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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고부갈등 같은 세대갈등, 지속적인 경제성장만이 해법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2013년 02월호

가끔 내가 학교에서 나이가 들어 일이 힘들다고 하면, 선배 교수님들께 꾸중을 듣곤 한다. 하지만 40대 중반인 내가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이나 집중력에 많은 차이가 있다. 피로가 쌓인 뒤 회복되는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얼마 전엔 눈이 침침해 안경을 바꾸러 갔더니 노안이 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20년 전과 비교할 때 한숨만 나올 뿐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젊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줄어든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순간 개인의 취미로 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소위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게 된다. 결국 젊어서 일할 수 있을 때 돈을 모두 쓰면 낭패를 당하게 돼 노후를 위해서 미리미리 돈을 모아 둬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젊어서 모은 돈으로 노후에 소비를 하는 것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부양하고 나중에 그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면 새로운 젊은이들이 그 나이가 든 새로운 노인들을 모시는 구조 즉, 자신보다 윗세대를 공양하고 대신 그 보답으로 자신이 나이가 들면 아랫세대로부터 공양을 받는 구조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회에 공통적으로 관찰된다고 할 수 있다.

 


저출산ㆍ고령화로 ‘중첩세대 모형’ 붕괴될 위기 초래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모형으로 만들어 ‘중첩세대 모형(overlapping generation model)’이라고 부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중첩세대 모형의 특징은 자신이 도움을 주는 사람과 자신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활동에서는 내가 영수라는 사람을 도우면 나중에 영수가 내게 보답을 한다. 하지만 내가 도움을 주는 대상이 더 이상 생산활동을 할 수 없는 사회의 노년층이라면,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모두 사라져버릴 노년층들에게 도움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연금이 좋은 예다. 지금 나는 열심히 연금을 내고 있는데, 이 돈은 현재 내 부모의 세대분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그럼 내가 나이 들어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내게 줄 연금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면, 내가 도와준 적이 없는 나의 자녀세대 사람들이 될 것이다. 결국 내가 현재와 미래에 전혀 생산활동을 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연금을 드리는 것은 장래에 그분들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내게 연금을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 가장 많이 지출될 수밖에 없는 의료보험도 같은 원리로 작동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중첩세대 모형에 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현재 연금이나 의료보험을 내는 한국의 청장년층들이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한국사회의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가는데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으니, 미래에 자신들이 나이 들어 도움을 받을 때가 됐을 때 노인은 많고 젊은이는 적어 연금이나 의료보험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점차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새로운 갈등구조로 떠오른 것이 바로 세대 간의 갈등이다. 오랜 세월 동안 지역에 따른 갈등이 있어왔고 아직도 존재하지만,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문제는 개인들의 경제활동에 있어서 지역 갈등보다 훨씬 심각하다. 따라서 앞으로는 세대 간 갈등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언급한 연금과 의료보험 문제뿐 아니라 청년실업 문제도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사회 전체의 실업이 아니라 청년실업이 문제라는 주장 속에는 윗세대가 오래 근무하거나 퇴직 후에도 재취업을 해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드는 청년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복지의 확대를 주장하는 젊은 세대와 지나친 복지의 확대에 조심스러워 하는 윗세대의 심정도 적정한 복지수준을 유지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연금과 의료비 지원을 받으려는 윗세대에 비해 아무리 아껴 쓰더라도 자신들이 혜택을 받게 될 50년 후에는 희망이 없으니 차라리 가능할 때 빨리 복지를 누리는 것이 좋다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지 모른다.


의료복지 확대 신중히… 고령화에 따른 부담 감수해야


이런 갈등은 근본적으로 고부간의 갈등과 유사하다. 과거에 엄청 고생을 하며 어른들을 모셨던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가 눈에 차기 어려운 반면, 며느리로서는 너무 많은 요구를 하는 시어머니가 고울 리가 없다. 결국 둘이 양보하고 참아야 하는 것이 고부관계이듯 한국사회의 세대 간 갈등도 다른 방법이 없다. 연금수령 개시연령은 늘리고 혜택은 줄일 수밖에 없다. 의료 부문의 복지 혜택을 늘리는 정책은 정말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윗세대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젊어서 일하면서 윗세대를 부양한 것과 동일한 보답을 아랫세대로부터 받지 못하더라도 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유지할 수 있어야 사회의 근간이 되는 중첩세대 구조가 존속할 수 있다. 만일 현재의 유럽 일부 국가들처럼 정부재정 파탄이 발생해 더 이상 중첩세대 모형에 의거한 일생의 설계가 불가능해지면 한국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젊은 세대 역시 늘어나는 부담을 짊어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윗세대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 경제를 일으켜 세운 분들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부담이 좀 과하다는 생각을 감사의 마음으로 변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고령화에 따른 고통분담의 각오를 새로이 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생산성 증대를 추구하고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노력을 오히려 더욱 높여야 할 때다. 너무 여러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바로 사회갈등의 해소는 경제성장이 유일무이한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것이다.


낮은 출생율과 고령화가 존재하는 한 세대 간의 갈등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속적인 경제의 성장이다. 즉 생산인구가 줄어들더라도 생산성이 높아지면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성장의 화두는 대한민국이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영원한 과제라는 점을 국민들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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