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법’)은 사업자의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법 제29조 제1항). 여기서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라 함은 “사업자가 상품 또는 용역을 거래함에 있어서 거래상대방인 사업자 또는 그 다음 거래단계별 사업자에 대하여 거래가격을 정하여 그 가격대로 판매 또는 제공할 것을 강제하거나 이를 위하여 규약 기타 구속조건을 붙여 거래하는 행위”(법 제2조 제6호)를 말한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원칙적으로 금지
사업자에는 제조업자나 유통업자가 모두 포함된다. 거래가격을 정하는 방법으로는 최고가격, 최저가격, 지정가격제, 가격의 범위, 이윤율, 마진율을 정하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 또한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는 사업자가 직접 거래상대방뿐만 아니라 유통과정에 있는 다른 유통업자에 대해 하는 것도 금지된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해 거래가격을 지킬 것을 강제하거나 구속조건을 붙이는 등 상대방의 자유로운 가격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업자가 단순히 거래상대방에게 가격표를 주거나 권장소비자가격· 희망판매가격을 표시하는 것만으로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되지 않는다.
단지 참고가격 내지 희망가격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에 그치는 정도인 경우에는 이를 위법하다고 할 수 없으나, 재판매사업자로 하여금 지시· 통지에 따르도록 하는 것에 대하여 현실로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부수되어 있다면 위법이 된다.
이러한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는 당해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크기와 상관없이 금지되며, 원칙적으로 정당한 이유 유무를 불문하고 금지되고 있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에는 세 가지 예외가 있다.
첫째, 상품이나 용역을 일정한 가격 이상으로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고가격 유지행위로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최고가격 유지행위는 통상 소비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는 것이다.
둘째,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고시하는 출판된 저작물로서, 실용도서를 제외한 모든 간행물(단, 발행일로부터 1년이 경과된 간행물은 제외)과 일간신문은 예외를 적용받는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특별히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데, 예외인정기간이 2006년 12월 말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셋째, 일정한 요건을 갖춘 상품으로서 사업자가 공정위에 신청하여 당해 상품에 대하여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지정을 받은 경우이다. 공정위는 소비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여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호에서는 프린터 소모품 판매업을 영위하는 사업자가 하위유통업체에게 재판매가격을 유지하도록 하여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린 사례를 소개한다.
사건 개요
시장구조 및 실태
프린터 소모품은 주로 총판 → 대형 유통도매점 → 소매상 또는 소비자 → 소비자의 형태로 유통된다. 피심인은 총판의 하위유통점 중 일부에게 판매실적 등에 따라 분기별로 리베이트(rebate)를 지급하고 있다. 하위유통업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총판의 하위유통점 중 일부업체를 업체의 성격에 따라 PIC(Premier Imaging Club, 유통도매상), 문구클럽 업체 등으로 선정하고 리베이트를 지급하고 있으며, 총판을 통해 PIC 업체의 판매실적을 제공받고 총판을 통해 PIC 업체 등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하고 있다.
프린터 소모품은 주로 프린터에 사용되는 잉크· 토너· 리본· 용지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잉크 및 토너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프린터 소모품 중 잉크· 토너· 리본을 카트리지(Cartridge)라고 한다. 참고로 국내에서 2002년도에 판매된 카트리지 개수는 약 1,200만개(리필 및 대체품 제외)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자들의 프린터 사용기간을 4년으로 가정하고, 1년에 2.6개의 흑백잉크와 1.3개의 컬러잉크를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잉크카트리지 가격은 중간기종 프린터(12만원선) 대비 대략 50% 수준에 해당되며, 1대의 중저가형 프린터 사용 중에 잉크카트리지 교체비용은 프린터 구매비용의 대략 2~5배에 해당된다.
2002년 기준 세계 프린터시장은 240억달러 규모로, 이 중 잉크젯프린터가 물량 기준으로 약 79%(금액기준 약 32%)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프린터 시장규모는 약 5,786억원 규모로서, 이 중 잉크젯프린터가 물량 기준으로 약 82.5%(금액기준 약 45.6%)를 차지하고 있다.
행위사실
피심인은 프린터 소모품 판매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로서 법 제2조 제1호의 규정에 의한 사업자에 해당된다.
