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상징하는 동물’ 하면 대부분은 북극곰을 떠올릴 것이다. 기후변화 이슈가 많은 사람에게 문제로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에 북극곰을 소재로 미국, 캐나다, 유럽 사람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자료들이 전 세계에 널리 퍼져나갔다. 이 다큐멘터리는 얼음이 녹고 있어서 살 곳이 없어진 북극곰들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나라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북극곰을 지켜주기 위해서 에너지를 아끼자” 같은 말들이 널리 퍼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기후변화 문제를 겪는 생물이 정말 없을까?
나는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그 밖의 감성적인 이유로 북극곰을 보호하자는 주장에 잘못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우리가 기후변화 문제를 떠올리면서 북극곰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지 의아해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북극곰이 친숙한 동물인가? 한국에는 북극곰이 살고 있지도 않고, 역사 속에서 북극곰이 등장해 우리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긴 적도 없다. 그런데 왜 하필 북극곰일까? 한국은 아직 별달리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생물이 없기 때문에 저 멀리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동물에 대해서라도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한반도의 생물들과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도 결코 여유로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북극곰 이야기 못지않게 우리가 털진드기와 참진드기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어떤 사람이 등산을 떠났다. 이 사람에게는 자주 오르던 자기 소유의 친숙한 산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범한 등산로 말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산을 오를 계획을 세웠다. 그는 험한 수풀을 헤치며 산길을 올랐다.
중간에 우연히 나무와 수풀이 비교적 적은 특이한 자리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쉬고 놀며 머물렀다. 그런데 떠나려고 보니 그가 쉬던 자리는 사실 이름 없는 무덤이 있던 자리였다. 돌보는 사람 없이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버려져 있어서 그 주변을 잡초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래서 금방 눈에 띄지 않은 것이다. 무덤 자리를 깔고 앉아서 쉬고 놀았다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도 들고 찝찝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무슨 문제야 있겠는가 싶어서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등산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왔다.
얼마간은 별일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이 사람은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몸에 열이 많이 나고, 갑자기 구역질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혹시 감기몸살인가 하고 감기약을 먹어보지만 별 차도는 없다. 독감인가 싶어 병원에 가서 살펴봐도 아니라고 하고, 뾰족한 수가 없다. 나중에는 열이 너무 심해져서 정신마저 이상해진다. 나는 이 증세를 겪는 사람이 뇌 기능 불안으로 갑자기 이상한 환상에 빠지게 돼 옆 사람을 공격하려고 했다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큰 병원으로 옮겨 간 이 사람은 온몸을 샅샅이 조사받게 된다. 그런데 몸 구석진 곳,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무엇인가 동그랗고 작은 상처 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은 아물어 있는 상태지만 꼭 무슨 짐승이 송곳니를 박아 넣어 피를 빨아먹은 것처럼 보이는 자국이다. 자국이 하나밖에 없기는 하지만 만약 그런 자국이 둘씩 나란히 있다면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흡혈귀의 이빨 자국과 똑같은 모양이다.
이제 별별 이상한 상상을 다 하기 시작한다. 혹시 그 버려진 무덤의 혼령이 흡혈귀로 변한 것일까? 안 그래도 무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한이 맺혀 있을 텐데, 마침 이 사람이 무덤 위에 올라가 놀기까지 했으니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해서 혼령이 화가 나 흡혈귀로 변신한 것 아닐까? 그래서 이 사람이 내려올 때 몰래 산을 따라 내려와서 밤에 그를 문 것이라면? 나중에는 자신이 흡혈귀처럼 변해 옆 사람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한국에 과연 흡혈귀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문병하러 온 사람 중에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 “산에서 주인 없는 무덤 잘못 건드렸다가 갑자기 귀신에 씌어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어봤다. 지금이라도 그 혼령을 달래주기 위해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해야 한다.”
실제로 이 비슷한 일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실제로 산의 버려진 무덤에서 흡혈귀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현상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의 산이나 들판에서 사는 동물 중에 진드기라는 아주 작은 벌레가 있다. 넓게 보면 거미와 가까운 종류다. 그중 털진드기는 애벌레 시절에 수풀에서 살고 있다가 그 근처에 사람이나 동물이 오면 살갗이나 가죽을 문다. 털진드기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발견하고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털진드기 애벌레는 사람을 물면서 피를 빨기 시작한다. 이런 습성은 과연 영화에서 보던 흡혈귀 같긴 하다.
