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본의 아니게 익숙했던 자리를 떠난 사람들이 참 많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해야 할 교수들이 정부 비판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절에서 수양하고 중생을 계도할 스님들조차 정치 시위에 참여했다. 박원순 변호사, 안철수 교수 같은 이들도 낯설고 불편한 정치로 내몰렸다. 대중에게 웃음을 주고 연기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줘야 할 연예인들 역시 거리에 나섰다.
IMF 외환위기의 칼바람이 지난 지 15년이 넘었지만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동일한 능력으로 동일한 시간 일해도 임금은 절반 밖에 못 받고 날마다 해고의 두려움에 살아야 하는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못하고 평생직장으로 알고 열심히 일한 대가는 갑작스러운 정리해고 통지서다. 외환위기를 맞아 일시적으로 낮춘 정년은 다시 회복될 줄 모르고 중산층에서 추락하는 가정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시인 이육사가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고 외치며 만주로 길을 떠났던 것처럼 극한에 몰린 노동자들은 집을 떠나 노숙을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크레인을 오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으로 한결 가까워졌던 북한은 다시 공존하지 못할 원수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 무르익었던 동아시아공동체 논의는 사라지고 중국과 일본은 불신과 위협의 대상으로 변했다. IT 혁명을 선도하던 한국은 이제 인터넷 검열국으로 분류됐고, 인터넷에서 가볍게 던진 농담도 법의 처벌을 받는다.
문제 아이가 있으면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 국가라는 공동체도 다르지 않다.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 국민은 지도층을 보고 배운다. 박정희와 전두환 장군이 이끄는 군부독재 시절 물리적 폭력을 앞세운 군대문화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자유, 평등, 인권, 정의, 평화는 더디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돼 왔다. 그간의 성과는 그러나 지금 위태롭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정치권과 결탁한 언론은 앞장서 정치공학자로 변신했다. 정치인은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몰두하고 대기업은 소시민의 푼돈을 노린다.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노숙자와 비정규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정년을 연장하지 말라는 데모를 한다.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그러나 유럽의 통합과 주 40시간 근무 등에서 보듯 정치와 사회는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항상 달라진다. 2012년 대선에서 공정한 사회, 경제민주화, 복지, 정치쇄신 등이 부각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세상이 공정하지 못하고, 민주주의가 위협 받고, 법과 정의가 사유화된다고 느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서 있다.
자유는 권력자의 선물이 아닌 피 흘린 투쟁의 결과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건강한 공동체의 뿌리다. 평화와 공존은 가짜가 있을 수 없다. 2013년. 정권의 향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주행을 바로 잡는 데 있다. 그래야 거리로 내몰린 모든 이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때 공동체가 번영하고 그 구성원도 행복했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