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방송되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음식 다큐멘터리를 집필하고 있다. 2011년 1월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니 만 2년째다. 그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만난 이들 대부분은 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생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한국인의 밥상>이 한 지역의 고유한 음식문화를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지역토박이들을 찾아내 그들의 밥상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매주 하는 걱정은 그 지역에 과연 ‘한국인의 음식’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진은 이미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 식당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취재를 다니면서 인터넷이나 책에 나오지 않은 숨은 옛 음식이 우리나라에 무척 많다는 것에 매번 놀란다. 게다가 그 음식문화가 숨 가쁘게 변하는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곤 한다. 덕분에 <한국인의 밥상>은 100회를 이어오면서 시청률과 방송평가에서 모두 상위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면 생소한 음식의 발견 그 너머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과 맞닿게 된다. 바로 우리가 추적한 음식이 사실은 거대한 역사를 집약하고 있는 상징적인 지표라는 것이다. 지역토박이들이 말하는 개인의 역사와 밥상의 역사는 한국의 근현대사이며 더 멀게는 고대사와도 연결돼 있었다.
통영의 섬세하고 화려한 음식문화는 임진왜란과 이순신의 수군통제사에서 유래된 것이었고, 인천의 밥상은 개항의 역사였으며, 경남 창녕의 세계적인 습지인 우포에서 이마배(쪽배)로 붕어를 잡는 어부의 밥상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배에서 시작됐다. 거대한 역사를 한 그릇의 음식 속에서 발견할 때마다 난 우리 민족이 가진 지혜와 현명함, 인내와 역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타깝게도 우리가 지난날 잘못 내렸던 어떤 결정에 의해 생긴 깊은 상흔 역시 발견하게 된다. 서해안 낙지를 취재하면서 영산강 하구둑 공사로 어마어마한 갯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립된 갯벌은 논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갯벌이 매립되면서 논이 만들어진 시기와 쌀 소비량이 줄어든 시기가 묘하게 일치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서해안 갯벌낙지 여섯 마리는 쌀 20킬로그램보다 비싸다. 우리가 먹는 낙지의 90%는 중국에서 들어온다.
이 땅 곳곳에서 경제개발의 기치 아래 이뤄진 거대한 국책사업들은 실제 우리의 밥상을 윤택하게 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인의 밥상을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 정부가 우선시하는 가치는 10년, 20년 아니 100년 후의 대한민국에게도 우선시될 수 있는 가치인가. 그리고 그것은 한 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지역민들 개개인의 역사를 존중한 선택인가. 새롭게 출발하는 정부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신중하면서도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대통령 임기 5년만을 내다보는 근시안적 판단은 이 땅의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하고 우리 선조의 지혜가 담긴 음식문화유산을 소리 없이 종식시킬 것이다.
우리에게는 불고기와 비빔밥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어마어마한 음식문화의 일각일 뿐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정부는 세계 여러 나라들과 비교해 우리가 가진 자연유산ㆍ문화유산의 비교우위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고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장기적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그러한 비전 속에서 새롭게 강화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