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이스라엘을 스타트업 강국으로 생각해 왔다. 사실 그렇긴 하다. 이스라엘에는 어마어마한 스타트업이 많다. 인텔이 16조 원을 주고 인수한 모빌아이부터 나스닥에 상장해 기업가치가 8조 원이 넘는 테크회사로 성장한 윅스닷컴 등 대단한 회사가 많다. 우리가 모르는 조 단위 엑시트(exit)를 한 이스라엘 스타트업도 꽤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오히려 한국을 부러워한다. 이스라엘에는 의외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같은 글로벌 대기업은 없다. 모빌아이나 윅스닷컴, 웨이즈 등 유명한 스타트업들도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보다 미국 쪽에 더 중심을 두고 있는 회사들이라 완전히 이스라엘 회사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결국 미국 회사에 매각되고 비즈니스의 중심이 해외로 이전되는 경우도 많다. 작은 나라라서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우아한형제들은 5조 원, 하이퍼커넥트는 1.9조 원…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빅딜 이어져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부족한 점이 많고 스타트업 강국인 이스라엘처럼 돼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처음부터 이렇게 스타트업들이 잘된 것은 아니다.
처음 계기는 미라빌리스라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만들어졌다. 1998년 ICQ라는 인터넷 메신저를 만든 이스라엘 스타트업 미라빌리스가 미국 AOL에 약 4천억 원에 매각된 것이다. 매출이 거의 없는 기업인데도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거액으로 미국의 공룡 IT 기업에 팔리면서 단번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됐다. 이 거래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엄청난 자극이 됐다고 한다. 이들을 흉내 낸 많은 테크 스타트업 창업이 이어졌다. 미라빌리스의 엔젤투자자였던 요시 바르디는 투자 수익으로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활발히 이어갔고 이것이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루는 촉매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이제 이스라엘 사례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5년까지만 해도 테크 스타트업의 가장 큰 엑시트라고 해봐야 내비게이션앱 김기사가 카카오에 626억 원에 팔린 정도였다. 수천억 원대의 스타트업 매각 딜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2019년 말에 수아랩이라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이 2,300억 원에 미국 코그넥스로 인수됐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배달의민족을 만든 우아한형제들이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에 약 5조 원으로 인수되는 딜이 나왔다. 그리고 올해 2월에는 비디오채팅앱 아자르로 유명한 하이퍼커넥트가 약 1조9천억 원에 미국의 매치그룹에 인수됐다. 하이퍼커넥트는 사실 그동안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1조 원대 가치의 유니콘 스타트업 리스트에도 들어있지 않던 기업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 11일에는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해 시가총액 100조 원짜리 회사가 되는 믿기 어려운 일까지 일어났다.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규모는 2014년 중국 알리바바의 상장 이후 아시아 기업으로서는 최대 규모다.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이스라엘 스타트업도 이렇게 큰 상장을 한 일이 없다.
혹자는 이런 알짜 기업들이 해외 기업에 팔리거나 해외 증시에 상장하면 국부유출이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회사가 해외에 매각된다고 그 회사를 들어서 외국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고, 회사는 그대로 한국에 남아 있다. 거액의 인수자금은 이 회사들의 창업자와 위험을 감내하고 초기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에 돌아가게 된다. 이스라엘 미라빌리스의 사례처럼 이런 딜로 돈을 번 창업자와 스타트업 임직원들은 다시 창업에 나설 것이다. 그리고 투자자들도 더 열심히 좋은 스타트업을 찾아서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인재, 정보통신·물류 인프라, 정부지원 등 한국도 훌륭한 스타트업 생태계 갖춰
한국은 사실 스타트업 창업에 있어서 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은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열심히 공부하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젊은 인재를 많이 보유한 나라다. 카이스트, 포스텍, 유니스트 같은 훌륭한 연구중심 이공계 대학도 보유하고 있다. 시장도 그리 작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 이상에 인구는 5천만 명이 넘는 나라다. 이런 나라는 전 세계에 7개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국민이 얼리어답터 성향을 갖고 있다. 이커머스시장은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일 정도다. 미국, 중국을 제외하고 테슬라가 가장 잘 팔리는 나라도 한국이다.
또한 한국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강한 제조업 역량을 가진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고 정보통신 및 물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벤처캐피털 투자사가 200곳이 넘으며 연간 7조 원 이상의 벤처자금이 스타트업에 투자되고 있다. 혁신 스타트업들을 인수해 줄 만한 IT 대기업도 많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수십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게임 대기업 그리고 1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지닌 유니콘 스타트업도 10개가 넘는다. 여기에 더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정부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나라다.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 정도로 환경이 잘 갖춰진 나라를 보지 못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같이 활발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역량을 해외에서는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달의민족과 하이퍼커넥트 같은 메가 인수합병(M&A) 딜과 쿠팡의 성공적인 상장이 이뤄지면서 이 같은 상황도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많은 해외 투자자와 IT 기업이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필자가 그동안 알고 지내던 외국 투자자들이 “좋은 한국 스타트업 없냐”며 갑자기 연락을 해올 정도다. K팝과 한국 드라마·영화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타이밍이라 더 이상적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10년이 스타트업 코리아의 중흥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이 10년 뒤에는 이스라엘을 능가하는 글로벌 스타트업 강국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사실 20여 년 전을 돌이켜보면 삼성전자, 현대차가 이 정도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한국 콘텐츠가 이렇게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한국의 스타트업들도 전 세계적인 한류 히트상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