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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로 가는 사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22년 06월호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벌써 3년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 시대를 상징해 온 것은 거리두기였다. 그런데 이 거리두기가 지난 4월 18일부터 사실상 해제됐다. 팬데믹이 새로운 전환점에 도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용돼 온 개념이 ‘위드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다. 사회과학에서 ‘포스트’란 명칭을 붙이는 것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포스트 산업사회’란 산업사회 이후의 사회, 즉 산업사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인 탈산업사회를 말한다. 이 점에 주목해 코로나 이전 시대와 대비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개념이 쓰였지만, 이에 대해 불만이 없지 않았다. 그 불만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팬데믹이 종식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처럼 생각된다는 데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신해 새롭게 제시된 개념이 위드 코로나다. 위드 코로나 시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진행되는, 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시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요컨대 코로나19 팬데믹은 위드 코로나를 거쳐 포스트 코로나로 나아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거리두기의 해제는 코로나19가 진행 중인 위드 코로나 시대의 중대한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지구적 차원에서 위드 코로나 시대가 좀 더 길어질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머지않아 위드 코로나를 마감하고 포스트 코로나로 나아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시대의 세 특징: 
‘이중적 뉴노멀’, ‘글로벌 위험사회’, ‘국면사’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나는 이 시대의 성격을 세 개의 키워드, 다시 말해 ‘이중적 뉴노멀’, ‘글로벌 위험사회’, ‘국면사(局面史)’로 규정한 바 있다. 이중적 뉴노멀이 ‘경제적 뉴노멀’에 ‘의학적 뉴노멀’이 결합된 것을 뜻한다면, 글로벌 위험사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테러리즘, 금융위기, 기후위기와 함께 민족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지구화된 위험의 또 다른 사례임을 의미한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개념화한 국면사도 코로나 시대의 특징을 적절히 설명한다. ‘사건사’를 넘어선 국면사로서의 코로나19 팬데믹은 개별 사건들을 아우르는 ‘바이러스 폭풍 시대’를 함의한다. 이 팬데믹의 국면사에서 백신 개발은 첫 번째 분수령이었다. 설령 코로나19에 감염됐더라도 백신 접종은 중증으로의 전화를 막아 상당한 안전을 제공했다. 그리고 이제 거리두기라는 상징적 방역조치의 해제는 그 두 번째 분수령이라 할 만하다.

움직이는 역사 안에서 그 움직임 전체를 온전히 파악하기란 어렵다. 파도라는 사건들을 넘어선 해일이라는 국면의 역사로서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지난 2년여라는 비교적 긴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변화시켜 왔다. 세계화의 후퇴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위기, 경제적 산업구조의 재편과 언택트 사회·문화의 약진, 비자발적 오프라인 고립의 증대와 이에 상응하는 온라인 부족 문화의 강화가 현상들이었다면, 그 본질에는 바이러스의 예기치 않은 습격이 놓여 있었다. 문명 대전환기와도 같은 이러한 모습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아온 국면사의 낯선 풍경이다.

이런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중요한 사회적 결과로 특히 주목할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불평등 문제다.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19가 진행되면서 서구 사회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경향이 증가했다. 특히 적지 않은 노동자가 일련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고, 자영업자들은 시민들의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어 소득이 크게 감소됐다. 이에 더해 우리 사회에선 아파트 가격 폭등에 따른 자산 양극화의 심화가 2030세대의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을 격발시켰다.

다른 하나는 불안의 정체성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건드린 것은 인류의 심층 안에 놓인 안전과 생명에 대한 불안의 즉각적인 감각이다. 21세기적 불안의 기원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경제와 이로부터 파생된 ‘경제적 퇴출의 공포’에서 비롯됐다. 이 ‘경제적 퇴출의 공포’가 계층과 지위의 하락을 의미하는 ‘사회적 퇴출의 공포’로 전이되고, 이 사회적 퇴출의 공포가 타인에의 관용을 약화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집단에의 충성을 강화시키는 ‘혐오와 적대의 부족주의’를 중핵으로 삼는 사회적 불안을 부추겼다. 안전과 생명에 대한 불안인 ‘코로나 공포’가 우리 시대 경제적·사회적 불안을 공고히 해왔다고 볼 수 있다. 

