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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 확실한 코로나19, ‘창조적’이기도 할까?
우석훈 경제학자 2022년 11월호


며칠 전 몇 년째 한 권도 들여다본 적이 없는 책장 하나를 아예 치울까 싶어서 무슨 책이 있나 잠시 살펴봤다. 20대 때 읽었던 불어본 조지프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 책을 왜 읽었을까? 굉장히 비싼 돈을 주고 어렵게 구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한때 지금의 경제원론 체계를 만든 폴 새뮤얼슨의 스승이라는 걸로 슘페터가 유명했지만, 지금은 1920년대 논쟁 과정에서 그가 사용했던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으로만 남은 것 같다. 그것도 21세기에는 슘페터가 그 얘기를 했다는 사실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 것 같다. 

21세기 등장한 그 어떤 팬데믹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코로나19 여파


초등학생인 우리집 아이들도 코로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는 것 같고, 이제는 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영어권이 아니라서 생기는 일인데, ‘COVID-19’을 번역해서 사용하는 ‘코로나19’가 바이러스 이름이 아니라 질병의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실 많이 보지 못했다. ‘코비드’가 ‘Corona Virus Disease’의 줄임말이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헷갈릴 이유가 없는 이름인데, 번역어 ‘코로나19’는 사실 좀 헷갈리기는 한다. 초기에 사용된 ‘우한 폐렴’ 혹은 ‘우한 독감’을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말이 코비드다. 그리고 이 수많은 사태를 일으킨 바이러스의 정식 명칭은 ‘SARS-CoV-2’다. 언론에서 많이 다루지 않은 이름이라 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이름을 가만히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로의 ‘사스2’, 즉 두 번째 사스 변종이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사스는 2002년 발생했고, 같은 코로나 계열의 바이러스인 메르스가 유행한 것은 2015년이다. ‘사스 코브 2’라는 이름은 즉각적으로 ‘그러면 사스3는 생겨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 생에 이렇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질 팬데믹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속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등장한 그 어떤 팬데믹과도 비교할 수 없게 코로나19의 여파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슘페터의 비유를 사용하자면,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파괴’인 것은 확실한데 그것이 ‘창조적’일지는 아직은 분명치 않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용어는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많은 변화가 생겨난 것은 확실한데, 그것이 과연 창조적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작동 양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국면의 향방이 아직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인플레이션, 이건 지금까지의 팬데믹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위기의 기간과 인플레이션 양상, 석유파동과 닮은꼴

코로나19 초기에 1929년 대공황과 비교하는 얘기들이 종종 있었지만, 나는 그보다는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쳐서 벌어진 석유파동과 더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기간 측면에서 위기의 성격이 석유파동에 더 가깝다. 우리가 겪었던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사건의 후유증은 컸지만 폭발적인 현상 자체가 매우 빠르게 발생했다. 주요 ‘이벤트’들이 사건 초기에 집중적으로 생겼고, 금융시장 등이 외형적으로는 매우 빠르게 회복됐다. 석유파동의 경우는 1973년, 1977년 두 차례에 걸쳐서 일어났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최소한 외형적으로 1차 석유파동은 큰 여파 없이 지나갔지만, 2차 석유파동은 대규모 실업을 발생시켰고, 흔히 ‘팔공년 공황’으로도 불리는 위기를 만들어냈다. 위기의 기간이 아주 길었다. 

석유파동과 코로나19 국면의 또 다른 유사성은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흔히 ‘영광의 30년’이라고 부르는 전후 재건 과정에서 발생한 장기 호황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이것이 석유가격 상승과 결합하면서 장기간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시기를 만들어냈다. 고물가와 싸우던 1980년대는 이렇게 왔다. 멀게 보면 2008년 이후의 통화공급 정책과 제로금리 이후로 쌓여 있던 유동성, 여기에 코로나19 기간의 재정정책 등이 결합돼 새로운 인플레이션 국면이 만들어졌다. 곡창지대이자 주요 산유국에서 벌어진 전쟁은 현재 추세를 강화하는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됐다. 

