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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공공갈등, 갈등폭발의 시대 거쳐 대한민국은 지금 갈등다변화 시대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2013년 02월호

시대에 따라 갈등의 성격과 내용은 변한다. 국가와 시민의 요구가 달라지고, 국민과 시민과의 관계도 달라지고 갈등을 대하는 태도와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도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역시 1987년 민주화 이전과 이후 갈등에 대한 인식과 해법, 갈등의 주체와 이슈가 크게 달라졌고, 1987년 이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성격과 내용, 국가의 갈등관리 방식에 큰 변화를 겪어 왔다.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갈등의 양태를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987년 이전, 권위주의 시대


1987년 이전에는 온산 수온중독 사건, 광주대단지사건 등이 보여주듯 주로 국가의 일방적 행정행위에 따른 재산이나 건강상 피해를 만회하기 위한 생존권적 투쟁이 사회적 갈등의 주요 내용을 이뤘다. 갈등의 주체는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 피해주민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차원에서 주민을 지원해온 재야운동권 등이었다. 정부는 정책결정과 공공사업 추진의 유일한 의사결정자(Decision-maker)이고 국민은 정책결정의 수용자(Receptor)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국가는 갈등을 국가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인식하고, 갈등발생 자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갈등의 성격은 주로 국가사업에 따른 주민생존권적 요구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갈등은 주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해소됐다.


1987년 이후부터  IMF 외환위기 이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새만금 간척사업, 시화호 오염사건, 안면도 방폐장 유치 반대운동으로 상징되듯 이전까지 국가와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국가 주요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단체가 새롭게 등장했다. 국가 정책결정을 사이에 두고 국가와 시민사회 양자가 각축을 벌이는 이원(二元)적 구조가 형성되면서 갈등이 빈발했다. 민주화 과정 속에서도 국가는 이전까지의 일방적 행정관행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반면, 시민단체는 시민의 권리를 앞세워 정보공개와 공동참여를 주장하며 정부정책에 맞섰다. 환경, 노동, 여성 및 아동인권, 경제정의 등 시민의 사회적 권리가 갈등의 주요 이슈로 등장했고, 이념적 성향을 강하게 띠었다. 사업을 추진하는 중앙정부와 이를 저지하는 서울ㆍ수도권 시민단체(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가 갈등의 주요 이해관계자로 부상했다.


영월 동강댐 사례처럼 시민단체의 힘에 밀려 사업을 포기하거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원안대로 강행하는 극단적 선택이 나타났다. 시민단체의 경우 자신들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고, 지역주민의 사적 이해(interests)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공적 가치에 우선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천성산과 새만금 사례에서 보듯이 공공기관과 시민단체 간 갈등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대부분 법적 분쟁과 소송을 통해 종결됐다.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2008년 전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국민 다수가 생존위기에 노출되면서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이 국가를 상대로 집단적 문제해결을 요구해 노동 중심의 갈등이 빈발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권위주의적 문화가 퇴조하고 인터넷과 모바일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기도 했다. 또한 지자체가 정착 단계에 접어들고, 경제발전에 따른 삶의 질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국가 혹은 지자체를 대상으로 시민(주민)이 자신의 요구를 직접 분출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 특징은 갈등의 이해관계자 폭이 중앙정부, 지자체, 찬반 주민, 지역단체 등으로 확대되고 갈등의 성격이 가치, 이해관계, 사실관계 등으로 다변화됐다는 점이다. 또 일부 지역에서 이해관계자 간 자율적 논의와 협상을 통해 갈등이 해결되는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정치적 격동기를 맞아 지역갈등, 이념갈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국책사업 및 국가 정책에서 지자체 사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분야가 갈등에 휘말리는 ‘갈등폭발’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시민(주민)의 발언력이 신장되면서 더 이상 시민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조직을 만들고,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투쟁과정에서 공적 이익을 앞세우며 참여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시민(주민) 간에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출현하기도 했다.


이즈음 다발하는 공공갈등으로 인한 국가ㆍ사회적 손실을 저감하고, 국가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중심의 ‘선진화된 갈등관리 기법’을 도입하게 되고, 공무원을 중심으로 갈등관리 교육을 광범위하게 실시한다. 갈등의 효율적 관리를 국가의 주요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갈등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이해하고, 참여와 합의를 통한 갈등예방과 해결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을 상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은 전반적으로 미흡한 상태였다.


2008년 이후부터  현재

 

최근 우리 사회는 공공갈등이나 지역갈등, 이념갈등을 넘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세대갈등, 다양한 형태의 계급계층 갈등, 다문화 관련 갈등, 성(性) 간 갈등 등 시민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 요인 간 혹은 시민사회 내부의 집단 간 혹은 집단 내 이해관계 차이와 충돌로 인한 이른바 사회갈등(Social Conflict)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갈등규모는 작아졌으나 갈등빈도는 높아졌고, 특정한 장소가 아닌 어디나 편재한 현상이 됐으며 갈등의 성격도 이념보다 이해관계 충돌이 압도하고 있다. 사회갈등이 빈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사회ㆍ경제적, 문화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선, 권위주의 체제가 완전히 종식되고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확대됐으며 시민의 발언력이 높아졌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이 사회 구석구석 침투해 우리 삶을 규정하는 가운데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경험하고 우리 사회의 경쟁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다양한 계급과 계층으로 분화된 데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적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다양한 이해집단 간 대화와 타협,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율적 역량이 성숙되지 않았다. 정당과 의회, 정부 역시 시민사회의 문제를 공적 영역으로 수렴해 공식적 논의와 제도화를 통해 해결해내는 정치적 역량이 미흡하다.


사회갈등은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고, 참여그룹이 다양하며 책임주체가 명료하지 않고, 공간과 시간적 제약이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회 내적으로 축적된 문제해결 역량을 기반으로 자율적으로 풀지 않으면 해결이 요원하다. 선진국 사례가 말해주듯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과 함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시민사회의 자율적 문제해결 역량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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