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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더 이상 키워드가 되지 않는 나라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정신과학교실 교수 2013년 01월호

2012년 대한민국의 주제어는 ‘힐링’이었다.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이 스님이나 교수가 쓴 힐링서적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방황해도 괜찮아」와 같은 책들이 인기였다. 백 만권도 넘게 팔린 책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아 일부 독서가들만의 애호는 아니었다. 하물며 인기 예능프로그램의 타이틀도 ‘힐링캠프’. 여기저기 돌아보면 힐링스파도 있고, 힐링여행도 있다. ‘힐링’이란 단어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빠른 시간에 익숙해진 단어가 또 있을까?


힐링(healing)은 치료(treatment)와는 다른 의미다. 상처가 저절로 아물어 원래 자기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자연적 치유과정과 극심하던 고통이 서서히 줄면서 평안해지는 느낌이 함께 포함돼 있다.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빨리 실로 꿰매서 봉합을 하고 고름을 긁어내는 것이 치료라면, 힐링은 상처를 닦고 그 위에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 상처를 가리고 고통이 줄어들면서 염증이 가라앉기를 바라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바라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5년 전에는 ‘소통’이 대세였다.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답답함이 투사됐던 것이다. 그에 반해 힐링은 그 내면에 아픔과 상처가 존재하고 게다가 꽤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어디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 찾아내는 것보다 그 아픔이 줄어들기를 절실히 바라는 요구가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힐링이라는 단어를 통해 웅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우리 사회는 지금 아프다. 그것도 많이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청춘만 아픈 게 아니라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다들 많이 아프다. 드라마 ‘다모’에서 종사관은 채옥의 상처를 만지며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런 공감의 표시다. 힐링이 가장 시급한 곳부터 아픔을 인정하고, 그것을 그 사람의 개인적 모자람이나 게으름 때문으로 돌리기보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총체적 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증은 주관적이고 비교의 대상이다. 학교에서 단체로 기합을 받을 때에는 꽤 힘들어도 견딜 만하지만, 나만 불려나가 혼이 난다고 여기면 그 아픔이 더 크고 오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회적 격차가 커지고, 불평등을 주변의 남들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게 될수록 고통은 더욱 커지고 힐링은 멀어진다.


힐링이 더 이상 키워드가 될 필요가 없는 나라, 누구도 책이나 TV를 통해 힐링을 갈구하고 소비하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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