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물류업계의 트렌드이자 키워드인 풀필먼트(fulfillment)는 ‘이커머스 물류’라고 해석해도 의미가 통한다. 물류센터 상품 입고부터 택배 등 라스트마일 물류업체 출고까지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물류프로세스 효율화에 매진하고, 비용 절감을 통한 원가 경쟁력 증대와 출고량으로 대표되는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최근의 풀필먼트는 물류를 넘어선 서비스를 아우르고 있다. 물류업이 제공하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본질적 가치는 이종서비스가 결합되며 부수적인 것이 됐다. 국내 이커머스시장 투 톱인 쿠팡과 네이버가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쿠팡은 2020년 풀필먼트서비스 ‘로켓제휴(현재 로켓그로스)’를 시작했다. 그간 쿠팡이 매입해 직접 유통하는 자사 상품을 처리하는 데만 활용했던 물류망과 시스템을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한 제3자 판매자에게까지 개방했다. 제3자 판매자는 로켓그로스에 입점해 쿠팡의 물류를 빌려 쓰고 수수료를 지불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쿠팡의 풀필먼트도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여타 물류업체의 그것과 동일해 보인다. 하지만 쿠팡이 풀필먼트에서 강조하는 지점은 ‘매출 증대’다. 쿠팡 입점 영업 담당자에 따르면 로켓그로스 입점으로 클릭 수가 일반 쿠팡 마켓플레이스 입점 대비 648% 상승하고, 매출은 평균 3배에서 많게는 12배까지 증가한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객 전방의 막강한 트래픽, 즉 충성고객으로 대표되는 로켓와우 멤버십 회원 900만 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빠른 배송과 무제한 반품에 매료돼 멤버십에 가입한 이들은 ‘로켓배송 필터’로 선별된 제품을 구매한다. 일반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한 제3자 판매자는 이 ‘필터’ 검색 결과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쿠팡의 핵심고객에 닿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판매자는 더 높은 매출 증대를 위해 로켓그로스에 입점하고 30%대의 높은 수수료와 재고에 대한 위험을 감수한다.
한편 네이버도 쿠팡의 문법을 적극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21년 풀필먼트플랫폼을 시작했지만 CJ대한통운, 두핸즈, 파스토 등과 같은 업체의 물류서비스 견적을 비교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정도에 그쳤다.
네이버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네이버쇼핑 검색 결과에 ‘내일도착’이라는 필터를 추가해 오늘 자정까지 주문하면 내일 도착이 가능한 CJ대한통운의 이커머스 물류서비스를 연결했다. 쿠팡의 로켓배송 필터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이 필터는 빠른 배송을 기대하는 소비자의 트래픽을 증대하는 역할을 한다.
이어서 네이버는 지난 12월 ‘N도착보장’이라는 솔루션을 출시했다. 단순히 검색 필터만 추가됐던 내일도착과 다르게 도착예정일까지 상품이 배송되지 않으면 네이버가 책임지고 소비자에게 일정 부분을 보상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나아가 도착보장 솔루션을 이용하는 판매자에게 수요예측 솔루션을 통해 판매량 예측 및 분석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향후 수요예측뿐만 아니라 물류데이터를 활용한 더 많은 D2C(Direct to Customer) 솔루션 라인업을 강화해 판매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쿠팡과 네이버가 만든 풀필먼트서비스는 물류를 바탕으로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풀필먼트를 강조한다. 고객 전방의 거대한 노출 권력을 갖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기에 가능한, 물류만 운영하는 물류업체는 만들기 어려운 문법이다. 게다가 네이버는 풀필먼트서비스에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공급망 최적화 솔루션을 녹여냈다. 고객 전방의 수요데이터, 나아가 물류 흐름까지 파악하는 기술 역량을 가진 업체만이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들은 물류로 돈을 벌지 않는다. 솔루션 사용에 따른 수수료로 돈을 번다.
최근의 풀필먼트는 고객 전방 노출을 활용한 마케팅과 데이터를 통해 상품 조달을 최적화하는 형태로, 물류센터를 넘어선 종합 솔루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 풀필먼트는 이커머스 물류지만 이커머스 물류가 아니다. 이는 저단가 경쟁이라는 숙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비스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해 애를 먹는 물류기업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참고할 방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