. 큰 정부와 대규모 재정, 소위 빅브라더의 부활 같은 느낌도 드는데, 원장님께서는 이러한 정책기조가 유지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큰 정부, 작은 정부는 경제학에서도 오랜 논쟁거리죠. 지금은 큰 정부가 불가피한 상황이고요. 대공황 이후로 케인스 이론처럼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정신이 지배적이고, 그 이후 신자유주의 바람에 따라 작은 정부 논의도 나왔습니다만, 재난 상황에서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에도 정부가 개입을 했었죠. 팬데믹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금융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요. 재정확장이라든지 금융완화 정책은 당분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경제 5.0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5.0’은 어떤 의미인지요?
내가 만든 용어인데, 임기 중에 KDI 50주년을 맞이하더라고요. KDI 50주년은 굉장한 의미가 있어요.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이론적인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성공적인 싱크탱크 모델이 돼 있거든요. 그런데 50주년을 맞이하면서 기능과 역할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몇 년 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함으로써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는데요. 과거는 고도성장이 주목적이어서 주로 정책 제안이 고도성장에 맞춰졌지만, 향후 50년은 어떤 선진국을 만들어내느냐가 과제예요. 북유럽형의 복지 선진국을 만들 것인지, 미국의 시장형 선진국으로 갈 것인지 등이지요. 한국 고유의 새로운 선진국 모델을 만들어서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 빈곤은 벗어났으니 그다음 목표는 삶의 질이 되지요. KDI 역할로서 ‘next 50’의 50의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2050년을 내다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3만 달러를 넘어서서 5만 달러 시대는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주제들이 KDI가 추구할 역할이고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나라가 3만 달러를 넘기면서 계속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성장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 시대로 갈 때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덫이 있다면요.
그 덫은 갈등이라고 봐야지요. 특히 국내 갈등. 근로자와 자본가의 갈등이라든가 빈부격차, 상대적 빈곤, 양극화 등의 문제가 3만 달러 시대에 각국이 마주하는 덫이죠. 우리가 더 어려운 점은 저출산·고령화가 세계에서 최고로 심한 나라인데,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10%, 15% 성장을 했지만 지금은 유럽의 전통적인 자본주의 선진국이라든지 일본, 미국 모두 1% 전후, 2% 달성도 어렵거든요. 앞으로 지속적으로 고성장을 할 수가 없어요. 저성장은 불가피합니다. 그래서 5만 달러까지 가는 길은 험난할 겁니다. 그 과정에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노사갈등이나 규제 문제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또 생산성, 기술진보, 혁신경제 이런 것을 이렇게 이뤄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해결할 과제지요.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을 보면 안전망 강화, 즉 포용적 성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린 뉴딜이나 디지털 뉴딜 모두 투자 쪽으로 무게 중심이 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전환에 합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국가는 포용해야 할 텐데, 포용적 성장이 정책으로 많이 구현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포용적 성장이 소위 안전망이나 양극화 해소 등과 궤를 같이하고, 그 문제 해결 없이는 5만 달러 시대라든지 장기적인 복지국가를 만들기 어렵지요. 그래서 예산이 많이 배정돼야 하는데, 관건은 증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금을 올려야 하는데 이 얘기는 누구도 하지 않아요. 정치권에서 싫어하는 화두기는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극복되고 나면 증세 문제도 공식화해야 하고. 조세개혁을 포함한 정책을 구상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출산과 그 이면에 있는 노령화 문제는 극복해야 할 주제이면서 적응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고령화는 저출산과 별개의 문제예요. 나이만이 공통 분모죠. 고령화는 복지 정책의 이슈고 KDI에서도 이 분야의 연구를 많이 했어요. 간병, 요양이라든지 노인복지, 또 복지 사각지대 문제 등.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결국 예산 문제죠. 반면 저출산 대책은 예산 투입에 비해 성과가 잘 안 나와요. 사회구조적으로 아이를 갖고 키우는 것이 힘든 구조라는 얘기지요. 그런 본질적 문제에 접근해 실질적으로 효과가 발휘돼 자녀 양육이나 교육 걱정에서 자유로워져야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거든요. 사교육 문제만 보더라도, 사교육시장이 수십조 원 규모고 이를 토대로 먹고사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저출산 문제는 돈으로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 문화와 제도가 바뀌어야 해결됩니다.
디지털경제 부문이 커지면서 플랫폼경제에서 독과점 문제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플랫폼 소유 기업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또 플랫폼 노동자 사이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그것이 독점력이거든요. 제조업에서 독점력은 주로 두 가지 측면, 구매 독점력과 판매 독점력으로 봅니다. 제조업시장에서는 그동안 판매시장의 독점력, 그러니까 독점기업의 횡포에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플랫폼시장에서는 구매시장, 즉 플랫폼 기업과 개발업체, 택배 노동자들 간 사회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구매 기업이 커지면서 독점력을 가지니까 보상을 낮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판매 독점에서는 가격을 높이는 것이 문제고 구매 독점에서는 보상을 적게 하는 것이 문제인 거죠. 이러한 독점 문제는 공정거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전통적으로 제조업에서 주로 판매 독점이 많아 그간 공정거래 정책이 판매 독점에 비중을 두고 규제를 했지요. 이제는 구매 독점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시장으로 접근하면 공정거래 정책으로 풀어야 하고, 특히 구매 독점에 대한 제재가 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해에 대통령께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신 다음 과연 우리나라도 달성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2050 탄소중립은 현재 시점에서 보면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도 있지요. 강대국들의 협조가 관건입니다. 중국에서 엄청나게 탄소를 쏟아내는데 직접적 피해를 보는 건 우리나라니까요. 바이든 대통령도 ‘2050 탄소 제로’에 앞장서겠다고 하니 고무적입니다. 산업구조부터 바뀌어야 하기에 산업정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해요. 그린 뉴딜에서 장기플랜을 세우면 아직 30년 남았으니까 2050년 제로에 상당 부분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KDI 50주년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웹사이트를 보니 ‘세계 최고, 글로벌 최고, 글로벌 탑’ 싱크탱크를 표방하셨더라고요. ‘50’은 지천명이니만큼 올해 의미 있는 행사들이 준비돼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 슬로건이 ‘Korea’s leading think tank’인데, 이것은 설립 때부터 이어져 왔어요. 그런데 우리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평가 순위에서 미국을 포함해도 20위 이내고 아시아에서는 1위, 또 분야에 따라 1위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습니다. 명실공히 세계적인 싱크탱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world-leading think tank’가 되려면 세계적인 과제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일부 개발도상국 등과 부분적으로 하고는 있지만요. 국가의존도를 줄이고 자생력을 갖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같이 세계적인 민간 싱크탱크로까지 가면 좋겠어요. 또한 이전에는 ‘번영을 향한 경제설계’가 우리의 목표였다면, 이제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으로 새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오는 3월 11일 개원 50주년을 기념해 공식적으로 비전 선포를 계획하고 있어요. 국제적인 기관을 표방한 것도 그런 비전의 한 부분으로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