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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버블 꺼지자 반도체 수요 급감… 막대한 메모리 재고 해소에 상당 시간 걸릴 듯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023년 05월호

2020년에서 2022년까지 팬데믹 동안 인류는 전에 없는 생활의 큰 변화를 겪었다. 비대면과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IT 기술이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채택됐다. 이런 발전이 가능했던 것의 기저에는 반도체가 있었다. 이 기간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는 대부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해 주가 하락에도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3년 누적으로 37% 상승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주가가 하락한 반도체 기업들이 몇몇 눈에 띈다. 대표적인 업체들은 다름 아닌 인텔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그리고 웨스턴디지털이다. 인텔을 제외하면 이들은 메모리 업체들이고, 인텔까지 포함하면 모두 종합반도체 업체(IDM)로 구분할 수 있다. 그만큼 메모리를 포함한 기존 IDM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박한 것이다. 

시스템 쪽도 PC 수요 감소에 애플 흔들리고 TSMC도 영향

지난해 D램 수요는 전년보다 2% 감소한 234억기바이트(GB)에 그쳤다. 애널리스트 생활을 하며 비트 기준으로 D램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만큼 마이너스 빗그로스(메모리 용량을 1비트 단위로 환산해 계산한 메모리반도체 생산량 증가율)는 충격적인 변화다. 팬데믹이 불러온 버블이 꺼지자 전대미문의 IT 기기 수요 감소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PC 판매는 전년 대비 6천만 대나 줄어들었고, 스마트폰도 1억5천만 대 이상 감소했다. 기기당 D램 용량이 증가한다고 하지만 이 정도의 물량 감소는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수요는 이렇게 줄었지만 지난해 D램 생산은 282억GB로 오히려 21%나 증가했다. 팬데믹 초기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차질 사태는 메모리 업체들의 매우 성실한(?) 투자와 생산성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수요 부진으로 출하는 4% 증가한 252억GB에 그쳤다. 결국 생산과 출하의 차이인 약 30억GB는 D램 칩 업체들의 재고로, 출하와 수요의 차이인 약 18억GB는 유통채널과 세트(완성품) 업체 재고로 고스란히 쌓였다. 

이 같은 막대한 재고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근본적으로 메모리 생산성이 이미 수요를 훨씬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산을 하지 않으면 재고가 줄어들 가능성은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그것도 굉장히 큰 폭의 감산이 필요해 보인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최근 실적발표에서 20%였던 감산 규모를 25%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수요가 생각보다 더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감산을 공식화한 SK하이닉스와 키오시아에 이어 삼성전자도 마침내 보도자료를 통해 ‘의미 있는 정도’의 감산을 공식화했다. 기존의 무감산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삼성이 언급한 의미 있는 수준이 얼마만큼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30년간 메모리시장의 절대 지존을 지키고 있는 삼성의 공식적인 감산은 최소한 현재가 하강 국면의 바닥에 근접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여전히 불확실한 변수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올해 D램 수요는 약 251억GB로 한 자릿수 중후반 정도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업체들이 합계 최대 월 30만 장가량 웨이퍼 생산을 줄인다고 가정하면, 비트 생산량은 전년 대비 11% 감소한 250억GB 수준이 될 전망이다. 즉 월 최대 30만 장의 감산이 이뤄져도 생산량이 수요를 아주 크게 밑돌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면 결국 재고가 정상 수준 이하로 떨어지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과거 저점을 통과한 메모리 사이클은 V자 반등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반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만큼 재고가 너무 많다. 1분기 D램 판매가는 20% 이상 하락했고, 2분기에도 10%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하반기 가격이 분기 10%씩 반등한다 하더라도 올해 연평균 D램 판매가는 지난해 대비 40%대 중반 이상 하락한다. 따라서 2023년 D램시장 규모는 지난해 대비 40% 이상 줄어든 430억 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낸드플래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요는 부진하고 생산성은 이를 훨씬 웃돌고 있어 재고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줄어들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기준 낸드시장 규모는 지난해 471억 달러에서 올해는 30%대 중반 감소한 310억 달러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시장의 급격한 위축은 메모리 업체들의 대규모 적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관련 투자도 감소하게 될 전망이다. 

메모리와 달리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전례 없는 호황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과 애플 걱정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서서히 애플 걱정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가 발표한 1분기 PC 출하 자료에 따르면 맥북 판매가 1년 전에 비해 40% 넘게 감소했다. 너도나도 애플 노트북을 사려 했던 열풍이 확실히 잦아들고 있는 것이다. 애플이 흔들리자 파운드리의 절대 강자 TSMC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TSMC의 3월 매출액은 1월 대비 30% 급감하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로 전환했다. TSMC의 매출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은 무려 46개월 만의 일이다. 대만 매출 1위 기업인 폭스콘의 3월 매출액도 1월 대비 40%나 쪼그라들었다. 

팬데믹이 몰고 왔던 유동성의 썰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각국의 반도체 생산 강화 노력에도 올해 글로벌 반도체시장 규모는 5,200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9%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한국, 완제품 기준 반도체시장 2위지만 
파운드리·소부장 포함한 경쟁력은 중국·일본과 큰 차이 없어 


하지만 반도체의 응용처가 다양해지면서 반도체 설계의 축이 기존 반도체 업체에서 IT 세트나 서비스 업체로 이동해 가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메모리나 CPU 등 기존 범용 반도체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은 구조적인 변화다. 그렇다면 한국 반도체산업이 나아갈 길도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인다. 메모리 분야에서 더 잘한다거나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인다거나 하는 것이 투자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요인이 되기는 힘들다. 

완제품 기준으로 한국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를 넘어 미국에 이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완제품 통계에는 파운드리나 소재·부품·장비 등 기타 공급망이 빠져 있어 실질적인 경쟁력을 나타낸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미국, 대만, 일본, 중국, 유럽의 반도체 관련 상장사 매출 합계를 비교해 보니, 한국은 미국(37%), 대만(24%)에 이은 3위(13%)로 순위가 한 단계 내려갈 뿐 아니라 중국(11%), 일본(9%)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완제품 기준 시장 점유율은 우리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종합적인 반도체 경쟁력은 우리가 자부해 왔던 것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앞으로 한국 반도체가 더욱 강화해야 하는 쪽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시스템반도체 분야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IT서비스는 미국의 빅테크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둘 다 잘하면 좋겠지만, 결국 한국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칩 설계보다는 파운드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반도체는 이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이외에도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연결해 주는 디자인하우스 그리고 후공정서비스에 이르는 종합적 생태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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