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한국사회는 전통적 계급과 계층, 지역, 성별, 세대, 이념뿐만 아니라 인종 및 종족, 연령, 종교 등에 의해서 더욱 분화되고 사회집단 간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는 초다원사회(hyper-pluralistic society)로 변모하고 있다. 지극히 동질적이었던 한국사회의 문화다양성 증대, 고도의 사회분화는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특히 혈통민족주의가 여전히 지배적인 상황에서 외국인들과 그 후손들이 증가하는 것은 자칫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인종 및 종족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급속한 다문화사회 전환…후유증 극복할 대책 시급
한편 다원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은 사회발전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생태계의 보전은 종의 다양성에 의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종으로는 생태계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문화다양성은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이며 새로운 창조적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보고(寶庫)다. 한국사회가 선주민의 전통문화와 이주민의 외래문화를 창조적으로 융합할 수 있다면 제2의 한류(한류 2.0)를 일으킬 것이고 한국의 문화영토는 전 세계로 확장될 것이다. 따라서 다원사회의 위기와 기회를 현명하게 파악해 사회균열과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고 다양한 사회문화집단들이 공존하고 통합할 수 있는 원리를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이미 한국사회엔 급속한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에 따른 후유증과 갈등의 증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 대책이 시급하다. 반외국인, 반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커뮤니티가 수십개에 이르고 최대 회원 수를 가진 ‘다문화정책반대’는 1만명 이상 가입돼 있다. 한편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족 자녀, 북한이탈주민 등 몇몇 이주민집단들에게 시혜적인 것으로 비춰지면서 국내의 일반 소외집단들은 자신들을 역차별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정 집단만을 정책대상으로 해서는 일반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계층과 위험(예를 들어 가족해체, 질병, 실업)과 같은 보편적 기준에 의해 정부지원이 공평하게 돌아가는 보편적 접근이 정부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 북한이탈주민, 다문화가족만이 아니라 저소득층, 한부모가족, 장애인 등 일반국민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면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면 역차별 또는 형평성 논란을 해소할 수 있고, 이주민 지원에도 그리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예산확보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원론적으로 정책대상을 보편화해 점진적으로 지원대상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또 개별적인 다문화 소수자집단을 위한 별도의 제도와 시설을 만들고 운영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 행정 및 복지추진 체계에서 사회통합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공존하고 통합하기 위해선 양 집단 간의 소통과 교류의 장도 확대돼야 한다. 접촉기회가 적으면 편견과 고정관념이 강해지고 서로를 경쟁상대로 생각해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편견 해소방법으로 잘 알려진 ‘접촉가설(contact hypothesis)’의 전제조건인 상위의 공통목표를 위해 동등한 지위에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할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실현할 사업들을 개발하고 재정 및 인력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보다 포용적이고 유연한 사회성원권 요구돼
본래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적 측면만이 아니라 소수자집단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정책을 포함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다문화주의는 마치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 자녀만을 위한 시혜적 정책으로 비춰져 원래 개념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형용사처럼 사용되고 다문화란 말과 접속되는 단어들은(예를 들어, 다문화학생) 2류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다문화주의가 인종 또는 종족과 관련한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종교, 언어, 성정체성 등 광범위한 차원의 다양성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역설해도 소용이 없다. 차제에 문화를 포함해 계층, 지역, 세대, 종교, 성정체성 등 다양한 차원의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다문화주의를 다원주의로, 다문화사회를 다원사회로 용어를 대체하고 이에 맞춰 우리의 시야를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종전의 다문화주의가 일부 이주민집단들을 위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극복하고 일반 소외집단들에게도 관심과 지원의 폭을 넓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상특수적 정책에서 관점보편적 정책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아울러 다원주의와 다원사회는 다문화주의와 다문화사회를 포함하는 보다 광의의 개념들로 문화뿐만 아니라 계층, 지역, 성별, 연령, 세대, 종교, 성정체성 등 다양한 차원의 사회균열과 갈등에 주목하고 문제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보다 보편적이고 포용적이다. 이 주장은 이 시대 대표적 다문화주의 이론가인 킴리카가 ‘포스트 다문화주의(post-multiculturalism)’라는 개념을 사용해 서구사회에서 제기된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는 비판으로부터 다문화주의를 방어하려고 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킴리카는 이젠 소수집단의 문화권 보호를 넘어서 정치적 참여와 경제적 기회분배에 관심을 기울이고,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포용적 국민정체성을 건설하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는 과거에 비교해 훨씬 복잡하게 분화되고 다원화됐다. 다양한 사회문화집단들이 공존하고 통합하기 위해서는 보다 포용적이고 유연한 사회성원권이 필요하다. 민족과 국민과 같은 전통적 성원권으로 포용할 수 없는 구성원은 시민 또는 주민이라는 성원권을 부여해 기본인권을 보호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자의적이고 부당한 이유로 특정 개인과 집단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하는 행위는 금지해야 한다. ‘보편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다원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인 이유다. 그 다음, 사회적 소외집단이 교육과 취업과 같은 사회의 기회구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회통합이 이뤄진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의 절대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부를 보다 균등하게 분배해 불평등 수준을 낮추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이 인식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다원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성숙한 의식과 역량을 길러야 한다. 즉 사회구성원들이 다양한 집단 간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에 의해 발생되는 편견과 갈등을 민주적 방식을 통해 해결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면서도 공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의식과 역량을 가질 수 있는 교육적 뒷받침이 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