757일의 거리두기가 바꿔놓은 일상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앞서 말했듯 거리두기가 대부분 해제됐다.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오미크론 변이는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위드 코로나 시대라 할 수 있지만,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가는 중대한 전환점의 문턱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코로나19의 유행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종교 시설과 일부 사업장에 15일간 운영 제한을 권고한 첫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 2020년 3월 22일이었다. 그동안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757일 만에 일상회복이 이뤄지게 됐다.

돌아보면 거리두기는 일상을 크게 바꿔놨다. 당장 대학의 사례만 보더라도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대면으로 수업이 진행돼 왔다. 비대면 사회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졌다.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사회적 관계의 과도한 구속으로부터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한 부분은 그 장점이었다. 인맥 쌓기를 위한 만남이나 모임을 크게 감소시킨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비대면적 초연결이 증가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대면적 고립이 강화된 부분은 그 단점을 이뤘다.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지적처럼 ‘고립의 시대’가 더욱 뚜렷해진 것은 위드 코로나 시대의 그늘이었다.

이제 우리나라를 포함해 지구적 차원에서 일상회복이 이뤄진다고 해서 우리 인류가 과연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팬데믹을 경유하면서 인류는 적지 않은 인간관계가 기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렇다고 인류가 고립에 익숙한 존재는 아니다. 생물학자 최재천의 지적처럼 인류는 본디 비대면보다 대면에 익숙한 존재로 진화해 왔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인류는 앞으로 코로나 이전의 넘치는 인간관계와 위드 코로나의 부족한 인간관계 사이에 놓인 ‘제3의 자리’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드 코로나가 포스트 코로나로 가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특히 지구적 차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큰 위험은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이다. 접종 및 자연면역의 효과가 감소하게 되는 것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나아가 겨울이 돼 실내 활동이 증가하는 계절적 요인에 따라 코로나19가 재확산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단기적 대책과 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또 추진해야 한다.

고령세대에 대한 섬세한 방역과 
‘코로나 불평등’ 해소 위한 경제·사회 정책 추진해야


먼저 단기적 대책으로는 코로나19에 특히 취약한 고령세대에 대한 의학적 방역이 중요하다. 널리 알려졌듯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 사망자의 90% 이상은 60세 이상의 고령세대다. 이들에 대한 4차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늘려야 한다. 고령세대를 대상으로 한 섬세하고 치밀한 의학적 방역은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계속돼야 할 것이다.

한편 중장기적 대책으로는 이중적 뉴노멀 사회로서의 코로나 시대에 대한 경제·사회 정책이 중요하다. 이 미증유의 바이러스 폭풍은 의학적 고통은 물론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안겨 왔다. 지난 2년여 동안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등 코로나19로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의 현실을 지켜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코로나 블루’ 또는 ‘코로나 레드’라는 말이 보여주듯, 심리적 안정감도 적잖이 무너져 있다.

이런 의학적·경제적·심리적 차원을 모두 고려하면, 사회적 위험으로서의 코로나 현상은 평등하지 않다. 폭염과 한파 등의 기후위기에서 볼 수 있듯, 코로나19가 미치는 영향은 계층·직업·세대에 따라 다르다. 특히 비정규직, 자영업자, 고령세대 등에게 코로나19가 안기는 위험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다. ‘코로나 불평등’이라 할 만하다.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이 코로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전방위적 경제·사회 정책을 추진할 때에만 코로나19 팬데믹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지적했듯 코로나19 팬데믹은 의학적 뉴노멀이 경제적 뉴노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이중적 뉴노멀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이중적 뉴노멀의 장기화는 코로나19 불평등을 강화해 왔다. 코로나19가 낳은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정치적 양극화는 다시 심리적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대처에서 개인의 방역도 중요하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코로나 불평등을 완화하고 해소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다. 새 정부가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가길 바라는 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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