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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인류 번영 위한 세계화, 적절한 규제 있어야
김종철 주제네바대표부 고용노동관 2013년 02월호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고 선진국,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는 적절히 제어되고 통제되지 못한 세계화가 글로벌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세계화(Socially Sustainable Globalization)’를 위한 패러다임으로 ‘양질의 일자리 어젠다(Decent Work Agenda)’를 매개로 한 ‘공정한 세계화를 위한 사회정의(Social Justice for a Fair Globalization)’의 실현을 제시하고 있다.


ILO는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평화협정인 베르사유 조약 제13장(제1장은 국제연합의 설립근거임)에 근거를 두고, 인도주의적(humanitarian,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 정치적(political, 사회불안 내지 공산혁명의 방지), 경제적(economic, 공정무역 경쟁) 동기로 ‘사회정의에 기초한 항구적 보편적 평화의 달성’을 위해 설립됐다. ILO는 UN 국제기구 중 유일하게 노동단체와 사용자단체가 옵저버가 아닌 정식표결권을 행사하는 정규회원 자격을 갖는 독특한 노사정 삼자주의(tripartism)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ILO는 노사정 3개 그룹이 공히 표결권을 행사하는 이사회(연 3회)와 총회(연 1회)를 개최해 ILO 활동(국제노동기준 제정, 글로벌 노동사회정책 보고서 생산 등)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다.


2012년 현재 국제노동기준을 189개 협약(convention), 202개 권고(recommendation, 비준대상은 아님) 형태로 제정해 바람직한 글로벌 고용노동 및 사회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고, ILO 사무국은 3천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면서 사업예산 12억달러(2개년)를 집행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ILO의 이러한 노력을 인정해 1969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2008년 ILO 사회정의 선언, 세계화 부작용에 본격 대응


ILO의 노동사회정책 패러다임은 ILO 헌장(베르사이유 조약 제13장) 및 3차례(1944, 1998, 2008년) 역사적 선언(declaration)에 담겨 있다. 이 헌장과 선언들은 전 지구적 고용노동 및 사회정책 이슈에 대처하는 ILO의 전략과 활동방향을 규정해 왔다. 1919년의 ILO 헌장은 사회정의에 기초한 보편적 항구적 세계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Labor is not a commodity)’라는 원칙 아래 노동조건 개선을 ILO의 임무로 부여했다. 이에 따라 근로시간(주당 48시간 근로시간 규제가 ILO의 제1호 협약), 야간근로, 아동근로, 여성근로, 산업안전보건상 위해물질 규제 및 4대 사회보험 설립 관련 국제노동기준이 탄생했다(이 국제노동기준들은 경제사회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갱신).

 


2차 대전 종전 즈음 천명된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은 노동 및 사회 문제에 대한 ILO의 대응을 사회복지 차원에서 인권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기존의 노동조건 보호 및 사회보장 시스템 구축 노력을 인권증진 차원에서 더욱 강화하고 특히,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결성 및 협상권 보장, 고용상의 차별철폐, 강제노동 및 아동노동 근절을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됐다.