피심인 영업담당자 오· · 의 진술서, 2003년 5월 16일에 작성된 피심인의 내부문건인 · · 자료, 2002년 10월 15일 피심인이 각 총판에게 보낸 판매가격 통보문서 등에 의하면, 피심인은 2000년 12월경부터 2003년 5월경까지 총판 및 PIC 업체에게 판매가격(총판이 PIC 업체에게 판매하는 가격, 총판 및 PIC 업체가 소매상에게 판매하는 가격 등)을 정해 준 사실이 있다.
위 ‘· · 자료’에 의하면, ‘총판의 출하가(100) → 도매상의 출하가(105)→ 소매상의 판매가(116)’로 유통단계별 가격을 설정한 사실이 있으며, 2002년 10월 15일 피심인이 각 총판에게 보낸 판매가격 통보문서에 의하면, 피심인이 유통단계별 프린터 소모품 가격을 정해 준 사실이 있다.
또한 피심인의 총판인 · · 컴퓨터시스템, · · 컴텍 등의 하위유통단계에 대한 가격표를 보면 주요 제품별 가격이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 · 자료’에 의하면, 피심인은 2003년 5월 16일 총판 및 PIC 업체가 참석한 회의에서 총판 및 PIC 업체에게 자신이 정해준 가격대로 판매하지 않을 경우 다음과 같은 제재방침을 통보하는 등 가격준수를 강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 총판이 PIC 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에 대해 PIC 업체에 대한 출하가로 출하할 경우, 1차 적발시에는 해당품목의 출하를 정지하고 리베이트 50%를 감액하며, 2차 적발시에는 잉크 품목의 출하를 정지하고 리베이트를 전액 감액한다.
둘째, 총판의 가격덤핑의 경우, 1회 적발시에는 리베이트를 20% 감액하고, 2회 적발시에는 모든 리베이트 40% 감액하며, 3회 적발시에는 모든 리베이트 지급을 정지하는 한편 거래관계 여부를 검토한다. PIC 업체 가격덤핑의 경우, 1회 적발시에는 모든 리베이트 지급을 취소하고 해당시점으로부터 1개월간 출하를 정지하며, 2회 적발시에는 모든 리베이트 지급을 취소하고 해당시점으로부터 2개월간 출하를 정지(해당 총판의 분기 리베이트 10% 감액)하며, 3회 적발시에는 PIC 자격을 박탈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치내용 및 의의
피심인의 총판 및 PIC 업체들은 피심인과 별개의 독립된 사업자로서 제품의 판매가격을 당해 시장에서 자신의 영업전략과 영업능력 등을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심인은 총판 및 PIC 업체에게 판매가격을 정해주고 이를 위반할 경우 리베이트 감액· 지급정지, PIC 자격박탈 등의 불이익을 부여하는 행위를 하였다.
이는 총판 및 PIC 업체 간 가격경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결과적으로 총판 및 PIC 업체 간 판매가격이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유지되도록 강제한 행위인 재판매가격 유지행위에 해당된다 하겠다.
이에 공정위는 피심인에게 재판매가격을 유지하는 행위를 앞으로 다시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시정명령을 하고, 시정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1개 중앙일간지(전판)에 3단10㎝의 크기로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에 공정위가 정한 문안대로 1회 게재함으로써 공표하도록 명령하였다.
또한 시정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을 공정위가 정한 문안대로 총판과 PIC 업체에게 서면으로 통지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와 같이 재판매가격 유지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①재판매하는 사업자에게 거래단계별 가격을 미리 정해 주고 ②그 가격대로 판매할 것을 강제 또는 구속하여야 한다. 이 사건에서 피심인은 대체로 유통단계별 판매가격을 지정하여 준 사실은 스스로 인정하였다. 다만, 강제 또는 구속하였는지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피심인은, ‘· · 자료’는 영업부에서 과욕을 부려 만든 자료이지 회사의 규정이나 방침은 아니고, 당시 회의참석자의 진술을 보더라도 여러 가지 제재방침은 단순한 희망사항으로 받아들였을 뿐이고,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전혀 믿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정위는, 물리적인 강제나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피심인의 그러한 제재방침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여 사실상의 강제성을 인정하였다. 직접적이고 실현된 불이익 제공이 없더라도 제재방침을 공개적· 구체적·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밝히는 것만으로도 강제성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