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빨라야 살아남는다’라는 속도강박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 바쁜 일과 속에 대충 한 끼 때우는 식으로 음식을 먹고 있다. 과거에 비해 먹을거리가 많아져 배고픔은 잊고 산다지만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으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지쳐 있다. 눈 내리는 2월 어느날, 남양주시 조안면 삼태기 마을을 찾았다. 남양주시는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특히 조안면은 지리적으로 맑은 물과 기름진 토양으로 인해 전통음식을 만드는 슬로푸드 생산지역으로 유명하다. 김미자 회장을 포함해 7명의 마을 부녀자들은 ‘아낙네’라는 마을기업을 세워 우리의 대표 발효식품인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을 제조하면서 전통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전통음식을 만드는 마을기업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 제대로 만든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동안 ‘웰빙(well-being)’이 유행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 같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먹어온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 등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식품을 소비하고 싶다 해도 개개인이 이를 생산하는 것은 바쁜 생활속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생산자와 소비자가 믿음을 갖고 직거래하는 마을기업이 늘고 있다고 본다.
된장 등 콩발효식품과 깻순·뽕잎 장아찌 등 절임발효식품을 생산한다고 들었다. 된장, 고추장 등 발효식품은 성인병 예방, 면역력 증진에 좋다. 이러한 식품들은 오랜 시간 동안 제조 과정을 거쳐야 깊고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 콩이 된장으로 완성되기 위해선 우선 수확한 콩을 삶고 빻아서 메주로 만든다. 완성된 메주는 시간을 두고 건조와 숙성과정을 거친다. 그 후 장담그기를 통해 된장이 완성되면 버무려서 항아리에 넣고 오랫 동안 햇볕을 쪼이며 자연숙성시킨다. 발효식품에는 무엇보다 손맛, 햇볕,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된장을 빨리 만들겠다고 제조과정을 단축한다거나, 식품첨가물을 사용한다면 진정한 발효식품이 아닌 것이다. 된장이라고 다 같은 된장이 아니다.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느리게느리게 만든 발효식품 섭취가 꼭 필요하다.
콩, 고추, 깻순 등의 농산물 원료는 직접 농사를 지어 조달하나? 그렇다. 모든 원료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농사를 짓은 것이다. 땅에 씨앗을 뿌려 햇볕을 받으며 자란 유기농산물이다. 알다시피 햇볕을 받으며 천천히 익은 농산물이야말로 진정한 맛을 보유한 친환경농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지역은 들깨 생산에 적합한 기후와 토지를 갖춰 많은 주민들이 깨를 재배하고 있다. 들깨의 첫 순을 따서 담근 깻순장아찌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우리 고장만의 대표적인 절임발효식품이다.
어떠한 소비자들이 ‘아낙네’ 발효식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릴적 느꼈던 된장 맛을 그리워하는 분들과 몸이 허약한 환자분들의 관심이 많다. 우리가 만든 장이나 장아찌를 먹어 본 사람들은 짜지 않고 입맛에 맞아 식욕이 당긴다고 한다. 아직 큰 성과는 없지만 된장이 발효식품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일본인들의 문의도 늘고 있다. 한편 된장 담그기, 장아찌 만들기 등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주로 방학 때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방문해서 전통식품 만들기 체험을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먹을거리의 소중함과 식습관의 중요함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을기업 운영으로 농가의 소득이 늘어났는지, 운영상 어려운 점이 있다면? ‘아낙네’ 마을기업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2년 정도 됐다. 물론 발효식품이다 보니 그 이전부터 숙성에 필요한 준비 작업은 거쳤다. 아직은 시작단계라 매출이 높지는 않다. 발효식품은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최종판매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된장은 현재 5년 이상 숙성된 것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 물량도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물량 때문에 직접방문 또는 전화로만 판매주문을 받고 있다. 판매량을 늘리려면 원료의 수확량도 늘려야 해서 지금 당장 매출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남양주시가 수도권에서는 유일하게 슬로시티로 지정됐고, 슬로푸드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들었다. 오면서 보셨겠지만 산과 강이 어우러진 맑고 깨끗한 고장이다. 느리게 살기에 알맞은 지역 아닌가(웃음). 남양주에서는 매년 슬로푸드대회가 열리고 있다. 전국슬로푸드요리경연대회, 요리심포지엄, 이야기 마당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슬로푸드 체험마당은 학생을 둔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다. 올 10월에는 세계슬로푸드대회도 개최된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슬로푸드대회에서 우리 된장, 고추장, 장아찌가 많은 유럽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슬로푸드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느리게 사는 삶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저를 비롯해 여기 마을 사람 모두는 농부다. 농촌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농사를 짓으며 살아왔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땅을 일구고 농산물을 수확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것이 즐겁다. 요즈음은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다.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우리 발효식품을 찾고 있다. 그들이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으로 발효식품을 만들고 싶다. 행복하고 느리게 사는 삶이란 내가 아닌 남을 배려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