연말까지 미국 기준금리가 4%가 될지, 4.5%가 될지, 5%가 될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코로나19 이후로 발생한 여러 변수는 그 어느 것도 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상승을 불러왔고, 그만큼 달러가 강해지는 ‘강달러’ 현상이 발생했다. 원화 약세를 견디다 못한 한국의 기준금리 급상승 등은 연쇄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기간은 얼마나 갈 것인가? 어느 정도의 기준금리 수준에서 인플레이션이 정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지만, 이걸 알기는 어렵다. 금리인상이 정지되더라도 21세기가 시작하면서 우리가 봤던 제로금리 혹은 실질적 마이너스 금리를 또 보기는 아주 어려울지도 모른다. 석유파동 이후 10년 이상 계속된 인플레이션 국면이 세계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꾼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세계 질서 변화가 지금 진행되는 중이다.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온실가스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부가적 요소를 넣었고, 한국 차와 일본 차에 대한 다소 일방적인 차별적 요소를 담게 됐다. WTO 출범으로 1990년대 이후 형성된 세계경제 질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다. 전기차 등 자동차에서 시작된 이러한 일련의 ‘미국산’ 중심의 정책 변화는 반도체를 거쳐 바이오산업 등 첨단산업 전반으로 확대돼 가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이 같은 극단적인 국수주의적 산업정책은 과연 무슨 상관이 있을까? 트럼프 이후로 강화되던 안티 WTO와 여러 가지 상황이 결합되면서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WTO 주도의 무역질서가 약화되고, ‘최혜국 대우’ 같은 용어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10년 전에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한미 FTA에서 논란이 됐던 투자자소송제를 활용해서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걸었던 것과 같은 소송을 한국 기업들이 과연 걸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앞으로 벌어질 세계질서 개편, 
더욱 효율적이라 얘기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만든 많은 변화는 디지털화의 가속화와 재택근무가 만들어낸 일, 즉 업무방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OTT의 전면화에 따른 영화산업의 변화는 문화 소비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해 낼 것이다. 

한 가지 좋지 않은 점이라고 한다면, 팬데믹은 다양성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줄이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망하는 법인보다 새로 생겨나는 법인이 더 많았다. 당연한 것이 해고되거나 망한 많은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창업을 하게 된다. 창업할 때 많은 지식이 생겨나기 때문에, 많은 경제적 위기는 불행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다양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팬데믹은 그렇지 않다. 자영업의 위기 등 경제적 다양성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공간이라는 방식으로 보면, 코로나19는 서울 등 수도권보다는 지역경제에 더 큰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많은 지역이 관광 중심으로 지역경제의 미래를 구상했는데, 그렇잖아도 어렵던 지역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경제의 약한 고리가 강한 고리보다 고통 받는 형식으로 상황이 전개됐고, 이 흐름에 대한 반전을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렵다. 

코로나19가 격발한 인플레이션은 결국 한국의 기준금리를 밀어 올렸고, 문재인 정부 5년간 실패만 하던 부동산 가격 안정화가 순간적으로 이뤄졌다. 이 현상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기 이전에 그 파장의 크기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유를 들자면 문재인 정부 5년간 쏟아부은 정책이나, 새롭게 등장한 윤석열 정부가 지난 몇 달 동안 했던 부동산 정책의 총합보다 코로나19가 격발한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의 효과가 현실적으로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미국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 인상이 코로나19로부터 격발된 변화이기는 하나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펼쳐질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상대적으로는 단기적이고, 경제학에서 익숙한 방식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다룬 교과서들을 보면 많은 것을 과거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렇지만 WTO 경제질서를 깨트리고 등장하는 미국 중심의 산업정책은 그 전개 과정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멀리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짧게 보면 WTO 출범 이후는 세계화의 보편적 룰이 강화되는 역사와 같다. 그 반대의 경우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이대로 WTO가 무력화된 상태로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더 약화될 것인가? 그렇다면 다른 강대국에서도 자국 중심으로 산업 세제 등 많은 것을 재편할 것인가? 그렇게 등장하는 세계질서는? 

기존 질서의 관점으로 보면 코로나19는 확실히 파괴적이고, 아직 새로운 질서는 오지 않은 상황이다. 모든 변화는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언젠가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물론 시스템도 이렇게 변한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은 배터리 등 관련된 많은 공장을 미국 현지로 옮기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훼손된 WTO 중심의 국제무역 질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균형을 찾아가게 될 것인가?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질서가 더 창조적인 것일까? 이미 형성돼 있는 많은 가치사슬이 깨지거나 파괴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를 통해서 형성되는 새로운 질서가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런데 지금부터 벌어질 이 질서 개편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아직은 그것이 더 창조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젠가 완화되고, 우리는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를 움직이는 혈관·핏줄과 같은 돈과 금융 그리고 이자율에 미친 코로나19의 영향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모습을 얼핏얼핏 보여주기 시작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지난 수년간 이자율 상승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도 이제는 이 변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 서 있고, 원하든 원치 않든, 그 길을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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