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쯤으로 기억한다. 직장인이었던 나는 한 선배 추천으로 경상북도 고령군에 위치한 개실마을을 방문하게 됐다. 당시 나는 기업과 농촌마을이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 교류하는 1사1촌이라는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 선배 추천으로 경상북도 고령군에 위치한 개실마을을 방문하게 됐다. 개실마을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종택이 있는 집성촌으로 오래된 한옥이 조금 남아 있는 평범한 농촌이다. 서울과 고령은 거리가 꽤 멀어 얼른 회의를 마치고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남을 가졌다.
장소는 오래된 한옥의 대청마루였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마을의 할머니께서 유과와 녹차를 내오셨다. 올망졸망하게 생긴 유과를 무심코 입에 넣었는데 참으로 묘한 맛이 났다. 맛이 심심한 것 같아도 단맛이 도는데 녹차를 함께 마시니 단맛이 더더욱 진해지는 것이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찹쌀, 콩 등을 며칠간 물에 불리고, 불린 재료를 곱게 빻아 반죽하는 등 모든 과정을 직접 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제맛을 내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여러 과정을 천천히, 정성들여 음식을 만든다고도 했다. 그 순간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을 추구하다가 거꾸로 가장 느린 것을 찾아다니게 된 결정적 순간이었다. 느리다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집중하고 몰입하여 그 시간이 한없이 즐거워지는 것을 의미함을 알았다. 당시 나는 유명한 테마파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빠른 것이 미덕인 테마파크의 놀이기구보다 더 재미있는 시간이, 한껏 멋을 부려 내놓는 테마파크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끼라도 느긋하게 먹고, 이야기가 있는 밥을 먹으려 노력했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바라보니 정작 아는 것이 없었다. 오로지 판매장소와 값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천천히 만들어진 슬로푸드를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농가를 찾아가 농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장에 가서, 식당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는 빨리 달라고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맛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맛있는 음식이 나와 그 이유를 물으면 역시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속에 만든 사람들의 노고와 정성과 역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더니 음식도 예외가 아니었다. 식재료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알고 먹으니 음식이 소중해진다. 소중한 것을 빨리 해치울 수는 없는 법.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가족에게 들려주고 친구들에게 들려주니 다들 재미있어 한다. 음식의 최고 가치를 맛과 영양이 아닌 속도가 차지해 버렸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 어쩌면 식사하는 시간일 텐데 현대인들은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음식 먹는 시간조차 단축시키고 있다. 이 시간 밥을 드신다면 한번 밥상을 물끄러미 보시라.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되면 식사시간은 급식시간이 아니라 한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