더운 날이 늘어나는 우리나라 기후,
털진드기의 생존과 번식에 영향 미쳐
털진드기 애벌레는 모기처럼 긴 바늘 모양의 입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개발했다. 털진드기 애벌레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 입에서 사람 살을 녹이는 물질을 뿜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아주 작은 벌레에게 공격당하는 것이지만, 물리면 그 근처의 살이 같이 녹는다. 그래서 제법 큰 송곳니 자국만 한 상처가 생긴다. 털진드기 애벌레의 살 녹이는 물질은 성능이 뛰어나 아프다는 느낌도 없다. 대부분은 자기 몸에 물린 자국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런 벌레에 물렸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오다가다 벌레에게 물리는 일은 자주 겪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털진드기 애벌레 중 일부는 ‘쯔쯔가무시균’이라고 하는 일종의 세균을 자기 몸에 품고 있다. 평범한 털진드기 애벌레가 아닌 이런 것에게 물리게 되면 쯔쯔가무시균이 사람 몸에 건너올 수 있고, 만약 그 세균이 몸에서 퍼지면 그 사람은 ‘쯔쯔가무시증’이라는 병을 앓게 된다.
쯔쯔가무시증에 걸리면 열이 나고 구역감이 일면서 아주 괴로워진다. 흡혈귀는 아니다. 피를 빠는 벌레에게 공격당해서 걸릴 수 있는 심각한 병이다. 이 세균에 감염되면 톡톡히 고생하게 된다. “가을철에 벌초나 성묘하러 갔을 때 수풀에 그냥 앉지 말고 조심하라. 잘못하면 쯔쯔가무시증에 걸린다.”라는 이야기를 뉴스나 홍보영상에서 한 번쯤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쯔쯔가무시증 전문가 중 일부는 기후변화가 쯔쯔가무시증을 더 심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한국은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줄어드는 추세다. 그렇다면 따뜻한 날씨를 이용해서 쯔쯔가무시증을 옮기는 털진드기는 더 활발히 더 오랫동안 더 멀리까지 퍼지면서 활동할 수 있다. 털진드기가 알을 낳고 충분히 후세를 번식할 만한 기간 동안 따뜻하게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털진드기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참진드기가 옮기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Severe fever with thrombocytopenia syndrome)’이라는 바이러스성 질병도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쯔쯔가무시증은 병원에서 진단만 제대로 되면 치료가 어렵지 않지만 새로 등장한 이 SFTS는 훨씬 치료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살인진드기’라는 별명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쯔쯔가무시증 같은 희귀하고 이상한 병이 뭐가 그렇게 큰 문제냐”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는 인식 속에 나는 기후변화 문제의 핵심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기후변화 문제는 지구 종말이나 인류의 멸종 같은 형태보다는 사회의 약자, 사회적 취약계층을 먼저 괴롭히는 형태로 나타난다. 도시 중산층이야 쯔쯔가무시증을 접할 위험이 거의 없을 것이고 쯔쯔가무시증 같은 증상을 겪는다고 해도 금방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산골 마을이나 수풀이 많은 곳에서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 농촌 주민에게는 이런 병이 큰 위협이 된다. 2021년에 확인된 한국의 쯔쯔가무시증 발생건수는 무려 5천 건이 넘는다. 산길과 들판을 오가며 일해야 하는 시골의 노약자 계층이 주로 시달리는 병이다 보니 도시에 사는 많은 이들이 그 심각함을 충분히 느끼지 못할 뿐이다.
급격한 생태계 변화로 사회적 약자가
감염병에 노출될 일 더 많아질 것
쯔쯔가무시증은 한국과 우리 주변 국가들에서만 발생한다.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에는 쯔쯔가무시증 발병 사례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나라들은 쯔쯔가무시증으로 다큐멘터리나 홍보영상을 만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당연히 자기 나라에 있는 북극곰 이야기를 가지고 기후변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진드기보다 북극곰을 먼저 생각하는 지금 이 상황을 보면 어쩌면 기후변화를 먼 나라의 문제로 여기는 시각이 아직까지 주류이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5천 명 정도의 취약계층이 감염병에 노출돼 희생되고 있고 그게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기후변화 대응을 당면한 현실이 아니라 그저 막연히 지구를 위해 뭔가 좋은 일, 고상한 일을 한다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위험하다.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같은 병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사라졌지만 한국에서는 매년 수백 명 단위로 환자가 발생한다.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고 습한 날씨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 말라리아나 일본뇌염 같은 감염병 사례가 급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향후 다양한 경로로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사회적 약자가 감염병에 노출될 위험도 더 많아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잊지 않고 기후변화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