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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포용과 협력, 사회통합정책의 두 날개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2013년 02월호

최근 10여년 사이 사회통합이 이상적 현실에서 불가결한 현실로 이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사회통합이 있으면 좋은 유토피아적 미래가 아니라 반드시 이뤄야 하나 이루지 못한, 미완의 현실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의 전환에는 사회통합이 정치적 수사와 현학적 담론의 수준에 머물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도를 넘어섰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가본 길이라 해도 앞서간 자들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무언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첫 번째 날개, 배제에서 포용으로


사회통합정책의 한 전형은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가 1997년 설치한 유럽사회통합위원회(European Committee for Social Cohesion)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제통합 과정에서 예상되는 국가 간, 지역 간, 계층 간 소득불균형과 유ㆍ무형의 차별을 극복하며 사회적 권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것을 목적으로 시작한 유럽연합의 사회통합정책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선순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사회통합전략은 ‘사회적 책임의 새로운 윤리(a new ethic of social responsibility)’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권리의 신장만큼이나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유도할 정책수단을 동원한다. 또한 2001년부터는 사회통합지표(Indicators for social cohesion)를 개발해 4개 부문 18개 지표를 바탕으로 EU 권역의 사회통합정도를 추적ㆍ분석하며 구체적 개입지점과 목표치를 계량화해 보여준다. 나아가 사회통합을 직접적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배타적 정책수단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고용ㆍ교육ㆍ건강ㆍ사회보장ㆍ주거ㆍ가족ㆍ양성평등 등의 정책부문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회원국 정부정책의 상위(메타) 목표로 사회통합을 설정하도록 권고하며 다양한 정책수단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한다. 

 


이러한 EU 사회통합정책의 기저엔 유럽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 프랑스의 사회통합정책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이사회가 주목한 프랑스 사회통합정책 역시 정부의 모든 정책영역을 교차하며 부처 간ㆍ정책 간 조정을 기초로 산출되는 궁극적 지향점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과시적 사회통합정책과 근원적 차이가 있었다. 사회통합정책이 비로소 정치적 구호와 프로파겐다를 넘어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실질적인 상위 정책목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영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국 역시 1997년을 기점으로 사회배제청(Social Exclusion Unit)을 설치하고, 사회통합을 위한 국가실행계획(National Action for Social Inclusion)을 수립하며 배제에서 포용으로, 포용에서 합일을 지향하는 본격적 사회통합정책을 전개했다. 프랑스의 경우 사회통합을 위해 독립 행정기관을 설치하는 대신 총리실의 부처 간 정책조정 기능에 의존했다면, 영국의 경우엔 사회배제청이라는 독립기관을 통해 통합정책을 추진한 것이 미묘한 차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 기관 역시 개별 부처 차원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한 정책영역을 우선 개입지점으로 설정하고, 종합적 청사진을 바탕으로 정책 간ㆍ부처 간 조율을 통한 통합적 해결책(joined-up solutions)을 모색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날개, 경쟁에서 협력으로


사회통합이 빈곤과 배제로 인해 소외된 대상집단을 최소화하는 데 일차적 목표가 있다면, 그 두 번째 목표는 사회집단 간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분쟁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정도를 넘어 과도하게 표출되는 갈등과 분쟁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잠식해 궁극적으로 한 사회의 성장동력을 꺼트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통합정책은 유럽보다 영미권의 협상ㆍ조정 문화에 기초하는 대안적 분쟁해결제도(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ADR은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된 합의형성 기법이다. 이 기법은 유럽의 대의민주주의와 만나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단점을 보완하는 숙의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굳건히 뿌리내렸다.


먼저 영국에서는 ‘ICARUS’와 같은 민간기구가 정부의 보조적 행위자로 기능하며 정책과정에 대중의 참여를 보장하고 촉진하면서,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고전적 ‘DAD(Decide, Announce, Defend)’ 방식에서 ‘EDD(Engage, deliberate, Decide)’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참여방식을 통해 정책형성과정과 정책결정과정을 설계ㆍ진행ㆍ평가하도록 함으로써 정책의 수용성 또한 높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1990년대 후반부터 예산규모 일정액 이상의 국책사업을 대상으로 공공토론을 시행하도록 의무화해 풀뿌리 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참여와 공개, 토론 그리고 그를 통한 합의형성이 정조준되고 있다. 캐나다 퀘벡주의 공공의견청취국을 벤치마킹한 국가공공토론위원회를 비롯해 ‘시민의 권리 수호자’, ‘민의조사’ 등의 기구가 이러한 원리를 웅변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고전적 형태의 대의민주주의 제도로는 정책 ‘고객’의 필요와 욕구를 적시에 충족시킬 수 없을 뿐더러 ‘맞춤형’ 서비스의 생산과 전달이 불가능함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는 미국의 기술평가국을 벤치마킹하는 한편 공공토론을 통해 새로운 기술의 사회적 파급효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기술이사회를 설립했다. 덴마크 기술이사회는 기본적으로 과학기술 향상에 목적을 두지만 미국의 기술평가 모형에 대중계몽 모형을 덧붙여 혼합적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큰 차이다. 이들에게는 전문가 분석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신기술의 기술적 적합성 뿐 아니라 합의회의, 시나리오 워크숍 등의 참여적 의사결정 기법을 바탕으로 비전문가들이 검토하는 사회적 적합성도 중요하다. 


사회통합에 대한 보편적 정의는 없다.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표준화된 목적과 목표도 없다. 오직 서로 다른 공동체에게 주어진 서로 다른 맥락과 지향이 있을 뿐이다. 앞선 자들의 경험과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는 지나온 길만큼이나 가야할 길을 밝혀줄 수 있겠지만, 이 맥락과 지향의 간극을 넘어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통합의 목표와 수단을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몫으로 남는다. 차기 정부가 표방하는 ‘국민대통합’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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