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외부적으로 정치ㆍ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내부적으로 소득격차가 심화돼 사회갈등이 증폭되는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물론 사회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표면화하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제도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가에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의 사회통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연구결과는 계층갈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계층갈등이 심각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회갈등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까닭도 있다. 2012년 사회통합위원회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들은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사회갈등을 계층갈등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하다는 응답은 2011년 75.7%에서 2012년 82.2%로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내용에 있다. 계층갈등이 매우 심각하다는 답변이 22.3%에서 36.5%로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계층갈등이 더욱 심화됐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국민 인식 “계층갈등, 매우 심각” 확산돼
계층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다양한 원인이 언급될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소득격차가 계층갈등을 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비정규직 문제와 자산격차 문제 그리고 소비영역에서의 상대적 박탈감 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소득분배 구조의 추이를 보면 왜 계층갈등이 심화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니계수, 상ㆍ하위 소득계층 간 소득격차, 빈곤율 등 거의 모든 분배지표가 악화돼 2011년 현재 매우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중에서도 상ㆍ하위 20% 소득계층 간 소득배율은 2006년 5.38배에서 2011년 5.73배로 증가했다. 단기간의 등락이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들이 느끼는 계층갈등의 심각성이 일정 정도 현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소득격차가 반드시 계층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소득격차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수준인지에 있다. 즉, 노력과 성과를 반영한 정당한 격차인지, 차별과 배제를 통한 부당한 격차인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만일 지금의 소득격차가 사회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계층갈등을 유발할 개연성이 높다. 열심히 일해도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힘든 근로빈곤층,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인ㆍ장애인 등 취약계층, 중산층마저 감당하기 힘든 주거비와 교육비 그리고 의료비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몇 가지 단면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소득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 국민들이 수용하기 힘든 수위에 이르렀으며, 사회적으로 정당화하기도 힘든 상황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계층갈등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원인은 정치권과 사회지도층 그리고 법 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지도층에게 허용되는 권한과 격차란 그 행위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공기관 및 법 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사회 개혁을 위한 정책논의가 사회갈등을 야기하고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1988년 탈옥수 지강헌이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두 단어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이토록 폭넓게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계층갈등을 조장하는 또 다른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패자부활 가능해야 계층갈등 완화될 것
이 점에서 보면, 계층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고용과 복지, 교육과 의료 등 국민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기관 및 사회지도층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정치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여기서는 향후 계층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차기 정부가 강조하는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정책은 바람직한 정책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계층갈등을 완화하고 사회통합을 제고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중산층을 두텁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고용창출 그리고 기술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계층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임금격차 또는 근로소득 격차를 해소하고, 교육ㆍ주거ㆍ의료 등 필수재에 대한 과도한 가계부담을 덜어주고, 빈곤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들은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패자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경제사회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계층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패자부활이 힘든 사회는 계층갈등이 더욱 첨예화된 형태로 표출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외환위기 직후의 ‘금모으기 운동’은 우리의 사회통합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회갈등이 누적된 복합적 갈등국면에 들어서 있다. 반면에 외부의 정치경제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통합의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산적한 경제사회적 개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민대통합이 절실한 것이다. 사회통합은 선언과 구호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지행해야 할 공동체로서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합리적 정책대안을 모색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