1998년 ’근로자 기본권 선언(Declaration on Fundamental Principles and Rights)’과 2008년 ‘공정한 세계화를 위한 사회정의 선언(Declaration on Social Justice for a Fair Globalization, 일명 ’양질의 일자리 선언‘으로도 불림)’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추구돼 온 세계화의 현실 내지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ILO를 매개로 한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이 이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근로자 기본권 선언은 4대 핵심 분야(강제노동?아동노동?고용차별 철폐 및 근로자 결사의 자유증진)의 노동기본권 향상을 천명한 1995년 코펜하겐 사회개발 정상회의(World Summit for Social Development)의 후속 이행조치로서, 국제적 차원에서 사회정책의 최저수준을 제시하고 그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1998년 선언은 공정한 국제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선진국 그룹이 지지하는 다자간 국제무역협정의 사회조항(Social Clause) 성격도 갖고 있어, 선언 채택과정에서 무역보호주의의 일환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우려한 개도국 그룹의 반대가 심했다. 또한 4대 핵심노동권 증진만을 언급하고 있어 세계화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2008년 사회정의 선언은 세계화의 부작용에 보다 본격적ㆍ종합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현대판 ILO의 정책비전이다. 1999년 3월 제9대 ILO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후안 소마비아(Juan Somavia, 1999년 3월~2012년 9월)는 ILO가 축적해온 정책적 지향과 지식을 ‘양질의 일자리’란 개념으로 함축해 제시함으로써 국제의사결정 무대에서의 ILO 입지를 강화하고 체계적ㆍ통합적 ILO 사무국 활동의 준거로 삼고자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양질의 일자리 어젠다는 2005년 UN 정상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고, 2008년 선언은 양질의 일자리 전략을 각 회원국이 자국의 국내정책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고 여타 국제기구(특히 WTO, IMF 등 경제관련 국제기구)들과의 공조체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8년 선언은 1998년 선언과 같이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ILO의 처방전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전자는 후자보다 훨씬 포괄적ㆍ종합적인 정책지향을 담고 있는 동시에 회원국 노사정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채택됐고 여타 경제 관련 국제기구 등과의 사전교감도 충분히 이뤄져 그 실행력이 높다는 점에서 후자와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세계화’를 위한 ILO의 시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화는 적절히 제어돼야만 인류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추진 정권의 등장과 성공적 집권,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 동구 공산권 국가의 몰락 등은 무역자유화, 글로벌 생산방식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세계화 현상을 야기했다. 세계화는 시장확대와 효율성 향상을 토대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지만, 부와 소득의 불균형 분배를 야기했고 또한 인류의 생존과 자아실현에 필요한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더 나아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인을 제공해 경제성장 전략으로도 의심받고 있다. ILO는 세계화의 긍정적 효과를 부인하는 것도 그 도도한 흐름에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계화가 진정 사회적ㆍ경제적ㆍ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인류번영에 이바지하려면 지금과 같은 부분별한 세계화 현상에 적절한 규제와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공조돼야 한다

ILO는 사회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시장개방과 성장 측면만을 강조한 경제정책에 입각한 세계화가 빈부격차 확대 및 양질의 일자리 축소, 소비수요 감소, 저성장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사회정책이 경제정책과 대등한 입장에서 균형을 이루며 추진돼야 한다. 이러한 정책공조는 국내외 정책결정과정에 모두 필요한 개념이지만, 특히 국제적 차원에서 다자간 국제기구의 정책공조가 중요하다. ILO는 ‘양질의 일자리를 통한 공정한 세계화’를 주제로 OECD, IMF, WTO, UNCTAD, 세계은행 등 대표적인 다자간 국제경제기구들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2007년 UN의 새천년 개발목표(MDGs)에 ‘완전하고 생산적인 고용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란 목표를 추가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고, G20 정상회의 과정에도 양질의 일자리 개념을 효과적으로 투영했다.


사회정책의 핵심은 고용창출, 사회적 보호, 노동기준 및 사회적 대화

ILO가 성장과 개방 그리고 효율 위주의 경제정책과 동일한 비중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정책은 '양질의 일자리 의제'로 함축된다. 고용창출, 사회적 보호, 노동기준 및 사회적 대화의 4개 기둥으로 구성되는데 고용창출과 사회적 보호는 사회정책이 추구해야 할 실체적 정책가치라고 할 수 있고, 노동기준 및 사회적 대화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ILO가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일종의 정책처방전으로 2009년 제시한 '세계 일자리 정책 패키지(Global Jobs Pact)'는 양질의 일자리 어젠다의 개념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ILO는 무분별한 자본주의 팽창의 부작용을 효과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인류평화와 인간존엄성을 증진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질서 재편을 배경으로 1919년 탄생했다. 1990년대 본격화된 세계화는 초기 자본주의 형성과정에서 발생한 폐해에 비견할 만한, 그렇지만 그 정책적 대응은 더욱 정교해질 것을 요구하는 문제를 인류에 제기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ILO판 정책 패러다임을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는 1990년 초반부터 시작됐지만 사실상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서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게다가 그 구체적 실행전략 마련은 아직 미완성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 경제위기를 조기에 모범적으로 극복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지만, 세계화의 부정적 효과인 사회양극화의 깊은 골을 메우고 중장기 성장동력을 인적 자원의 고도 활용 전략에서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ILO의 지속 가능한 세계화에 대한 시각을 적극 활용하고 발전시켜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는 동시에 새로운 글로벌 패러다임 형성에도 창의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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